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요리사가 드디어 막을 내렸습니다. 흑백요리사는 여러모로 흥미로운 프로그램입니다. 계급전쟁이라는 컨셉을 동원해서 한국적인 경쟁시스템을 요리경연 프로그램에 녹여냈습니다. (요리경연 프로그램도 한국에서 만들면 오징어게임이 됩니다.) 이런 독특한 환경적인 요소 외에도 순수하게 팀워크나 리더십, 조직문화와 관련하여 다양하게 해석하고 리뷰할 수 있겠지만, 저는 오늘 ‘평가’에 조금 더 초점을 맞춰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요리는 다른 경연프로그램과 조금 다른 성격을 지닙니다. 예를 들어 씨름이라고 한다면 승패의 기준이 매우 명확하죠. 승패가 헷갈린다면 VAR을 하면 됩니다. 노래라고 하면 평가기준이 조금씩 다를 수 있지만, 좋은 노래인지 아쉬운 노래였는지를 모두 다 같이 똑같은 노래를 듣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요리는 다릅니다. 참가자가 ‘요리’라는 성과물을 만들어내고 그것을 먹어 보고 평가하는 심사위원이 있지만, 시청자는 그 성과물의 가치를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맛’은 온전히 상상의 영역이 됩니다. 이 특수성은 의외로 우리가 하는 일과 매우 흡사한데 직무담당자로서 직무오너십을 기반으로 협업을 통해 무언가를 만들어내고(성과) 그것이 가치 있는지 없는지를 평가받지만(성과평가) 늘 그렇듯 정말 이것이 가치가 있는 것인지 없는 것인지 판단하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어찌보면 요리는 가장 직관적인 지식노동입니다. 이 모습은 일상에서 일을 해나가며 성과를 만들어내는 우리와 굉장히 유사한 모습입니다.
이번 흑백요리사에서 공정한 평가는 여느 요리경연프로그램보다 강조된 요소였습니다. 계급전쟁이라는 환경이 만들어내는 공정성에 대한 민감함도 있지만, 이것 자체로 어쩌면 최근 공정성에 대해 민감하진 시대흐름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흑백요리사의 평가 공정성에 시청자들이 민감한 반응을 보였던 것은 몇몇 과몰입러의 딴지인 것만은 아닌 것이죠. 이런 점을 연출진들도 아주 잘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요리에 대한 평가결과를 시청자들에게 납득시키기 위한 다양한 장치를 배치했습니다. 평가기준에 대해서 심사위원이 상의하는 장면이라거나, 심지어 평가결과를 메모한 것을 실제로 화면에 보여주기도 합니다. 이러한 장치들은 인사관리에서 평가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 평가의 간주관성(間主觀性 : Intersubjectivity)을 획득하기 위한 장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간주관성은 각자가 갖고 있는 주관성을 모아 서로 인정된 공통된 부분을 말합니다. 우리가 ‘맛있다’에 대한 가치판단이 개개인이 모두 다르듯, 평가는 주관적일 수밖에 없지만. 경연프로그램 특성상 더 가치있는 것이 무엇인지는 반드시 판단해야 하고, 시청자들에게도 납득되어야 합니다. 흑백요리사는 그런 면에서 가치판단이 어려운 요리라는 대상에 대한 평가의 간주관성을 획득해나가기 위해 ‘평가’라는 본질이 갖는 어려움을 피하지 않는 과감한 선택을 했습니다.
이번 프로그램에서 간주관성을 획득하기 위한 여러 가지 시도들이 있었는데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1️⃣ 자기평가
2️⃣ 고객의 만족(결과)을 기준으로 한 평가
3️⃣ 심사위원들 간의 평가
첫 번째는 자기평가 입니다. 프로그램 초반에 안성재 셰프가 “이 요리의 의도가 무엇인가요?”라는 물음에서부서 출발하는 답변들이 모두 일종에 자기평가입니다. (안성재 셰프의 질문이 갖는 의미가 궁금하시다면 지난 뉴스레터 66호 : ‘흑백요리사 안성재 셰프를 보고 든 생각’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자기평가는 평가의 간주관성을 확보하기 위한 기본적인 전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기평가가 존재해야만 성과창출자와 평가자간의 간주관성을 논할 수 있게 됩니다. 물론 현실에서는 성과창출자의 자기평가와 조직장의 평가 사이 간극이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간극이 발생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합니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간극을 어떻게 인식하고, 이해할 것인가?’ 이겠죠. 간극을 이해하고 조정해 나가는 것은 앞으로의 성과창출을 위해 매우 중요합니다. 따라서 자기평가는 모든 평가에서 가장 앞 순서에 놓여야 합니다.
