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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수 Jun 06. 2016

다시 우울증의 구덩이에 빠졌습니다

완화-악화의 갈림길에서, 다시 우울의 개미지옥에 자빠진 기분

지난 4월, '나는 우울증을 겪고 있습니다'라는 글을 썼습니다. 지난해 12월부터 겪은 우울증의 기록이었고, 1월부터 병원에 다니며 치료받은 나날을 적었습니다. 지난 몇 개월 간 내가 어떤 심정이었는지, 어떤 과정을 겪었는지 적어보면서 생각과 감정을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아직 미처 가라앉지 않은 생각과 감정을 글로 풀어보려고 합니다. 아무래도 두서없는 글이 될 수도 있겠네요.


4월 이후로 다시 나의 이야기를 길게 적은 적은 없습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요. 더 적어야 할 내용이 없었고, 굳이 써야 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조금씩 천천히 증상이 나아지고 있었거든요. 모든 게 좋아 보였습니다. 기본적인 삶을 위한 생활패턴(일-운동-잠)으로 일상의 울타리가 좁아졌지만, 그 안에서도 작은 기쁨은 찾을 수 있었으니까요. 사적인 만남은 거의 갖지 않았지만, 소소하게나마 책을 읽고 영화를 보면서 혼자만의 시간을 즐겼습니다. 운동도 꾸준히 했죠.


덕분에 우울증과 불안장애 증상도 차츰 나아졌습니다. 매주 다니는 정신과 선생님과 상담 끝에 5월부터 항불안제 복용량을 줄이기도 했습니다. 매일 3회씩 먹던 약 중 점심 약을 줄였죠. 조금 더 지켜보면서 항우울제도 차차 줄여보자는 것이 계획이었습니다.


'멘붕의 방아쇠'를 발견하다


내가 우울에 빠져드는 경로를 발견했습니다

다시 우울증이 심해진 건 5월 말이었습니다. 월요일 저녁부터 깊은 감정의 바닥에서 뭔가 스멀스멀 올라오는 기분이 들었어요. 최근 바뀐 업무에 적응하면서 출근하는 게 더는 두렵지 않았습니다. 쉽게 말해서 '월요병' 같은 건 아니었다는 뜻입니다. 업무 스트레스가 큰 요인으로 작용한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원래 밤엔 다 기분 안 좋아지기 마련'이라고 할 분도 있을 겁니다. 저도 처음엔 그런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평소처럼 저녁 약을 먹고 누웠는데, 잠들지 못했어요. 새벽 3시까지 누워서 이런저런 생각에 잠겼습니다. 그러다가 울음이 터졌는데, 도무지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베개가 젖을 때까지 누워서 우는 일 말고는 다른 걸 할 수가 없었어요.


하루 정도면 그냥 넘어갈 만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늦게까지 못 자서 피곤했으니 다음날은 일찍 잠들 수 있을 줄 알았죠. 그런데 화요일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 나빠졌어요. 이유를 모르겠다 싶은 상황에서 울음이 터지고 멎질 않았습니다. 몸이 피곤하면 잠드는 일이 수월할까 싶어 운동을 다시 시작한 이래로 운동량을 가장 극한까지 늘려봤지만 마찬가지였습니다. 밤마다 원인 모를 절망이 나를 휘감아서 어두운 곳으로 끌고 다니는 시간을 고스란히 견뎌야 했습니다. 우울의 바다로 달리는 열차 위에 탄 기분이랄까요.


우울의 바다로 달리는 열차 위에 탄 기분

수요일 밤에는 '보지 말았어야 할 어떤 것'을 인터넷에서 보고 말았습니다. 이 공간에서 차마 자세히 적을 수는 없지만, 짧게 말하자면 '내가 나를 미워하게 된 이유'를 다시 떠올리게 만드는 글이었습니다. 극장에서 틀어주던 '지방흡입 광고'처럼 우울함을 떼어놓고 멀리 도망쳤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샌가 다시 내 등 뒤로 그게 '착' 따라붙은 느낌이었습니다. 극복하려고 그렇게도 애를 썼는데 다시 처음으로 돌아온 것 같았고, 마음속에서 무언가 '쿵'하고 떨어지는 듯했습니다.


