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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잉절미 Jun 11. 2017

숨결이 바람 될때

나의 숨결이 바람이 되는 순간엔.

숨결이 바람 될 때(출처 : 구글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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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결이 바람이 된다니. 책의 제목을 읽는 순간부터 마음 한 구석이 아려온다. 문학을 사랑했으며, 문학을 통해 인간의 삶과 죽음을 본 폴 칼라니티. 이에 대한 더 깊은 통찰을 위해 그는 의학도로서의 삶을 택했다. 죽음의 열차가 언제 다가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삶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 했던 그 분투를 책을 통해 절절히 느낄 수 있었다.


마지막 책장을 덮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생각은 '만약 내가 언제가 될지 모를 이른 시기에 죽음을 앞두고 있다면, 이후에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였다. 생각만 해도 숨이 턱 막히는 답답한 고민거리이다. 작가는 책을 쓰면서 "내 목표는 바로 그 정도라고 생각해. 죽음을 선정적으로 그리려는 것도 아니고, 할 수 있을 때 인생을 즐기라고 훈계하려는 것도 아니야. 그저 우리가 걸어가는 이 길 앞에 무엇이 있는지 보여주고 싶을 뿐이지." 라고 말했다. 이 말대로라면, 나에게 이 책은 철저히 그 목적을 실행하고 있는 것이다. 위의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현재 내가 하고 있는 일들에 대한 정리와, 앞으로 하고 싶은 일들에 대해 정리를 먼저 해야했다.


현재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을 나열해보자면,

1. 일반의로서 하고있는 문진 일(100% 생계형)
2. 프로그래밍 언어 배우는 일(아내와 함께 외국에서 일 해보고 싶다는 생각. 직업적인 부분에서도 아내와 말이 통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시작).
3. 도서관으로 출근하여 독서 및 글쓰기.(목적은 삶에 대한 깊고 풍성한 고찰을 위해. 고찰의 내용을 오래 기억하고 다른 이들과 나누고 싶어서)
4. 주식투자(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깊은 이해. 또한 내 욕심과 욕심 없이 이루어지는 이성적인 판단을 구분해보는 좋은 연습의 장이 된다. 실제로 그런 판단을 통해 수익을 얻을때 기쁨도 맛볼 수 있다. 여튼 이것도 내가 살고 있는 사회와 스스로에 대한 고찰인 걸로.)
5. 기독교 신앙생활 (나의 삶의 근간이 되는 부분. 주요 가치관)
6. 부모님, 처가식구들 찾아뵙고 함께 식사하면서 삶을 나누기.
7. 간혹 있는 친구들과의 모임 참석하기.


앞으로 계획하고 있는 버킷리스트를 나열해보면,

1. 레지던트 지원(의사로서 전문분야 선택)
2. 책 쓰기(내 육체는 소멸된다해도 세상을 살면서 이런저런 생각들을 해봤다는 사실 남기기)
3. 부모님, 처가 식구들과 세상에서 내가 보았던 자연의 아름다움을 함께 나누기. (일생의 한 번 뿐일 수 있는 여행 떠나기.)
4. 아이를 낳고 기르며 함께 성장하기. (감당이 안 될것 같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너무 기대되고 가슴이 뛰는 일이다.)
5. 의사이자 프로그래머로서 아내와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외국에서도 해보고 싶다.(그러고 보니 왜 외국에서 하고 싶을까? 그냥 환경이 다른 새로운 삶을 몇 년간은 경험해보고 싶다는 생각 때문인 듯 하다.)
6. 나의 아내와 미래의 아이들에게 편안한 안식처와 경제적으로 어려움 없는 가정 제공하기.
7. 도서관 세우기. (사회적으로 소외된 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부분. 책을 통해 넓은 세상을 경험토록 도와주고 새로운 꿈을 꿀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라 생각해서)


이정도 인 듯 하다.

만약 앞으로 나에게 2년의 시간만 주어진다면, 이들 중 대부분은 포기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붙잡으리라 생각되는 3가지를 꼽는다면, 다음과 같다.

1.생계형 일(이는 버킷리스트의 6번과도 연관된다. 단, 레지던트를 지원할 것 같진 않다.)
2.책을 쓰기(버킷리스트 7번의 궁극적 꿈을 책의 내용으로 담는 걸로...)
3.아이를 낳기(이는 그 상황에 처했을때 아내와의 대화를 통해 더 고민해봐야할 문제이긴 하다.) 