두 번째는 고객의 만족(결과)을 기준으로 한 평가입니다. 두 가지 장면을 중요하게 언급할 수 있겠습니다. 하나는 두 심사위원이 눈을 가리고 ‘사람’이라는 편향이 발생할 수 있는 요소를 철저하게 차단하고 요리(성과)가 주는 만족감과 본연의 재료의 특성을 얼마나 잘 살렸는가(결과)를 기준으로 평가하는 장면입니다. 우리는 흔히 ‘사람’에 대한 평가와 ‘성과’에 대한 평가를 구분하지 않고 성과를 창출한 사람이 누구인지가 가치판단에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면서 편향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현상은 구성원들이 고성과 창출에 몰입하기 어려운 환경을 조성하는 요인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지양되어야 하고, 평가를 하는 조직장들이 늘 거리감을 두고 유의해야 합니다. 두 번째 장면은 주로 팀전에서 나타난 장면으로 소비자들의 선택이라는 결과(Impact)의 크기를 기준으로 평가함으로써 간주관성을 확보하는 장면입니다. 두 장면 모두 ‘성과’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춰 결과의 크기를 기준으로 가치를 판단함으로써 평가의 공정성을 이루고자 했습니다.
세 번째는 백종원과 안성재 심사위원 간의 평가입니다. 흔히 직속조직장이 평가를 할 때 동료들의 코멘트를 참고하거나, 차상위조직장의 의견을 참고하는 것과 같은 메타포라고 생각합니다. 흑백요리사에서는 심사위원 간에 평가기준에 대한 이견이 있는 경우 이를 여과 없이 보여주면서 간주관성을 확보했는데, 이 부분이 이 프로그램에서 대단히 용기있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반적으로 심사위원 세 사람을 배치해서 한쪽으로 기울게 만들어서 간주관성을 확보하는 과정을 매우 간단하게 보여주고 말지만, 필연적으로 두 사람의 의견이 다를 때 조율하는 과정(매끄럽지 않을 수도 있지만)을 거침으로써 간주관성을 확보해 가는 과정을 시청자들에게 충분히 더 어필하는 효과를 주고자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전체 과정을 지켜보는 시청자까지 포함하는 간주관성을 띄게 된 것이 이 프로그램이 하나의 현상이라고 할 수 있는 화제성의 정점에 오른 이유이자 결과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너나 할 것 없이 요리와 심사결과에 대해 시청자들이 다양한 의견을 쏟아냈던 것이죠. 흔히 조직에서 창출된 고성과들을 구성원들에게 가시적으로 공유하게 되면, 고성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게 되는데 지금 벌어지는 현상이 이러한 현상과도 닿아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흑백요리사가 이렇게 평가에 대한 논란을 끌어내는 것 자체가 이 프로그램의 전략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흑백요리사가 알려주는 HR적인 시사점은 싱겁게도, ‘평가란 어렵지만 매우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특히 창출한 성과의 가치가 요리처럼 가치판단이 어려운 것일수록 평가는 더욱 어렵습니다. 현실에서는 평가가 어렵다는 이유로 쉽게 타협해서 적당히 그럴 듯하고 산출하기 쉬운 평가프로세스를 만들거나, 이해하기 어려운 프로세스를 만들어놓고 복잡하고 체계적인 과정을 통해 산출된 결과이니 무조건 받아들이라고 하거나, 때론 평가의 대상이 되어야 할 성과와 무관한 것들(이를테면 목표달성도)을 동원해 평가하곤 합니다. (아니면 평가를 아예 하지 않는 조직들도 있습니다.)
애써서 만든 성과에 대해서 평가를 할 때는 좀 더 정면으로 바라보면 좋겠습니다. 성과를 통해 나타난 결과가 얼마나 임팩트가 있는지, 성과로 인해 어떠한 이해관계자의 행동변화가 있었는지, 성과와 임팩트간에 인과관계가 얼마나 긴밀한지를 두고 충분히 간주관성을 확보해나가는 과정을 시스템으로 설계하는 경우는 현실에서 흔치 않습니다. 평가의 본질에 집중하지 않는다면 성과평가 결과를 구성원들이 수용하거나, 조직의 성과를 잘 인식하고, 고성과 창출을 할 수 있게끔 확산하는 환경을 조성할 수는 없습니다. 평가의 본질은 성과의 가치를 인식하고, 가치를 판단함으로서 고성과에 대해 조직적으로 학습을 하는데 있습니다. 흑백요리사가 이룬 성취는 논란거리가 될 만한 평가라는 요소를 피하지 않고 과감하게 다뤘다는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공정성은 본질과 현실을 외면해서는 얻을 수 없습니다. 논란이 될 거라는 것을 알면서도 더 치열하게 다뤄야만 그나마 공정성을 조금은 얻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