결국 그날 밤에는 불안장애 증상도 다시 나타났습니다. 울먹이다가 몹시 불안해져서 두 발을 땅에 딛고 있는데도 끝없이 추락하는 기분이 들었어요. 그러다가 전처럼 숨을 쉬지 못했습니다. 도저히 그 상태론 잠들 수 없었고, 결국 다시 찾은 병원에서는 항불안제 복용량을 늘리자고 진단했죠. 항우울제도 이전보다 더 복용량을 늘려야 했고요. 잠드는 것조차 제대로 할 수 없어서 수면제도 처방받았습니다.


선생님과 상담하면서 돌아보게 된 것은, 내가 우울에 빠져드는 경로 중 하나는 '실망'이라는 겁니다. 자신에 관한 실망, 혹은 내가 타인을 실망시켰다는 생각이 '멘붕의 방아쇠'라는 걸 발견했습니다. 어떤 방식으로든 내가 나의 초라함을 발견하게 될 때엔 도무지 그 순간을 견딜 수가 없습니다. '안 그런 사람이 누가 있느냐'고 물을 지도 모르겠지만, 내게 있어선 그 정도가 '내가 너무 미워서 날 죽여버리고 싶을 정도'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정말 그런 생각이 매번 떠오르고, 멘탈이 조각나서 파편이 나뒹굽니다.


우울함이 파놓은 개미지옥으로, 다시 빠지다


나쁜 기억을 상자에 담아서 처박아도, 다시 튀어나옵니다

나쁜 기억을 자꾸 곱씹는 것은 좋지 않은 습관입니다. 처음 한두 번은 문제 해결을 위한 시도가 될 수도 있지만, 이후에도 반복되는 회상은 대부분 자학 이외에 다른 역할을 하지 못합니다. 상처에 딱지가 앉자마자 뜯어내고 다시 피를 보는 꼴이죠. 그런데도 계속 묻었던 기억을 다시 찾아서 꺼내보는 일이 잦아졌고, 그럴 때마다 우울함은 다시 찾아왔습니다. 제 경우엔 스스로 실망스러운 일, 혹은 내가 누군가를 실망시킨 일이 대다수였죠.


머릿속에서 '나쁜 기억'을 '상자'에 집어넣는 장면을 떠올렸습니다. 그 상자를 테이프로 봉하고, '기억의 방' 복도 끝에 있는 곳에 처박고, 그 방에 자물쇠를 채우고, 열쇠를 호수에 던져 넣는 상상도 했습니다. 그래도 효과는 오래가지 않았어요. 어떻게든 '나쁜 기억의 상자'는 다시 내 앞에 와있고, 나는 어쩔 도리없이 그걸 열어젖히고 말았습니다. 매일 밤 그 짓을 반복했고, 상상의 마지막은 늘 내가 목을 매다는 장면으로 끝났죠.


'이렇게 쓸모없는 존재로 살아가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 싶은 생각이 머릿속을 여백 없이 가득 채우고서야 지쳐 잠들었습니다. 그런 회상이, 이런 식의 자책이 아무런 소용없는 짓이란 걸 알면서도 뜻대로 그칠 수가 없었습니다. 머리로 아는 것과 감정이 느끼는 것의 영역이 늘 똑같이 포개어지는 건 아니겠죠.


출구가 없어요, 출구가...

겨우 구덩이에서 기어올라왔나 싶은 순간에 다시 '우울함이 파놓은 개미지옥'으로 나자빠진 듯한 나날이었습니다. 바깥에 있는 사람들의 시선에선 얕아 보이는 구덩이일지라도, 안에서 기어오르는 심정으로는 빠져나가기가 쉽지 않네요. 마치 출구가 보이지 않는 미로에서 헤매는 심정입니다.


