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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잉절미 Jul 04. 2017

도장깨기(1)

: 상반기의 책을 함께 읽어보자

장마다. 일기예보를 잘 확인하지 않으면 쌓이는 우산의 개수가 점점 더 많아지는 계절. 빗소리는 일상의 소음을 가리고, 가려진 소음들의 부재로 인한 적막함은 꼭 그만큼의 상념들로 메워진다.

이렇게 장마가 찾아왔다는 건, 한 해의 절반을 걸어왔다는 뜻. 2017년의 중간지점에 온 것을 기념하며, 이번 모임에서는 상반기의 책을 각자 선정해 가져왔다.


멤버들의 마음속에 남은 상반기의 책 이야기를 들어보도록 하자.


여기서 도장깨기란? 일명 불후의 명곡 방식으로 1명씩 자신이 읽은 상반기 최고의 책을 소개한다. 투표 후 승자는 계속해 새로운 사람의 책과 다시 대결한다. 최후의 승자의 책을 모두 함께 7월 3째주에 읽는 이벤트.


JB


더 좋은 것을 꼽아보는 즐거움은 뭘까. 누구에게 보여주거나 말하지 않더라도 좋았던 점이나 아쉬웠던 점들을 곱씹어보며 '나만의 책 리스트'를 만들어보는 것은 일종의 수집욕을 자극한다.  


수집욕에는 나만의 은밀한 욕망이 섞이는 것 같다


올해 상반기는 작년에 꼽았던 <멀고도 가까운>이나 <숨결이 바람이 될 때>의 여운이 강렬해서 였는지 마음에 드는 책이 많지 않았다. <랩 걸>이 보여준 과학자의 삶이 신선해서 좋았고 <조선의 생태환경사>에서의 아프리카를 연상시키던 조선에는 도끼와 같은 매력이 있었다. 하지만 두 책 모두 한 권의 책으로서의 완결성이나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부족함이 있다고 판단해서 상반기의 책으로 꼽지는 못했다.


그래서 고른 책이 <글쓰기의 최전선>이다. 우선 내 방 서랍에 넣어놓고 싶은 문장들이 수두룩해서 읽는 재미가 있고, 글쓰기 기법보다도 글쓰기를 어떻게 바라보는 시선을 가르쳐주어 고마웠다. 덤으로 '삶'까지 가르쳐준다. 무엇보다도 부록으로 들어 있던 '침대에 누워 대소변 받아내도 살아 있어 괜찮았어' 를 읽으며 '글을 쓰지 않던 사람이 글을 쓰게 되는 기적'이 무슨 말인지 이해했기에 상반기의 책으로 꼽지 않을 수 없었다. 기적을 봤는데 고민할 게 없지.


하반기에는 인생책 리스트를 공유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JP


잉절미 모임에 처음 가져온 책이 박노자의 <당신들의 대한민국>이었는데, 그동안 모임에 등장한 책들과 성격이 판이해서 이질감이 매우 컸던 기억이 난다.  이 책 <냉소 사회>도 마찬가지였고, 그리하여 책 도장깨기에서는 광속으로 탈락했다. 아쉬운 마음에 내 상반기 최고의 책을 홍보하기 위한 이야기나 마저 해야겠다.

박근혜가 탄핵당하는 과정은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이정표로 남겠지만, 박근혜가 권력을 얻은 과정 또한 우리 사회가 '민주적으로' 작동하면서 일어난 것이다. 분명 교육 수준은 높아지고 정보 교환도 빨라졌는데,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대통령은 새로 선출되었지만, 우리 사회는 이대로 괜찮을까?


서점 판매대에 대놓고 파는 책도 아니었는데, 서점 구석에서 이런저런 책을 뽑아 보다가 우연히 이 책과 마주했다. 그 순간, 투표권을 가지게 된 뒤 선거마다 주변 사람들의 "투표해서 달라지는 게 뭐 있나, 정치인들이 선거철에만 다 쇼하는 거지 뭐"라는 냉소에 맞닥뜨렸던 과거가 떠올랐다. 잠시 고민한 뒤, 이 책을 서점에서 집어 들게 되었다.


저자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열등감', '소비주의', 그리고 '냉소주의'를 재정의하며, 이에 기댔던 진보정당 및 신생정당이 실패한 원인 및 정치적 극우주의가 발효하는 지점을 짚어낸다. 시국에 맞추어 써낸 글이라 그런지 모르겠으나, 글이 다소 정돈되지 않은 감이 있어서 제대로 완독하는 데 꽤 오래 걸린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이 책이 2016년 12월에 나온 책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그 시의적절함은 그런 단점을 상쇄하고도 남는 가치를 지닌다. 인터넷 문화에 대한 분석, 프로레슬링이나 <킥 애스> 같은 대중문화 예시는 책의 주장에 한층 더 개성을 심어준다.


