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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Phone)? 스마트밤(Bomb)!

by 통나무집

점심시간이 되자 아이들이 복도로 쏟아져 나왔다. 성질 급한 남학생들은 급식실을 향해 달려 나갔고 교실에 남은 여학생들은 삼삼오오 모여 까르르 웃으며 수다를 떨고 있다. 창문 밖으로 배드민턴을 하거나 캐치볼을 하는 아이들이 보인다. 저 멀리 농구장에서 왁자지껄 떠드는 목소리들 사이로 탕탕 공을 튕기는 소리가 청량하다. 9월 중순을 넘어서니 불볕더위가 한풀 꺾이고 제법 선선한 바람도 불어왔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여름 동안 에어컨이 나오는 교실에 틀어박혀있던 아이들도 모처럼 밖으로 나와 파아란 하늘 아래 단풍들이 울긋불긋 물들이는 풍경 속을 거닐고 있다. 가을 햇살에 비친 아이들의 표정이 해맑고 걸음걸이도 하늘에 두둥실 떠도는 하얀 구름처럼 가벼워 보인다.

점심시간이나 자율 시간처럼 시간표에 여백으로 비워진 시간들을 채우기 위해 아이들이 선택하는 활동들을 살펴보면 경이롭다. 저마다의 성격과 취향에 따라 자신에게 꼭 맞는 활동들을 기어이 찾아낸다. 기타를 치고 있는 친구 옆에서 어깨너머로 배우다가 축제에 나가 공연을 할 정도로 기타 연주 실력이 성장한 아이도 있고 틈만 나면 공책에 무언가를 열심히 끄적이더니 놀랄 만큼 수준 높은 소설을 완성해 낸 아이도 있었다. 조용하고 속이 깊은 아이는 마치 전문상담사처럼 친구의 속 깊은 이야기를 들어주며 응어리진 마음을 풀어주었고, 활달하고 에너지가 넘치는 아이는 선후배와 함께 신나게 공을 차며 자신의 기량을 뽐내었다. 매사에 느긋하고 여유롭던 아이는 따스한 가을 햇살 속에서 멍하니 자연을 바라보고 있다. 멍 때리기가 창의성을 가장 발달시킨다던 신문 기사 내용이 떠오른다.

아이들의 시간표에 여백이 필요함을 새삼 느낀다. 어른이 정한 일과로 빡빡하게 채워진 시간표에 따라 학교 수업이 끝나면 여러 학원을 전전하다가 밤늦게 돌아와 밀린 과제들을 하는 일상 속에서도 아이들은 분명 성장할 것이다. 여백 없는 시간을 살아가면서 아이들은 성실하고 부지런하며 수많은 과제를 제시간에 끝낼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아이들이 어른이 되면, 수많은 여백으로 비워진 시간을 스스로의 힘으로 채워야 하는 시기가 오면, 과연 그들은 자신의 특성과 취향에 맞는 활동들로 그 시간들을 충실히 채워나갈 수 있을까?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것을 잘하는지 알아가는 시간은 생각보다 많이 필요하다. 매일 주어진 여백의 시간 동안 마치 놀이를 하듯 가벼운 마음으로 이것저것 도전해 보고 실패도 겪고 작은 성취도 누리는 경험을 여러 해 동안 차곡차곡 쌓아갈 때 아이는 비로소 자신이 무엇을 원하고 잘하고 좋아하는 사람인지를 알게 된다. 그렇기에 아이가 살아가는 매일의 일상에는 학업과 과제를 충실히 수행하는 시간과 함께,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해볼 수 있는 여백의 시간이 꼭 있어야 한다.

그러나 요즘은 아이에게 여백의 시간을 주기가 무섭다. 아이가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시간을 의미 있는 활동들로 채워나가면 좋으련만, 세상에는 아이의 시간을 빼앗는 유혹거리로 가득하다. 자유 시간이 주어지면 아이들은 온종일 게임을 하거나 TV나 스마트폰으로 온갖 유해한 프로그램들을 게걸스럽게 시청한다. 방에 틀어박혀 밥도 잘 먹지 않고 온종일 게임만 하다가 벌게진 눈으로 용돈을 달라며 퉁명스럽게 말하는 아들의 모습이 참 미웠다는 어떤 학부모의 말이 남의 일 같지 않다. 나도 쌍둥이 딸을 키우는 아빠이기에 만일 우리 딸들이 드라마나 영화, 게임, SNS에 중독되어 온종일 스마트폰 화면만 들여다보는 장면을 목도한다면 속이 열두 번도 뒤집어질 것 같다.

