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반기의 책을 함께 읽어보자
잉절미 모임에 참여한지도 어언 4개월이 지났다. 중간 중간 모임에 빠지기도 부지기수였고, 독서불감증을 통과하느라 책을 멀리하던 때도 많았다. 이런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계절은 무심히 바뀌었고 7월이 불쑥 찾아왔다. 올해 상반기가 벌써 다 지났다니. 충격적인 사실이다.
상반기 책을 선정하자는 재미있는 제안을 듣고, 몇 주 동안 '무슨 책을 소개할지 생각해봐야겠다'라고 생각만 했다. 하지만 말 그대로 생각해보기를 결심만 했을 뿐, 실제 고민한 시간은 모임에 가기 10분 전부터였다. 상반기 읽은 책이 별로 없어서 고른다고 하기 민망하지만, 그럼에도 골라보자면 나는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유시민 저)'을 꼽겠다.
이 책은 올해 상반기 내가 여러 개인적인 문제들로 방황하고 있을 때, 처음으로 강력히 읽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던 책이다. 또한 다른 책에 대한 열정을 심어주어 다음 독서를 하게 한 녀석이기도 하다.
맨 처음 읽고 싶다고 느꼈던 이유는 두 가지 정도가 있었다. 하나는‘유시민’이라는 사람 자체에 대한 관심이었고, 다른 하나는 글을 논리적으로 잘 쓰고 싶어서였다. 당시는 박모씨와 최모씨가 합심하여 우리나라를 말아먹고 있던 사실이 밝혀지던 시기였다. 이 가운데 빛나는 활약을 하고있던 '유시민'이라는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가 너무 궁금해졌다. 더불어 그때는 내가 일을 그만둔 직후로, 앞으로 남는 시간 동안 책을 많이 읽고 자주 생각을 정리해야겠다고 다짐했던 때이기도 하다. 관심이 있던 작가의 글쓰기 책을 발견했으니 안 읽고 지나갈 수 없었다.
책에는 글쓰기에 대한 여러가지 유용한 조언들이 있었다. 하지만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소중한 조언들만 늘어놓았다면 나는 당장에 책을 덮었을 것이다. 이 마음을 어떻게 알았는지 작가는 본인이 글쓰기를 어떻게 업으로 삼게 되었는지 그 여정도 함께 실어 놓았다. 직업으로든 취미로든 앞으로 글을 계속 쓰게 될 운명이기 때문에 실생활 글쓰기에 어떻게 적용할 지 열심히 고민하면서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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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만의 글쓰기 3원칙
(취향고백과 주장을 구분하라, 주장은 반드시 논증하라, 하나의 주제로 글을 쓰라)
틈틈이 글쓰기를 연습하여 글 쓰는 근육을 길러라.
좋은 글을 많이 읽어라.
전략적 독서 목록을 정해 읽으면 효과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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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의 조언들은 글 쓰는 법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본 적이 많이 없던 나에게는 정말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것들이었다. 모두 중요한 말들이었다. 하지만 다른 무엇보다 가장 기억에 남는 구절이 하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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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는 자신의 내면을 표현하는 행위다.
표현할 내면이 거칠고 황폐하면 좋은 글을 쓸 수 없다.
글을 써서 인정받고 존중받고 존경받고 싶다면 그에 어울리는 내면을 가져야 한다.
그런 내면을 가지려면 그에 맞게 살아야 한다.
글은 ‘손으로 생각하는 것’도아니요, ‘머리로 쓰는 것’도 아니다.
글은 온몸으로, 삶 전체로 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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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방법론 책에 불과하다고 생각했지만, 이 구절을 읽고 나서 나는 삶을 돌아보게 되었다.
‘내가 쓴 글들은 다른 사람에게 유익이 되는가? 나는 다른 이에게 유익이 되는 삶을 살고 있는가?’
아쉽게도 잉절미 모임에서 이 책이 올해 상반기 최고의 책으로 선정되지는 못했다. 하지만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봐야 할 ‘2017 상반기 최고의 질문’을 던졌다는 것에 의의를 둔다.
나의 <여중생A>가 함께 읽어보고 싶은 책으로 선정되었다. 내가 <여중생A>를 함께 읽어보고 싶은 책으로 추천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함께 생각해볼 주제가 많이 담겨있다.
- <여중생A>는 만화(웹툰)라고 해서 단순히 흥미만 담고 있지 않다. 가정 폭력, 게임으로의 현실 도피, 꿈을 향한 도전, 친구 관계,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경험 등 다양한 주제가 담겨있다. 에피소드 속에 들어가 각 주제에 대해 자신이 주인공이었다면 어떤한 선택들을 했을지 이야기해본다면, 다채로운 생각을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2. 텍스트와 그림이 어우러진 '만화' 포맷이다.
- 그래픽노블이자 그래픽논문인 <UNFLATTENING>에 따르면, 텍스트와 그림이 함께 어우러진 만화의 포맷으로 개념을 이해할 때 인간은 더욱 통합적으로, 풍부하게 개념을 이해할 수 있다고 한다. 왜냐하면, 뇌는 좌뇌와 우뇌로 이루어져 있고, 텍스트와 세밀한 디테일을 이해하는 데 좌뇌를 사용하고, 그림과 전체적인 맥락을 이해하는 데 우뇌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즉, 텍스트만으로 개념을 이해할 땐 뇌의 한쪽 부분만 쓰며 개념을 이해하지만, 텍스트와 그림의 조화로서 개념을 이해하면 뇌를 전체적으로 쓰며 개념을 이해할 수 있다. 이번해 잉절미에서 다룬 도서들은 거의 모두 텍스트 위주였다. 이번에 만화를 함께 보면서 우리의 뇌를 균형있게 사용하고, 개념을 보다 풍부하게 이해하는 경험을 해보자!
- 만화는 텍스트보다 빠르게, 재미있게 볼 수 있다. ㅋㄷ
3. 현재는 공짜이다.
- 언제 유료화가 될 지 모르니, 지금 함께 봅시다!
원래 마치기로 한 10시가 지났는데, 나를 포함하여 아직 말하지 않은 사람들이 네명이나 남아있어서, 우리는 집에 가기 위해 남은 사람들은 5분 동안만 자신의 책을 설명하자고 합의하였다. 제한된 시간동안 내가 하고픈 이야기를 다 하기 위해서, 나는 처음으로 할 말을 정리한 뒤 말하였다. 그랬더니 나의 의도를 짧고, 간결하게, 오롯이, 전달할 수 있었고, 그 덕분인지 <여중생A>가 함께 읽어볼 책으로 선정되었다. 나의 의도를 잘 전달하고, 또 좋은 결과도 얻다니! 잉절미에서의 최근 나눔 중 가장 만족스러운 나눔이었다. 나는 말하기를 좋아해서 준비 없이 나눔을 해도 나름 "썰을 잘 푼다"고 생각했는데, 이제야 알았다. 나는 말을 잘 못하는 것 같다; 앞으로도 미리 할 말을 정리해서 나눔을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