이 책이 가장 빛나는 지점은 '냉소주의'를 '극복'이 아닌 '화해'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데 있다. 시민 각자가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냉소주의'에서 자유롭지는 못할지라도, 그 모순을 안고 나아갈 때 우리가 기존 정치 시스템에 대해 냉소하는 중에 갈구했던 진정한 정치가 회복될 수 있다고 역설한다. 우리 사회는, 결국 우리가 '냉소하는 소비자'에서 '생산자'로 나아갈 때 괜찮아질 것이다.

이전에 읽은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도 그렇고, 책을 읽을수록 일을 키우는 느낌이다.


찬라


모임에 가기 전에 상반기의 책을 꼽으려 책장을 둘러보기도 하고, 예전에 썼던 글의 목차를 훑어보았다. 선명하게 머리에 있는 순서대로 책을 떠올려보았는데 아니 이럴수가. <살인자의 기억법>, <채식주의자>, <무진기행>... <나와 당신의 이야기>, <해변의 카프카> ... 등. 꽤 선명했던 책들은 지난 년에 읽은 게 대부분이고, 최근에 읽은 책들은 생각보다 여운이 남아있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원래 이렇게 소설 위주로 읽었던가. 나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아이디얼리스트(idealist)가 아니라 휴머니스트(humanist)에 더 가까울지도 모르겠다고, 시간 내어 나에 대해 곰곰이 관찰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곰곰이 마음을 들여다보니, 이번 상반기를 말할 수 있는 책이 있었다.

폴 칼라니티의 <숨결이 바람될 때>이다.

2016 최고의 화제작이라고 한다. 빌 게이츠도 추천도서로 정했다나. 나는 2016년보다 늦게 우연히 손에 들어와서 읽게 되었다. 시간이 흘러 2017년이 되었는데도, 나도, 잉절미 사람들이 아직 읽지 않았다면 언젠가 마음이 내킬 때 읽어보길 바라게 되었다. 이 책은 과연 어떻길래 36개국에도 출간이 된 것일까. 그 이유는 모르겠지만, 나는 삶을 채우는 한 인간의 의지, 마음, 생각을 알게 되고, 그 앎이 내 삶을 채우는 데 도움이 되었기 때문에 상반기 최고의 책으로 꼽았다.


나는 작년 이맘때, 자주 여행을 가고,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영화를 보고, 사람을 만나고, 틈틈이 공부도 하고 생각도 하며 살았다. 요즈음은 하루의 1/3을 한 주제의 생각을 하고, 나머지 시간에 가끔 책을 읽고, 가끔 사람을 만나고 틈틈이 공부를 한다. 일년 전 나는 일년 후 내가 어떻게 살지 구체적으로 생각해본 적 도 없고, 이렇게 살 거라고 상상도 못했다. 세상은 계속 바뀌고, 일상도 자주 변화한다.


칼 폴라니티에 비하면 나는 어리광을 부린 것 같지만, 그의 세상도 바뀌었고 일상도 크게 바뀌었다. 레지던트 수료 과정 중이었던 그는 암 선고를 받고 하루아침에 의사에서 환자가 된다. 영혼이 궁금해서 문학공부를 마치고 자의로 의사를 지원한 적도 있지만, <숨결이 바람 될 때>는 그가 통제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상황 속에서의 기록이다.


세상이 크게 바뀌면 극한 감정에 치우치거나 극단적이 선택을 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폴 칼라니티는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그는 평소와 다름없이 고민하고 생각하고 또 신중히 선택하고, 감정을 느끼며 살아갔다. 책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변화하는 일상에서도 그는 진심 어리고 삶을 진중히 바라보고 타인을 배려하며 세상에 순수한 호기심을 가지고 살아간다. (아마 그의 특질인 것 같다. 그가 암에 걸리지 않았어도, 그는 똑같이 살았을 것이다.)


폴 칼라니티에 비하면 약하다고 비교할 사람이 있겠지만, 살아가는 사람들 모두 나름대로 그들만의 전쟁 같은 하루를 살아간다고 생각한다. 전쟁의 대상이 병마일수도, 자신의 능력일 수도, 타인과의 관계일 수도, 먹고사는 일일 수도, 지루한 시간일 수도, 갑작스런 행운일 수도 있다. 그 전쟁이 어느새 끝날 때쯤, 힘들었다고 기억될 수도 있다. 그런데 끝의 단정과 다르게, 하루하루 순간순간은 우리가 감정을 느끼고 고민하고 생각하면서 삶을 살았던 것뿐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을 통해 결국 우리는 전쟁을 사는 것이지만, 그 모든 순간을 살아내는 것이 삶인 것임을 확인한다.


나도 폴 칼라니티처럼 매일 평일을 기록하고 있다. 분명히 일상의 다양성은 줄었지만, 내가 느끼는 감정과 떠오르는 생각들, 새로 알게 된 사람들과의 관계는 여전히 깊고 다양하다. 그래서 혹시 삶이 전쟁이라고 밖에 느껴지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숨결이 바람 될 때>와 삶을 기록하는 일을 권유하고 싶다. 그때 아래 노래도 같이 들으면 좋을 것 같다.