선택하고보니 결국 칼라니티와 거의 같은 선택을 하게된다. 본업에 대한 선택만 조금 다른데, 이는 칼라니티의 경우 레지던트 과정이 거의 막바지였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내가 만약 그와 같은 상황이더라면 똑같이 선택했을 것이다. 저 3가지로 축약된 선택들이 가진 공통점을 찾아보자. 나의 죽음 이후에도 남겨질 사람들에 관한 일이다. 나 자신을 위한 일이 아닌, 남겨질 사람의 삶을 위한 일. 내 자아가 온전히 죽어갈때라야 비로소 다른 사람을 내 몸 같이 사랑하려 시도한다. 


폴 칼라니티의 가족(출처 : 구글이미지)


폴 칼라니티의 아내 루시 칼라니티가 쓴 에필로그에서도 참 많은 감동을 받았다. 

남편이 숨을 거두기 몇 주 전, 함께 침대에 누워서 내가 그에게 물었다. 
" 이렇게 내가 당신 가슴에 머리를 대고 있어도 숨 쉴 수 있어?" 
그러자 그는 대답했다. 
"이게 내가 숨 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야." 
폴과 내가 서로의 삶에 깊은 의미가 될 수 있었던 건 정말 큰 행운이었다.
 내게 남은 모든 날을 이곳에서 당신과 함께 보내고 싶어.
생과 사는 떼어내려고 해도 뗄 수 없으며, 그럼에도, 혹은 그 때문에 우리는 어려움을 극복하고 인생의 의미를 찾아낼 수 있다. 폴에게 벌어진 일은 비극적이었지만, 폴은 비극이 아니었다.


슬픈영화에서나 나올법한 대사들 이지만, 실제 삶속에서 던지는 이 단어들의 울림은 그 어떤 영화도 줄 수 없는 것이다. 진정으로 사랑했던 이를 떠나 보내야만 하다니 얼마나 슬프겠는가. 스스로가 죽는 것보다 더 아프고 힘들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덩그러니 남겨진 긴 삶을, 사랑하는 사람이 아닌 허전함과 그리움으로 채워 살아가야하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나의 아내와 가족들이 아직 옆에 있고 그들이 건강하게 살아 있다는 사실에 감사할 따름이다. 삶의 주어진 시간 안에서 그들을 더욱 깊게 열렬히 사랑해야한다.


마지막으로 생각해볼 대목은 작가가 죽어가기 전 자신의 어린 딸 케이디를 보며 했던 말이다.

 이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단 하나 뿐이다. 그 메시지는 간단하다. 네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무슨 일을 했는지, 세상에 어떤 의미 있는 일을 했는지 설명해야하는 순간이 온다면, 바라건대 네가 죽어가는 아빠의 나날을 충만한 기쁨으로 채워줬음을 빼놓지 말았으면 좋겠구나. 아빠가 평생 느껴보지 못한 기쁨이었고, 그로 인해 아빠는 이제 더 많은 것을 바라지 않고 만족하며 편히 쉴 수 있게 되었단다. 지금 이 순간, 그건 내게 정말로 엄청난 일이란다. 


딸아이가 자라서 그의 아버지가 마지막 남긴 이 말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면... 자신의 존재자체 만으로 누군가에겐 큰 기쁨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그 삶이 얼마나 반짝반짝 빛이나게 느껴질까... 안도현 시인의 '너에게 묻는다'라는 시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너에게 묻는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중략)

- 안도현, '너에게 묻는다' -


비극적인 일들이 벌어졌지만, 비극이 아니었던 삶. 다른 이의 삶을 더 빛나게 만들어줄 연탄과 같은 삶은 그 끝이 연탄재와 같이 남더라도 얼마나 영광스러운 삶이겠는가? 사람이 그의 삶을 다하고 후에 남는 것은 오직 사랑이구나 생각이 든다. '사람', '삶','사랑' 이 세 단어가 비슷해 보이는 것도 우연은 아닐 것이다.


정말 많은 것들을 느끼게 하는 책이었다. 죽음을 대면하려면, 현재의 삶을 파악해야하고 대면해야 한다. 지금 당장 내가 진정으로 붙들어야 할 가치들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고, 정말 이 길의 끝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조금은 더 가까이서 느끼게 되었다. 언젠가는 나에게도 숨결 바람이 되는 그 순간이 찾아올것이다. 그때 나는 나의 '사랑'을 남길 수 있을 것인가. 갑자기 마음이 분주해지는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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