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과 함께 지역 축제에 다녀왔다. 읍내에서 하는 축제이지만 생각보다 규모가 컸고 평일 오후인데도 많은 사람들이 와서 축제를 즐기고 있었다. 모처럼 학교를 벗어나 축제 행사장을 활보하는 아이들의 얼굴이 밝았다. 아이들은 한복 체험 부스에서 한복을 빌려 입고 먹거리 부스로 달려갔다. 붉은 곤룡포를 입고 닭꼬치를 손에 든 여학생 옆에서 붉은 꽃무늬가 수 놓인 검정 치마를 입은 남학생이 햄버거를 먹고 있다. 여자 한복을 입은 남학생을 보고 여학생들이 까르르 웃는다. 각종 간식들과 음료들로 테이블이 가득 찼지만 아이들은 또 다른 먹거리들을 찾아 음식 부스들을 기웃거렸다. 먹거리 부스 위에 놓인 닭강정에서 달콤한 냄새가 스멀스멀 밀려오고 하얀 김이 솟아나는 찜기 안에 오동통한 순대가 다소곳이 놓여 있다. 입에 군침이 돌고 점심을 먹은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허기가 느껴졌다. 떡볶이와 어묵, 튀김과 사이다를 사서 테이블에 앉았다. 다른 선생님들이 순대와 피자, 떡꼬치를 사 오셨다. 선생님들과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음식을 먹는데 가을 하늘은 한없이 맑고 바람은 선선하며 주위는 온통 음악과 웃음소리로 가득하니 마음은 더없이 홀가분해졌고 흥겨운 기분이 한껏 고조되었다.
"아아.. 마이크 테스트... 아아..."
갑자기 목소리가 들려왔다. 근처에 있는 소공연장 무대 위에서 누군가가 마이크를 잡고 서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여러분. 축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저는 사회를 맡은 000입니다."
사회자는 나이가 지긋해 보였고 청중석에 앉은 사람들도 중장년층이거나 머리가 하얗게 센 할아버지, 할머니들이셨다. 공연이 시작되어 무대에 올라온 가수분도 나이가 많아 보였다. 화려한 의상을 입고 진하게 화장을 했지만 얼굴에 주름진 세월을 감출 수는 없었다. 그 가수는 요즘 가수들처럼 고음을 뽐내지도 않았고 춤사위도 날렵하지 않았지만 오랫동안 무대에 섰던 분이셨는지 목소리에 힘이 있었고 시종일관 여유로운 태도로 공연을 진행했다. 관객석에 앉아 있던 어르신들이 흥이 나서 무대 앞으로 나아가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멀리서 공연을 보던 아이들도 흥겨웠는지 어깨를 들썩들썩했다. 주변에 있던 아저씨, 아줌마들이 웃으면서 아이들에게 무대 앞으로 나가서 춤추라고 권했다. 아이들은 부끄러웠는지 배시시 웃기만 했다. 잠시 공연을 보던 아이들은 다시 체험 부스를 향해 달려 나갔다. 아이들이 계속 즐기기엔 너무 옛날 스타일의 공연이어서 금세 흥미를 잃은 모양이었다.
저녁 무렵에는 행사장 한쪽에 마련된 특설 무대에서 학생들의 공연이 시작되었다. 인근에 있는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직접 축제에 참여할 수 있도록 주최 측이 마련해 준 무대였다. 우리 학교 학생도 출연을 하기에 모든 아이들이 청중석에 앉아 공연을 즐겼다. 무대에 오른 학생들의 실력은 놀라웠다. 노래를 부르는 학생은 고음을 시원하게 내지르며 청중을 사로잡았고 춤을 추는 아이들은 사람 몸이 어쩜 저렇게 움직일 수 있는지 신기할 정도로 유려하면서도 힘이 넘치는 춤사위를 한껏 뽐내었다. 아이들은 목청껏 떼창을 부르다가 무대 앞으로 뛰쳐나가 신나게 몸을 흔들기도 하며 마음껏 공연을 즐겼다. 아이들이 신명 나게 뿜어내는 흥에 이끌리셨는지 주변을 지나가던 어르신들이 공연장으로 다가왔다. 어르신들은 멀찍이서 아이들의 공연을 바라보다가 금세 자리를 떴다. 신나게 노는 아이들이 귀엽기도 하셨겠지만 아이들의 춤과 노래는 나이 지긋한 어른들이 즐기기에 너무 난해하고 시끄러웠던 것 같다.
무대의 하이라이트는 밴드 팀의 공연이었다. 화려하게 번쩍이는 조명 아래 드럼이 포효하듯 리듬을 쏟아냈다. 기타와 키보드 소리가 휘몰아쳤다. 밴드 팀이 공연하는 곡은 싸이의 '예술이야'였다. 보컬을 맡은 학생의 우람한 체구에서 거대한 성량의 노래가 뿜어져 나왔다.
지금이 우리에게는 꿈이야
너와 나 둘이서 추는 춤이야
기분은 미친 듯이 예술이야
Ooh-eh-oh, ooh-eh-oh, ooh-eh-oh
공연장은 열광의 도가니 그 자체였다. 거의 모든 아이들이 무대 앞으로 뛰쳐나가 서로 어깨동무를 하고 일제히 뛰며 떼창을 불렀다.
하늘을 날아가는 기분이야
죽어도 상관없는 지금이야
심장은 터질 듯이 예술이야
Ooh-eh-oh, ooh-eh-oh, ooh-eh-oh
수많은 학생들이 한 목소리로 부르는 노래가 행사장 가득 울려 퍼졌다. 그 소리에 이끌렸는지 중장년으로 보이는 어른들이 공연장으로 들아왔다. 그들은 맨 뒷 줄의 청중석에 앉아 학생들이 방방 뛰며 신나게 즐기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유쾌하게 웃고 이따금 손을 흔들기도 하면서 어른들은 학생들의 무대를 즐겼고 노래가 끝나기까지 청중석을 떠나지 않았다. 아름다운 장면이었다. 무대 위에서는 학생들이 마치 싸이의 영혼이 강림한 듯 혼신을 다해 공연을 펼치고 있다. 무대 바로 앞에서는 수많은 아이들이 함께 뛰고 떼창을 부르며 한껏 공연을 즐기고 있다. 어른들도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멀리서나마 아이들의 즐거움에 참여하고 있다. 그 모습은 싸이의 노랫말대로 진정 '예술'이었다.
지역축제에서 보았던 장면들을 떠올리면 '세대 차이'라는 단어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세대 차이. 서로 다르면 이해할 수 없고 결국 반목하게 된다는 주장의 근거로 자주 등장하는 단어이다. '차이'로 인해 '갈등'하는 사례는 무수히 많다. 부부 갈등, 고부 갈등, 부모와 자녀 사이의 갈등, 그리고 세대 갈등.... 모두 살아온 삶이 다르고, 가치가 다르고, 문화가 달라서 일어나는 갈등이다. 그러나 오늘 지역축제에서 아이들과 중장년의 어른들, 그리고 나이 많은 어르신들이 보여준 모습대로 살아간다면 '차이'가 '갈등'이 아닌 '이해'와 '포용'의 기회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 즐기던 문화와 달라서 이해가 안 되는 사람들의 문화도 멀리서나마 함께 즐기고, 내 문화를 즐기지 못해 떠나는 사람을 미워하지 않으며, 다른 가치와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각자의 무대 위에서 마음껏 뛰놀다가 상대의 공연장에 잠시 방문해서 즐기기도 하는.... 그런 사람들이 모이면 '차이'가 '갈등'이 아니라 또 다른 '즐거움'이 되는 사회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