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이 잘 되는 날이 있다. 교실 안이 활기로 가득하고 아이들의 눈이 생기로 반짝인다. 내 말에 아이들이 까르르 웃는다. 나와 아이들 사이에 활발히 오가는 대화 속에서 그날 가르치고자 한 내용들이 아이들의 머릿속으로 순탄히 스며든다. 아이들과 함께 어우러지면서 무언가 멋진 의미들을 착착 지어가는 느낌이 든다. 그런 날엔 기분이 한껏 고양되고 심장이 두근두근 박동 친다. 내가 괜찮은 사람인 것 같고 무엇이든 다 해낼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샘솟는다.
수업이 잘 풀리지 않는 날이 있다. 아이들 사이에 메마른 적막감이 흐르는 가운데 나 홀로 떠들고 있다. 아이들의 눈빛이 점점 흐려진다. 그들에게 내 말은 점점 무의미하고 무료하며 듣기 고통스러운 소음이 되어간다. 아이들에게 못할 짓을 저지르고 있다는 생각마저 든다. 교사로서 자존감과 효능감이 와르르 무너진 자리에, 죄책감과 피로감이 진하게 밀려온다.
이렇게 일희일비해서는 안 됨을 잘 알고 있다. 수업이 일상인 교사가 그 많은 수업들을 모두 완벽하게 진행할 수 없다. 아무리 열심히 준비해도 수업은 잘 되지 않을 수 있다. 아이들이 수업에 잘 참여하지 않았던 이유는 내 수업 준비가 미흡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이전 체육 시간에 너무 열심히 운동해서 피곤했거나, 식사 이후 식곤증이 몰려왔거나, 친구나 부모님과 겪은 갈등으로 마음이 요동쳤거나, 그저 만사가 귀찮고 짜증 나는 중2병이 심하게 도졌거나 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니 학생들의 반응에 너무 휘둘리지 말자고 다짐하지만 수업이 잘 안 된 날은 여지없이 마음이 무너진다.
내가 학생들의 반응에 너무 민감한 것은 아닌지 반성해 본다. 물론 학생들의 반응은 중요하다. 배움은 내면에서 일어나기에 시험을 쳐보기 전까지는 직접 확인하기 어렵다. 한창 수업을 진행하는 동안에는 학생의 표정, 말투, 몸짓, 필기하는 모습, 내 질문에 대한 대답 등, 학생이 드러내는 반응으로 잘 배우고 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하지만 학생들이 학습해야 할 내용 중에는 때론 지루하고 힘들어도 반드시 배워야만 하는 내용도 있다. 교사가 학생의 반응에 너무 예민해지면 학생이 활발하게 반응을 할 수 있는 수업 내용이나 방식만 찾게 되어, 꼭 가르쳐야 할 내용들을 소홀히 할 수도 있다.
교과서의 학습 목표와 내용을 살펴보며 어떤 수업 방식을 선택할지 고민한다. 활동 중심 수업은 학생의 마음을 열고 학생이 스스로 사고하고 느낄 수 있도록 돕기에 적합하다. 활동에 임하는 학생의 모습을 보면서 배움이 제대로 일어나고 있는지 확인하기에 좋다. 하지만 학생이 활동을 하기에 배경지식이 부족하거나 활동에 대한 의욕이 적거나 활동을 하기에 수업 시수가 부족할 경우에 섣불리 활동 중심으로 수업을 하면, 내실 없는 활동들만 남발하는 수업이 될 수 있다. 강의 중심 수업은 많은 개념을 효율적으로 전달하기에 효과적이다. 하지만 강의 중심 수업에서는 학생이 진정 배우고 있는지 확인하기 어렵고 자칫 잘못하면 학생의 사고는 정지되어 있는데 교사만 열심히 말하고 있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내가 하고 싶은 수업에 대해 생각해 본다. 나는 수업을 통해 학생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느끼면서 그 사유와 감정을 더욱 확장하고 심화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 교사와 학생, 학생과 학생 사이에서 활발히 대화가 오가는 가운데 의미와 재미를 함께 만들어가는 수업을 하고 싶다. 그런 수업을 꿈꾼다면 내가 먼저 버려야 할 것들이 있다. 수업으로 아이들의 환심을 사고 싶다는 욕심, 짧은 시간 안에 아이들에게 높은 성취를 거두게 하고 싶다는 조바심, 일방적인 설명으로 손쉽게 수업 시간을 때우고 싶다는 게으름을 버려야 한다.
수업 시간은 45분. 한정된 시간이다. 군더더기 욕심을 버리고 아이들과 함께 집중할 내용을 엄선한다. 아이들과 상호작용하면서 배움의 관계를 형성할 방법들을 찾아본다. 수업이 어떻게 흘러갈지 미리 상상해 본다. 계획한 대로 수업이 잘 진행되어 기쁠 수도 있고, 생각만큼 수업이 풀리지 않아 슬플 수도 있다. 괜찮다. 다음 수업이, 또 그다음 수업이 기다리고 있으니. 잘한 수업에서든 못한 수업에서든 다음 수업을 더 잘하기 위해 필요한 경험을 얻을 수 있다. 그러니 조급해하지 말자. 수업의 기쁨과 슬픔 속에서 흔들리면서도 나는, 그리고 아이들은 분명 성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