...
끝도 시작도 뻔한 줄 알면서
우린 왜 만났을까
그걸 나도 모르겠어
또 일 년이 흘렀어
음악 소리에 맞춰서
우린 오늘도 함께 춤을 추고 있어
모든 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
믿을 수 있는 건
함께 있는 지금뿐인 걸
알 것 같아 난
영원보다도 길고 더욱 소중한 것
그건 바로 지금이야
날 보고 있는 너를 보면
이 순간이 영원이야
바로 지금 우리 여기 이곳
중요한 건 지금이야
우리가 함께 하는 순간
이게 바로 영원이야
...
- 언니네 이발관, 누구나 아는 비밀


정준


상반기 책은 「교수와 광인」으로 정했다.


처음 이 책을 알게 된 것은 조승연 작가의 강연에서였지 않았나싶다. 그 때는 두 주인공 간 우정을 다룬 실화라는 데에 초점을 맞추고 이야기를 했었지만, 정작 그걸 듣고있는 나는 그저 좋아하는 ‘언어’를 주제로 한 ‘실화’라는 데에 더 매료되어 샀던 책이지 않은가. 보통은 맛있는 것과 맛있는 것을 합쳐 놓으면, 반드시 그러라는 법은 없지만 정말 맛있는 것이 탄생하게 마련이다. ‘언어’와 ‘실화’라는 내 취향을 적당히 버무린 이 책 또한 그러했다.      


이 책은 수 십 년간 셀 수 없는 인용문이 쌓여가며 만들어지는 사전을 사이에 둔, 편집자인 한 교수와 자원봉사자였던 한 미치광이 간의 관계를 다룬 이야기이다. 사전을 편찬하는 일에 메인 20년간, 교수인 제임스 머리와 정신병을 앓고 수감된 살인자 윌리엄 마이너는 서로 일면식도 없지만 서신을 통해서 서로의 작업을 나눈다. 한 쪽은 언어에 대한 사랑과 그 마음이 배여진 자료들로, 한 쪽은 자원봉사자인 마이너의 봉사에 감사하는 마음을 담으며. 언어에 대한 사랑을 사이에 둔 두 사람의 이야기는 사전을 만들기 시작한 때부터 그들이 세월의 안개로 사라지는 때까지 이어진다.     


읽으면서 다시금 생각해 보는 것은 열정. 책의 부제로 쓰여진 ‘열정’과 ‘광기’는 교수와 광인의 각각의 수식어일 것이지만은, 그 두 가지가 지목하고 있는 대상은 둘 다 똑같은 언어에 대한 강렬한 내적 동인이 아니었을까? 결국 사회에서 용인되는 형태로 발산되는 것에 열정이란 수식어를 붙일 수 있고, 그렇지 아니하면 광기라고 하는 게 우리의 일반 시각이겠지만. 그 사이에는 정말로 수많은 공통분모가 있는 것은 아닌지. 어떠한 대상에 대한 집착, 사랑, 온갖 기제로 무장된 동인, 억제되지 못하는 생각과 욕망, 그리고 그것이 행동으로 드러나고야 마는, 그러한 일련의 단계들. 그러고 보니 실제로 옆에서 보고 읽은 사람들을 하나하나 떠올리자면, 한 대상에 온전한 열정을 품은 사람은 미치광이와 비슷했고 미치광이는 통제되지 않는 어떤 뜨거운 마음을 품은 자들이었다. 얼마나 그 감정의 결이 정리되고 어떤 양식으로 받아들여지는가만 다를 뿐.          


개인적으로는 광인인 마이너 씨의 삶에 온 감정을 이입하여 읽어서인지 피로한 영감을 끌어안은 책이기도 했다. 전쟁 이후 강박과 편집증으로 점철된 그의 학문적 호기심이 무너지지 않은 것은, 감히 생각해보자면 자신을 인정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고 자신과 같은 마음을 품은 자들과 함께 일하여서 그렇지는 않은지. 참. 그래서 다시 보자면, 자신이 사랑하는 일을 찾는 것만큼이나마 그 일에서 자신을 인정해주는 사람을 만나는 것도 정말 복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런 사람을 만나기란, 또 시간을 떼어 함께 걸어가는 기회를 만나기란 또 얼마나 힘든지. 그렇다.


         

뱀말이지만, 이 책을 나눌 때에 전날 밤을 새어서 한 번, 시간제한에 당황해서 또 한 번. 말만 더듬은 채로 이 책에 이야기한 것 같다. 말하는 게 편치는 않아서 더 그러한 듯. 아무래도 이 책을 볼 때마다 표지에 있는 머리 교수는 ‘넌 말보다는 글이 편하지?’라고 내게 되물을 거 같아 당혹스러움을 느끼겠지만, 뭐 어떤가. 오랜 글쓰기 슬럼프에서 벗어난 첫 글이 이 글이라 다행스럽기만 하다.           




To Be Continued -

     도장깨기(2)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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