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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꺼움 Apr 05. 2021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윤동주 「서시」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1941.11


- 윤동주 「서시」 일부 


잘 지내고 계신지요. 오늘은 제 문장이 아닌 윤동주 시인의 서시로 글을 열었습니다. 윤동주의 시인의 시라면 귀하게 품고 계신 분들이 많으시죠. 여담이지만 저는 좋아하는 것에 대해 말하는 사람 앞에 앉아 있는 것을 좋아합니다. 순수하게 좋아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눈과 입을 보는 게 좋더라고요. 평소 말이 없는 사람이라도 그것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눈은 반짝이고, 말소리가 높아지면서 긴 이야기를 꺼내놓는 것 같아요.


좋아하는 것에 대해 들은 이야기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윤동주를 좋아하는 후배의 이야기였어요. 이준익 감독의 <동주>(2016)라는 영화가 개봉한 지 한참인데도 너무 슬퍼지는 게 무서워서 보지 못하는 친구예요. 교과서에서 윤동주의 시를 읽고 울컥한 뒤로 좋아하는 마음을 오래 간직해왔더라고요. 그 이야기를 들은 뒤부터는 후배의 얼굴을 보면 교복을 입고 책상에 앉아 시를 읽는 여고생이 떠올라요. 그럴 때면 덩달아 윤동주 시인이 그리워집니다.


시인 윤동주(1917. 12. 30. ~ 1945. 2. 16.)


윤동주는 1917년 겨울 북간도에서 태어났습니다. 일제시대이자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었던 그 시기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어두웠지요. 훗날 어둠을 밀어내 줄 시인의 탄생이었습니다. 송우혜의 윤동주 평전』(서정시학, 2014)에는 이런 문장이 있는데요. 윤동주가 우리 문학에서 어떤 존재인지 정확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한국문학사는 그의 존재와 작품들로 해서 민족사상 최대의 암흑기였던 일제 말기의 그 참혹한 어둠을 밀어내는 거대하고 휘황한 횃불 하나를  소유하게 되었다.(25쪽)" 책의 문장을 기억하고 윤동주의 시(횃불)를 읽었을 때, 더욱 환한 빛이 마음 안으로 들어오는 기분이었어요.



봄이 혈관 속에 시내처럼 흘러

돌, 돌, 시내 가차운 언덕에

개나리, 진달래, 노오란 배추꽃


삼동을 참아 온 나는

풀포기처럼 피어난다.


즐거운 종달새야

어느 이랑에서 즐거웁게 솟쳐라.


푸르른 하늘은

아른아른 높기도 한데······


- 윤동주 「봄」 전문



'흘러' 들어오는 봄은 '꽃'을 피우고, 내내 겨울이었던 '나'도 '피어'나게 하네요. '종달새'에게도 솟구치라 하고, '푸르른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생동하는 봄이지만 오롯이 달갑지 않은 마음은 마지막 연의 말줄임표에 담겨 있는 듯합니다. 나라 없는 시대를 사는 청년에게도 계절은 바뀌고 봄은 옵니다. 쓸쓸한 고독이 봄이라는 계절과 만나 시가 되었을 때 환하게 슬퍼졌어요. 윤동주의 시에 있는 어쩌지 못하는 마음들은 아프고, 아름답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횃불이 되어주는 것일 테지요.




정지용 시인의 글 안에서 미뤄두었던 이야기를 이제 들려 드릴게요. 학창 시절 윤동주는 정지용의 시를 좋아했다고 합니다. 윤동주가 가지고 있던 정지용 시집에는 반듯한 글씨의 메모들이 있었다고 하는데요. 정지용의 압천이라는 시에는 "걸작이다"라고 적고, '생활의 협박장이다'라는 시구에는 "열정을 말하다", "그래도 이것이 장하다", "이게 문학자 아니냐"라고 썼다고 합니다. 그렇게 정지용 시인을 동경했던 청년 윤동주는 1939년 연희전문에 다닐 때 그를 찾은 적이 있지만 후에 정지용은 기억하지 못했다고 해요.


그러나 두 사람의 인연은 시집 안에서 다시 맺어집니다. 1945년 2월 윤동주는 후쿠오카 감옥에서 일본의 생체 실험에 의해 짧은 생을 마치게 되는데요. 그해 8월 해방이 되고 난 뒤 강처중, 정병욱 등의 도움으로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출간됩니다. 당시 경향신문 기자였던 강처중은 경향신문 주간으로 있었던 정지용에게 윤동주의 시들을 보여주었고, 이후 정지용은 본인이 직접 시집의 서문을 써서 세상에 내놓게 되는 것이지요. 그 글에서 정지용은 윤동주의 삶에 대한 애통함과 그의 시를 향한 애정을 고스란히 드러냅니다.



청년 윤동주는 의지가 약하였을 것이다. 그렇기에 서정시에 우수한 것이겠고, 그러나 뼈가 강하였던 것이리라. 그렇기에 일적에게 살을 내던지고 뼈를 차지한 것이 아니었던가?

무시무시한 고독에서 죽었구나! 29세가 되도록 시도 발표하여 본 적도 없이! (···) 무명의 윤동주가 부끄럽지 않고 슬프고 아름답기 한이 없는 시를 남기지 않았나? 시와 시인은 원래 그런 것이다.


윤동주는 시인의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생을 마쳤습니다. 그러나 윤동주의 시는 시인이 동경했던 정지용의 손을 거쳐 세상에 나왔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고 있습니다. 시가 이어준 두 시인의 간곡한 인연이 독자에게는 얼마나 다행스럽고, 감사한지요. 앞으로 윤동주의 시는 수백 년을 살면서 더 많은 이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게 되겠지요. 새벽을 맞으며 시의 영원에 대해 곱씹으니 아득해져 오네요.


고맙습니다. 오늘도 함께 읽어주셔서.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 윤동주 「별 헤는 밤 일부


http://naver.me/GGu1CmY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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