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능의 탄생>(이대열, 바다출판사)을 읽고
무심코 선택한 팟캐스트의 소개로 읽게 된 <지능의 탄생>은 평소에 잠시 스쳐갔던 궁금증을 그 내용으로 많이 다루고 있었다. '왜 그 사람은 그렇게 악하게 행동하는 걸까', '그 사람은 더 나아질 수 없을까'와 같은 사회적 궁금증에서 '무엇이 인공지능일까', '인공지능과 구별되는 인간다움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라는 인간적 궁금증까지. 덤으로 구체적인 실험 예시로 가득한 생물학, 심리학, 경제학까지 약간씩 맛 볼 수 있다.
이 책은 마치 어느 대학교에서 '지능과 사회'라는 이름을 가진 1학년 교양수업의 전공서적으로 사용되고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을 줄 만큼, 전문적이고 짜임새 있는 (인문?사회?)과학서적이다. 다양한 궁금증을 풀어가는 데 있어, 저자의 사고 과정은 모방할 만큼 가치 있다고도 느꼈다. 예일대 교수라는 저자의 이력이 문자에만 그치지 않고, 책의 흐름에서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대상에 궁금증을 품고 비교로 체화되는 관련 개념들을 이용해 결국 대상을 정의해 내고, 정의를 이용해 현상을 파악해 나가는 과정이 보통의 과학책과 달리 지루하지 않다. 어쩌면 하나의 개념들을 익히는 데 적절한 설명과 예시가 있어 지루하지 않은 것 같다.
책은 인간 사회의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고 인공지능을 잘 받아들이기 위해, 인간의 지능에 대해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지능은 다양한 환경에서 복잡한 의사결정의 문제 해결능력이며, 지능을 이해하는 것은 의사결정에서 뇌의 역할을 이해하는 것이라고 한다. 특히 복잡한 사회를 이루며 사는 인간의 뇌는 끊임없이 학습하고 있으며, 학습으로 더 나은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여기서 학습과 해결해야 할 문제는 머신러닝을 배우냐 마느냐, 머신러닝으로 알파고 같이 바둑 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이 아니다. 하찮아 보일 지 몰라도, '저 사람과 계속 일하는 게 맞는 걸까?', '어느 여행사를 고르는 게 좋은 걸까?'와 같은 일상 속 문제이고, 성격이자 처세라고 불릴 지도 모르는 유형의 학습이다. 대부분 인간이 기본적으로 책에서 다룬 방식 중 하나로 학습을 한다면, 이를 알고 있는 것이 타인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행동하게 하는 것이 더 수월해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또, 평생학습을 해야 하는 혹은 평생학습을 은연중에 하고 있는 과학적 과정을 듣게 된 것 같아 씁쓸하기도 하고 위로가 되기도 했다.
요즘 이미지에 따라 냉미남/온미남, 냉미녀/온미녀를 구분하는 콘텐츠들이 있다. 이 책은 냉도서이다. 읽으면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약간의 내용도 얻을 수 있는 책이 온도서라면, 냉도서는 감수성 따윈 없다. 철두철미하고 용의주도하고 정확하고 사실이 폭발한다. <지능의 탄생>은 사회과학도서계의 냉도서이다. 종교가 있는 사람이나, 인간중심적 사고에 회의적인 사람이라면 이 책이 약간 불편할 수 있다. 그러나 점심 후 나른한 시간의 아이스 아메리카노나 한 여름의 냉수마찰처럼, 머리가 지끈할 정도로 시원하게 해 주는 느낌을 이 책에서 찾을 수 있다. 따뜻한 느낌의 심리학 책이나 인공지능 설명서 같은 미지근한 책을 주로 읽어 온 사람이라면, 이 책도 권해보고 싶다.
인상 깊은 대목을 몇 개 나열해 보자면, 컴퓨터와 뇌를 비교한 부분, 반사행동의 예시로 든 바퀴벌레의 도망, (카메라 기술이 새삼 놀랍다고 느낀) 인간의 여러 안구운동, 학습 실험인 쥐와 Y대로의 변주, 3회 내로 협력하게 되는 파블로프의 법칙, 브랜던버거-카이슬러의 역설로 보는 자기인식의 한계 등이 있다. 지면과 저작권의 한계로 한 부분만 인용한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분리되어 있는 것은, 한 대의 컴퓨터를 여러 가지 목적을 위해서 사용하자고 할 때 큰 장점이 된다. 과제가 달라질 때마다 컴퓨터를 대체하거나 재조립하는 대신 프로그램만 바꿔주면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컴퓨터와 달리 뇌의 '하드웨어'는 고정되어 있지 않다. 예를 들어, 뇌가 학습의 결과로 동일한 자극에 대해서 반응하는 방식이 바뀌게 되는 것은 시냅스의 구조, 즉 하드웨어가 변하는 것이다. ... 컴퓨터가 지능을 가지려면 프로그램을 선택하는 메타-프로그램이 필요한 것이다. 이 프로그램은 하드웨어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를 인식하고 이 문제를 풀기에 가장 적합한 소프트웨어를 선택하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연결시키는 소프트 웨어다. 보통의 컴퓨터에서 이 일은 인간에 의해 실행된다.(p.92-93)
인상 깊지는 않지만, 주장에서 묵직한 자신감이 느껴지는 내용은 '다른 종들과 비교해서 인간이 화성에 탐사선까지 보내는 놀라운 행적을 보일 수 있었던 이유는 인간의 대단한 호기심과 사회적인 관계 덕분이다'는 것이다. 당장 필요하지 않지만 인간이 특정 대상에 호기심을 갖는 것은 어쩌면 다람쥐가 도토리를 숨기는 행위처럼 자연스러운 것이고, 다양한 인간과 맺는 관계는 다양한 문제상황을 만들어 뇌가 수험생마냥 수 많은 문제를 풀게 해준다.
인상 깊은 대목 중 한 부분을 각자의 분야에 있는 친구들에게 이야기 해주었고, 그 이야기를 시작으로 해당 분야의 이야기가 또 오고 갔다. 내가 처음에 가지고 있었던 사회적 질문과 인간적 질문에 대해 이 책은 온전히 그것만 친절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나의 질문을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던져준다. 나는 이 실마리들을 가지고 각 분야의 친구들을 또 찾을 것이다. 여러 사람들과 함께 내 질문을 해결하다 보면, 더 나은 의사결정도 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