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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순례

2025년 9월 29일 ~ 10월 1일 전북 군산 선유도 일대

by 통나무집

아이들과 함께 선유도로 향하는 방조제 위를 걷는다. 시야 가득히 바다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푸르게 일렁이는 바다 물결 위로 가을 햇살이 찬란히 부서지면서 윤슬이 은은하게 반짝인다. 사방에서 물씬 밀려오는 바다 내음이 짭조름하게 고소하고 길가에 핀 풀꽃들의 향내는 더없이 싱그럽다. 전날 내린 비로 맑게 씻긴 하늘에 하얀 구름이 유유히 흘러간다. 선선하게 불어오는 바닷바람에서 완연한 가을의 기운이 느껴진다. 가끔 끼룩끼룩 울리는 갈매기 울음소리 사이로 아이들이 신나게 웃으며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가 솟구친다. 아이들은 활기차게 걷다가 날아가는 갈매기를 보며 방방 뛰기도 하고 저 멀리 해변에서 낚시를 하는 어른들을 보면 '안녕하세요!' 하고 명랑하게 인사를 한다. 걷는 내내 노래를 흥얼거리는 아이도 있고 줄을 맞춰 걷는 게 갑갑한지 앞으로 뛰어나가다 선생님에게 혼이 나는 아이도 있다. 아이마다 걷는 속도가 달라 아이들의 행렬은 길게 늘어졌다.

행렬의 뒤쪽에서, 체력이 약해 걷는 속도가 느리거나 평발이어서 걷기를 힘들어하는 아이들이 천천히 걷고 있다. 나는 행렬의 맨 끝에 자리를 잡고, 뒤로 처지는 아이들을 다독이고 독려하여 행렬에서 너무 멀어지지 않도록 도왔다. 아이들은 자주 내게 물었다.

"선생님 몇 시간 남았어요?"

"이제 몇 km 걸었어요?"

"숙소까지 얼마나 남았어요?"

나는 거짓말을 한다.

"응. 30분만 더 가면 돼." (사실 2시간은 더 걸어야 한다.)

"지금까지 3km 정도 걸은 것 같아." (실제로는 1km도 걷지 않았다.)

"800m 정도만 더 걸으면 숙소가 나올 거야." (앞으로 3km는 더 걸어야 숙소가 나온다.)

내 거짓말을 진정 믿었는지, 아니면 믿는 척을 하는 건지 아이들은 금세 얼굴이 밝아져 힘차게 앞으로 걸어간다. 이제 갓 중학생이 된 아이들에게는 2박 3일 동안 약 30km를 걸어야 하는 일정이 고될 터인데도 아이들은 불평이나 투정 한 마디 없이 환한 표정으로 걷고 있다. 대견하고 고마웠다. 그런 아이들의 모습을 보니 국어 수업 시간에 아이들과 함께 감상했던 시 한 편이 떠올랐다.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민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오늘도...... 내일도.......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건너서 마을로


시인 윤동주가 지은 <새로운 길>이라는 시이다. '길'은 흔히 '인생'을 상징한다. 윤동주의 시 <새로운 길>은 인생이 언제나 새롭게 걷는 길과 같다고 선언한다.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걸어가야 하는 인생길 위에서는 '숲'과 '마을'처럼 평화롭고 순탄한 상황도 만나지만 '내'나 '고개'처럼 통과하기 어려운 과정도 피할 수 없다. 그렇지만 길을 걷는 자가 '민들레, 까치, 아가씨, 바람' 등, 길 위에서 조우하게 되는 다양한 존재들을 즐거워하면서, '내'와 '고개'와 같은 어려운 길도 피하지 않고 묵묵히 걸어가 결국 '숲'과 '마을'과 같은 평화와 안정의 공간에 도달하는 것처럼, 자신의 삶에서 어떤 상황이나 존재를 만나든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언제나 새로운 길을 걷는다는 마음으로 삶을 끝까지 살아내겠다는 의지가 윤동주의 시에서 느껴진다.

2박 3일 국토순례 기간 동안 아이들이 길을 걷는 과정은 윤동주의 시 <새로운 길>이 보여주는 인생과 닮았다.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도 걸어야 하는 길 위에서 아이들은 때로는 발바닥이 너무 아프거나 다리에 쥐가 나기도 하고 체력이 고갈되는 등 걷기 힘든 순간도 맞이했다. 하지만 함께 걸어가는 친구들과 웃고 장난치고 떠들면서 시원하게 펼쳐진 바다도 보고, 갈매기들이 끼룩끼룩 노래하는 소리도 듣고, 반갑게 인사하며 '파이팅!'하고 외쳐주는 어른들도 만나면서, 결국 모든 아이들이 2박 3일 동안 한 명도 포기하지 않고 정해진 분량의 길을 끝까지 걸어냈다. 이 경험을 통해 아이들이 앞으로 살아가는 길에서 어떠한 어려움을 만나도 주눅이 들지 않고 삶에서 만나는 다양한 아름다움을 놓치지 않으며 끝까지 자신만의 인생을 살아내는 감각을 배웠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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