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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수 Sep 14. 2017

열등감, 너 언제부터 거기 있었어?

미처 있는 줄도 몰랐던 콤플렉스의 발견... "네가 왜 거기서 나와?"

2017년도 9월에 접어들었습니다. 어느덧 우울증을 앓고 맞이하는 두 번째 가을입니다. 시간이 참 빠르다고 느끼면서, 어느덧 약을 먹고 상담을 받은 지 1년 9개월째라는 생각에 내가 어느 지점에 왔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사실 요즘 애매한 상태 같습니다. 우울증에 허우적거리느라 책임질 일을 모두 내팽개치던 상태에서 어느 정도는 벗어나고는 있습니다. 이제 상태가 꽤 괜찮아지는 것 같은데, 다시 어디까지 감당하며 살아야 할지 사실 모르겠어요. 그런 선을 아예 생각하지 않고 '그냥 살아가는' 게 맞는지도 모르겠지만.


우울한 기분은 약을 꾸준히 장기 복용해서 잘 들지 않는 편입니다. 하지만 가끔 '이게 다 무슨 소용이 있나' 싶은 허무함은 찾아옵니다. 내가 하고 있는 게 실은 부질없는 짓이라는 생각들. 흐르는 시간과 일상의 관성에 나를 맡기는 게 할 수 있는 전부일까 싶은 생각도 드네요.


최근 열등감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게 됐습니다. 일상에서 어떤 사건을 겪으면서, 내면에 잠들어 있던 콤플렉스가 고개를 들고 튀어나오는 느낌을 다시 느꼈기 때문입니다.


감정의 소용돌이가 지난 후, 밑바닥을 확인하는 일

지난 글에서도 밝혔듯이, 2015년 12월부터 꾸준히 상담하면서 '내 우울의 원인'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정신과 선생님에게 내가 겪었던 감정이나 느낀 생각을 털어놓으면서 그때 왜 그런 생각과 감정이 들었는지 돌아보게 됐습니다.


제 경우에는 우울을 시작하는 '트리거'의 큰 부분이 '실망'이었습니다. 내가 스스로 실망스럽다고 느낄 때나, 혹은 내가 누군가(나에게 중요한 존재)를 실망시켰다고 느낄 때 우울의 방아쇠가 당겨집니다. '나는 쓸모없는 존재'라는 느낌이 자존감을 흔들고, 딛고 있던 바닥이 꺼지는 듯한 불안장애 증상도 동반됐습니다.


악화와 완화의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우울의 이유를 찾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항우울제와 항불안제도 도움을 주었지만, 내가 왜 우울해졌는지 돌아보는 일은 '다시 같은 길을 걷지 않고 악순환을 막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막연해서 '어두운 방 안에서 손을 더듬거리는' 느낌도 들었죠. 그런데 조금씩 익숙해지자 감정의 소용돌이가 지나간 뒤 그 밑바닥을 차분히 살펴보는 게 습관이 됐습니다. 유리병에 든 탁한 물속 앙금이 가라앉듯이, 격했던 감정이 추슬러지면 뭐가 가라앉는지 보는 것이라고 할까요.


우울-불안과 공통분모가 있긴 하지만, 열등감이 주는 충격과 그 원인을 찾는 과정은 꽤 달랐습니다. 일단 제 경우에는 열등감-콤플렉스를 발견할 때마다 미처 거기 있는 줄도 모르던 가시에 찔린 기분인데요. 뜨끔하기도 하고 등이 서늘한 느낌도 드는 게... 영 꺼림칙합니다.


마치 켜서는 안 될 스위치를 켜 버린 느낌이라고 할까요. 열등감을 찾는 도중에 또 열등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내가 이런 감정을 느끼다니' 하는 생각에 도망치고 싶어 지기도 하고요. 대부분 열등감이란 감정의 바닥에 찌질함이 말라붙은 것 같아서, 두 눈으로 보고도 인정하기 싫어서 고개를 돌리게 됩니다.


우울의 경우엔, 그 감정이 피어오르게 된 계기나 요인을 찾으면 반복하지 않는 데 확실히 도움이 됐습니다. 하지만 열등감은 되짚으면서 다시 혼자 상처받고, 또 원인을 발견하고도 '뜨거운 감자를 손에 쥔 마냥' 어쩔 줄 몰라서 시간을 허비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내 모습을 보고 다시 열등감을 느끼는 악순환에 빠지기도 했고요.


자기혐오를 먹고 자라는 괴물, 열등감에서 벗어나기


존재하는 줄도 몰랐던 게 튀어나오면 당황스럽기 마련입니다. 감정도 마찬가지겠죠. 특히 부정적인 감정이라면 더욱 그럴 테고요. 자존감이 박살난 자리에서 열등감이 뿌리를 내리는 건, 찌질함이 덩굴처럼 여기저기 퍼지기 전에는 알아차리기 힘듭니다.


열등감이 있다는 것과 열등감의 이유가 무엇인지 알아차려도 어려움은 남습니다. 이걸 누군가와 공유하기도 힘들고, 스스로 찌질함을 감당하기가 쉽지 않다는 겁니다. 모르는 분이 거의 없겠지만, '내가 찌질하다는 걸 나 자신에게 알리는 일'은 결코 순탄하지 않습니다. 반가운 소식이 전혀 아니니까요.


열등감의 해소를 위해서는, 먼저 본인의 찌질함을 인정하는 게 첫걸음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순간의 감정을 담백하게 바라보고 그 감정 자체가 나쁘거나 잘못된 건 아니라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물론 그 감정이 때로 추하거나 비겁해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이를 외면하거나 묻어두려는 태도는 오히려 열등감을 악화시킬 수 있다고 봅니다.


자기혐오는 열등감과 짝을 이루는 감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둘 모두 건드리지 않고 살아가려면 자신을 바라보는 기준을 낮추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스스로 돌아보고 자신이 분발하게 만드는 동기 요소가 될 수도 있지만, 자기 파괴적인 방향으로 감정이 뻗어나가면 기대치를 낮추는 게 당장은 급한 불을 끄는 데 도움이 됩니다.

열등감은 적절히 햇살만 비추고 물만 공급돼도 무럭무럭 잘 자라는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도 자기혐오라는 토양이 잘 깔려있다면 열등감이 덩치를 불려 가는 건 순식간입니다. 열등감이 스스로를 돌아볼 계기가 되기도 하지만 결국엔 잡초 같은 거니까 수시로 뽑아줘야 할 거라고 봐요. 인생에도 장마 같은 시기는 늘 찾아오기 마련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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