최근에서야 느낀 것 중 또 하나는, '여럿이 모인 화기애애한 자리' 이후에 우울함이 찾아오기도 한다는 겁니다. 회식, 파티, 혹은 그 외에도 사람들이 모여 왁자지껄 신나게 떠드는 자리에 참가했다가 혼자만의 일상으로 돌아오면 어김없이 우울해집니다. 결국 이런 자리도 점점 더 피하게 됩니다.


쾌활한 성격이 아니라 아무래도 입을 조용히 다물고 듣기만 하는 편인데, 그러다 보니 내가 초라하게 느껴지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어떤 자리나 사람들이 못마땅하거나 불쾌한 건 아닙니다). 어릴 적부터 그런 감정이 든다는 건 느꼈지만 이유는 몰랐는데, 최근 '나의 초라함'이 멘붕의 방아쇠 역할을 한다는 점을 되짚으면서 이것도 비슷한 차원에서 피어오르는 감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허우적거리는 내 모습이 우습지만...


심슨은 늘 답을 알고 있습니다

지난 글에서도 밝혔듯이, 내가 우울의 늪에 빠진 이후 스스로 내린 처방은 '생활패턴의 단순화'와 '인간관계의 단절'이었습니다. 타인도 나도, 전혀 내 삶에 아무런 기대를 갖지 않도록 만드는 방식이었죠. 한심하다고 비웃어도 좋습니다. 하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도무지 버텨낼 수 없는 상황이었다는 것만큼은 분명했습니다.


생존을 위한 기초적인 요소를 제외한 모든 것을 덜어내고, 기대치를 할 수 있는 한 낮추고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가끔 발을 헛디딘 것처럼 휘청거리고, 얕은 물에 몸을 담그고 허우적거리는 내 모습이 우습기도 합니다. 그럴 때면 설상가상으로 자괴감이 더 심해질 때도 있습니다.


지나고 나면 괜찮다는 조언, 감사하지만 전 아직이라서요...

정신과에서 치료받기 시작한 당시에도 '보통 회복이 완만한 상승곡선으로만 꾸준히 이어지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보통 완화와 악화가 불규칙적으로 반복되고, 이게 우울증 치료가 쉽지 않은 이유라고 말이죠. 나는 비교적 꾸준히 나아지던 중이라 다행이라고 들었는데 결국 이렇게 한 번은 다시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아직 지난번 겪은 밑바닥까지는 추락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시간이 치료해줄 것'이라는 말을 믿지 않습니다. 묻었던 기억을 다시 끄집어내는 것도 결국 시간이 흐르면서 우연히 마주치는 어떤 것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가족이 우울증을 겪고 곁에서 지켜봤다는 어느 분이 제가 힘들 때마다 온라인상으로나마 도움을 주곤 합니다. 소박한 대화가 가끔은 큰 힘이 된다는 걸 느끼기도 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더 많은 사람을 만나거나 규모가 큰 행사에 참가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불안장애가 다시 도진 상황을 감안하면 사실 집 밖으로 나가는 일도 최소한으로 줄이고 싶습니다.


일단은 원래의 계획처럼 혼자서 오래 지내보려고 합니다. 일과 취미생활을 병행하며 조금씩 여유를 쌓아나가야 할 것 같아요. 만나는 사람의 깊이나 범위를 늘리는 것도 결국 기대치를 높이는 행위이기 때문에 자제하려고 합니다. 아마 앞으론 말도 더 줄이고 생각을 더 해봐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시술 초기에 우울증 완화에 도움을 주었던 타투를 더 많이 새겨보려고도 합니다. 책도 더 읽고, 잡생각을 줄여보려고 노력해야겠죠.


완화와 악화의 갈림길에서 또다시 털썩 주저앉은 상황입니다. 무기력함에 젖어서 늘어지고 싶지 않지만, 내 뜻대로 되는 게 아니라는 것만 확인할 뿐입니다. 언젠가 시간이 지나서 마침내 개미지옥 바깥으로 나갈 수 있을까요? 모르겠습니다. '지나고 나면 괜찮아질 거'라는 위로도 가끔 듣지만, 나는 아직 지나기 전이라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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