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치료 후 계속되는 나날, 8개월을 돌아보면서
지난 6월 16일에 '다시 우울증의 구덩이에 빠졌습니다'라는 글을 썼습니다. 1월 우울증 때문에 정신과에 방문했던 이후, 치료를 받기 시작한 이래로 다시 악화된 상황을 기록한 내용이었죠.
다행히 그 뒤에는 아직 그때만큼 우울증이 심해진 적은 없습니다. 더디지만 조금씩 나아지고 있습니다. 여전히 매주 정신과에 가서 상담을 하고 약을 꾸준히 먹고 있습니다. 상담을 통해 '항불안제' 점심 약을 상황에 따라 줄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사람은 사적인 일로 거의 만나지 않으며, 아주 가끔 친한 친구를 만나는 수준입니다. 퇴근 이후에는 습관처럼 헬스장에 가서 혼자 운동을 합니다. 그리고 주말을 포함한 대부분의 시간은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며 혼자 보냅니다. 일상의 울타리는 여전히 좁은 상태지만, 다시 넓히려는 노력을 적극적으로 하지는 않습니다.
우울증이 처음 악화될 쯤에 운동도 시작했습니다. 1월에 정신과에 다니기 시작했고, 그보다 한 달 앞서 12월에 헬스장에 등록했죠. 일정한 운동이 주는 장점 덕분에 개인적으로 도움을 받은 부분이 있습니다. 일단 운동을 하는 동안에는 머릿속에 복잡한 생각이 들지 않았고, 몸이 변하면서 어릴 적 말랐던 것 때문에 콤플렉스가 생긴 것에서도 벗어나고 있습니다.
지난 8개월을 회상하면서
앞에서도 밝혔듯이, 아직 우울증과 불안 장애 증세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8개월간 치료받으면서 돌아볼 여유는 생겼고, 글로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느끼기도 했습니다.
우울증이 심하게 나를 괴롭히던 순간을 아직 잊을 수 없습니다. 아마 앞으로도 오랫동안 문득 떠오르겠죠. 매일 나에 대한 회의와 자책감에 젖어 지내던 날들이었습니다. 그건 매일 살아간다기보다 차라리 하루하루 죽어가는 것에 가까웠습니다. 실제로도 매일 죽음을 생각했고, 상상의 끝은 내가 목을 매는 모습이었습니다.
어느 시점에서는 상상이 아니라 실제로 삶을 마감하기 위해 계획을 세우는 나를 발견했죠. 12월에서 1월, 새해로 넘어가던 시기에는 모든 걸 포기하기로 마음먹기도 했습니다. 일상을 포함해서 주변 관계를 정리하고, 정말 죽는 게 낫겠다고 생각해서 하던 일을 그만두려고도 했습니다. 다행히 당시 사표가 반려되고, 병원에 가볼 것을 권하며 나의 얘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직장에 있었기에 지금 이 자리에 아직 살아있다고도 생각합니다.
당시엔 밤마다 잠자리에 들면서, '이대로 다시 깨어나지 않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땐 다시 날이 밝아 또 하루를 살아야 한다는 게 그야말로 끔찍했어요. 우울증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그저 힘든 순간에 가끔 찾아오는 허무함' 정도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울증에 시달리는 당사자에게는 삶을 가를 정도로 중대한 질문이 앞을 가로막는 상황인 거죠. 답을 내리지 못하면 결국 죽음에 가까워지는 셈입니다.
삶 자체를 포기하는 것을 선택할 수는 없지만...
"도망쳐서 도착한 곳에 낙원 따윈 있을 수 없다."
만화 <베르세르크>에 나오는 대사입니다. 그리고 사실이기도 했습니다. 불안과 우울의 심화를 처음 겪고 나서는, 삶을 고스란히 포기하고 도망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언제까지 피하려는 방식으로 지낼 수는 없었습니다. 얼룩을 깨끗이 지우듯이 불안과 우울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겠죠. 끌어안을 수도 완전히 밀어낼 수도 없겠지만, 적절히 우울과 불안을 통제의 범위 안에 두고 살아가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상담하던 선생님의 얘기도 같았죠.
그래서 버텼습니다. 어떻게든 일상을 형태로나마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일을 하고, 운동하고, 내가 즐길 수 있는 독서와 영화라도 최소한 하면서 지냈습니다. 몸과 마음을 계속 움직이는 일은 실제로도 제게 필요했으니까요.
어떤 관점에서는 '일상의 대부분'을 포기하는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연애나 장기적인 계획 등 다른 사람들에겐 삶의 큰 부분을 덜어냈습니다. 자책감이 심한 상황에서 기대치를 낮추려는 것이 스스로 택한 길입니다.
이런 방식으로 얼마나 더 오래 삶을 유지할 수 있을지 사실 모르겠습니다. 그런 의문이 들 때도 있지만, 그나마 이렇게라도 살아가지 않으면 버티기 버겁다는 생각에 어쩔 수 없다는 결론에 이릅니다. 도망쳐서 도착한 삶이 낙원일 수 없겠죠. 삶의 많은 부분을 회피하고 버리면서 계속 살아가도 괜찮을까요.
그래도 최근에는 스스로 죄책감을 느끼고, 작은 존재라고 여기면서 나를 괴롭히는 일을 어느 정도 덜 하게 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타투도 몇 개 했습니다. 의미를 담아서 무언가를 몸에 새기는 일이 필요하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신기한 것은 실제로 타투가 우울증 완화에도 어느 정도 도움이 되었다는 겁니다.
버틸 수 있는 범위까지가 일상이기에
일상의 범위가 매우 좁아졌고, 단조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래도 우울증이 극심하던 나날엔 그게 최선이라 생각했습니다. 버틸 수 있는 범위까지가 일상이라고 여겼으니까요.
살아가면서 자신을 이루던 조각을 잃어가고, 그걸 반복하는 것 같습니다. 어떤 파편은 길을 걷다 나도 모르게 흘린 무언가처럼, 다시 되찾을 수 없다는 생각도 들어요. 왔던 길을 되돌아 가서 바닥을 아무리 살펴봐도 영영 돌이킬 수 없던 경험같이.
그래도 계속 앞으로 걸어가야 한다는 것만은 분명히 느끼고 있습니다. 때로 원하지 않더라도, 걸음을 멈출 수도 뒤로 되돌아 걸을 수도 없는 일입니다. 산다는 건 그런 거라고 생각해요.
가끔 쉬어갈 수도 있겠죠. 그럴 땐 걸음을 멈춰가야 하는 거겠죠. 우린 서둘러 걷다가 너무 많은 걸 놓치는 사람들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