[조직의 단말쓴말] 위기 상황에 부담을 느끼는 이를 위한 쓴말
첫 직장에서 나의 부서는 홍보팀이었다. 아마 홍보팀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공감할 텐데, 홍보는 진중함과 가벼움 사이에서 아슬아슬 외줄타기하는 것에 가깝다. 너무 진중하면 '노잼'이라고 욕을 먹거나 그보다 무서운 '무관심'을 받게 되고, 그렇다고 너무 가벼우면 '생각 없이 만들었냐'는 비난을 받거나 온갖 사과문과 해명거리를 작성해야 하는 일이 생긴다. 메시지는 메시지대로 전달하면서, 재미있고, 동시에 너무 가볍지만은 않아야 한다니. 말 그대로 골 때리는 일이다.
그래도 홍보 업무 자체는 즐거운 편이다. 어쨌든 '재미있는 것'을 기획하는 일이고 창작에 집중할 때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일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홍보가 아니라 홍보에 속한 '공보' 업무를 할 때다. 비슷한 단어 같지만 완전히 다른 개념의 공보 업무는, 어떤 문제 사안에 대하여 공식적으로 해명하는 일이다. 가령 소속사 연예인이 SNS에 다소 어긋난 언행을 게시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는 경우, 조직 내 어떤 부서가 해당 연예인의 이후 입장을 대변하고 여론을 잠재우겠는가. 당연히 홍보팀의 일이다.
홍보 업무 자체도 앞날을 예측할 수 없지만, 공보는 더더욱 예측 불가능하다. 잘 나가다가도 갑자기 삐그덕대거나, 과거의 일이 소환되거나, 예상치 못한 사고가 발생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홍보든 공보든 언제나 '내가 전하려든 메시지' = '독자가 받는 메시지'인 것은 아니어서, 진심을 담아 쓴 글이 오히려 오해를 사는 경우도 종종 있다.
한 번은 내가 만드는 잡지의 기획특집을 완전히 갈아엎을 일이 생겼다. 취재해야 할 행사가 갑자기 취소될 수도 있다는 통보를 받은 것. 그런데 그때 나는 '뭐 별 일이야 있겠어?'하는 안일한 생각을 품고 있었던 모양이다. 팀장님은 이를 눈치챘는지, 어느 날 나를 따로 불러 이런저런 질문을 던졌다. 내가 잘 대답하지 못하자, 팀장님은 살짝 쓴웃음을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위기 상황이 아닐 땐 누구나 잘 해.
하지만 진짜 실력은 위기에서 드러나는 법이지.
그러고선 팀장님은 이 상황을 타개할 구체적인 방법을 알려주었다. 먼저 확실한 정보를 알아보고, 여전히 불확실하다면 제2의 방법을 준비해두고 검토할 것. 최소한 그 방법이 왜 좋은지, 어떻게 전개할 것인지 정도는 미리 구상하고 있다가 나중에 행사 취소 여부가 확실해지면 보고할 것. 제2안의 담당자를 미리 섭외하여 구두로는 어느 정도 사정을 전달해두어 혹시라도 일이 엎어지면 바로 착수할 수 있도록 할 것. 그러고서는 "원래 이렇게 하려고 했잖아? 그렇지?"라는 말과 함께, 내 자존심을 살려주는 것도 잊지 않으셨다.
팀장님의 조언으로 위기 상황은 무사히 넘겼고, 그 덕에 나는 오히려 '위기를 잘 타개한' 편집자로 인정 받았다. 그리고 팀장님의 조언은 꽤 오랫동안 내 기억 속에 남았다.
위기 상황이 아닐 때는, 누구나 비슷하게 일을 한다. 특히 조직이 클수록 더 그렇다. 매뉴얼과 절차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평소에는 자신의 실력을 드러내려고 굳이 애쓸 필요가 없다. 오히려 무언가 바꾸려는 행동이, 매뉴얼과 절차를 무시하는 행동처럼 비칠 수도 있다. 하지만 위기 상황은 다르다. 위기는, 절차와 매뉴얼을 모두 무시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위기'인 것이다.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통하지 않는 시기다. 따라서 '진짜 실력'은 위기에서 판가름난다.
그렇다고 위기를 '준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예측불허하기 때문에 위기인 법. 따라서 위기에 능숙하게 대처하려면 먼저 진짜 실력이라 부를 만한 것을 쌓아두어야 한다. 실력이 없다면 근본적으로 위기를 이겨내기란 불가능하니까.
하지만 동시에, 위기 상황에 너무 부담을 느끼거나 겁을 먹지 않도록 해야 한다. 만약 자신이 충분히 실력을 갖고 있다면, 자기 자신을 믿어보자. 위기를 이겨내지 못할 것 같다고 생각하지 말고, 오히려 '진짜 실력을 보여줄 때'라며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극복할 수만 있다면, 위기는 나의 진짜 실력을 주변 사람들에게 보여줄 절호의 기회나 다름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