스마트폰이 아이들의 삶에 미치는 영향력을 절감했던 경험이 있다. 학생들을 인솔해서 서울로 테마여행을 갔던 때의 일이다. 스마트폰 사용을 엄격히 규제하는 우리 학교의 규칙에 따라 나는 여행하는 내내 학생들의 스마트폰을 걷어서 가방 안에 보관하고 있었다. 여행 마지막 날은 점심을 함께 먹고 각자의 집으로 귀가하는 일정이었는데 학생마다 귀가하는 교통편이나 시간이 달라서 점심을 먹는 레스토랑에서는 핸드폰을 미리 나누어주었다. 우리 학교 학생들은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일주일에 단 하루, 그것도 단 20분만 핸드폰을 사용할 수 있는 생활을 오랫동안 해왔기 때문에 식사 시간에 잠시 핸드폰을 나누어 주어도 별 문제가 없을 거라 생각했다. 오산이었다. 스마트폰을 나누어 준 순간부터 아이들은 서로의 눈을 보지 않았다. 아이들 사이에서 모든 대화가 사라졌다. 분명 한 시간 전만 해도 신나게 웃고 서로 장난치며 즐겁게 놀던 아이들이, 지금은 네모난 스마트폰 화면 속 세상 속으로 깊이 침잠해 들어가고 있었다. 식사를 하는 레스토랑은 커다란 유리창문으로 한강이 훤히 내려다보였고 널찍한 테이블 위로 맛깔난 음식들이 가득했지만 아이들의 시선은 오직 스마트폰에만 머물러있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아이들에게 식사를 하는 동안은 스마트폰을 보면 안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내가 보지 않는 틈을 타서 몰래 스마트폰을 보고 있었다. 아무리 막으려 해도 아이들의 스마트폰은 두더지 잡기 게임의 두더지가 된 것 마냥 기어이 얼굴을 내밀었고 결국 나는 규제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스마트폰을 만든 스티브잡스가 무척 원망스럽다. 잡스가 스마트폰(smartphone)을 개발한 이유는 사람들이 더욱 스마트(smart)하게 살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다고 들었다. 하지만 지금 스마트폰(smartphone)은 사람을 스마트(smart)하게 부수는 스마트폭탄(smartbomb)이 되어버렸다. 스마트폰을 쥔 순간, 아이들 사이에서 오가던 우정 어린 시선들도, 정다운 대화도, 짓궂은 장난마저 순식간에 폭사해 버린다.

스마트폰 사용에 대한 교육은 결국 엄격하게 스마트폰 사용 시간과 사용 목적을 통제하는 것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마트폰의 중력은 막강해서 아이의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여버린다. 스마트폰 사용을 엄격히 통제하고 스마트폰 사용 외의 다양한 활동에서 즐거움을 찾게 하면서 스마트폰을 지혜롭게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야 하는데..... 어렵다. 너무 어렵다. 2025년을 살아가는 교사와 부모들은 아이를 키우기 너무 어려운 세상을 살고 있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스마트폰의 영향력이 강력하긴 하지만 절대적이지 않다. 테마 여행 때 홀린 듯 스마트폰만 들여다보던 아이들이 학교에 와서는 스마트폰 없이도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다. 아이들은 일요일에 등교하면 핸드폰을 제출하고 금요일 오후에 귀가할 때 돌려받는다. 수요일에 부모님과 통화하는 목적으로 20분 동안만 핸드폰을 사용할 수 있고 그 외의 시간은 핸드폰을 소지할 수 없다. 그럼에도 아이들은 스마트폰 사용 금지로 인한 금단 증상을 보이지 않는다. 스마트폰이 사라진 시공간 속에서 아이들은 친구들과 얼굴을 마주하며 함께 웃고 떠들고 장난치며 아름다운 추억들을 알차게 쌓아간다. 스마트폰 사용 시간만이라도 적절히 통제하면 아이들은 실제 세계 속에서 건강한 즐거움들을 찾아낸다.

아이들이 스마트폰 세계 속에서 가상의 인물들과 놀 때보다 현실 세계에 실재하는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이 더욱 행복함을 충분히 경험하면 좋겠다. 그 경험을 통해 아이들이 스마트폰의 영향력에 속박되지 않고 스마트폰의 기능을 적절히 활용할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하길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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