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시뽀
그녀 얘기를 하고 싶다. 이 얘기를 꺼내놔야 그녀에게서 조금이라도 놓여날 수 있을 것 같다.
미얀마 시뽀라는 지역에 머무를 때였다. 숙소에서 미얀마 관련 커뮤니티의 글들을 훑어보던 중이었고. 한국 거주 중인 분이 현지인 친구에게 들었다면서 시뽀에 혼자 온 한국인 여성 여행자가 투어 중 실종됐다는 글을 올렸다. 시뽀 여행 중인 분 있으면 소식 좀 알려달라고 덧붙였다.
혼자 여행 온 여성, 이라는 말이 마음에 쿵 울렸다. 혼자 여행하면서 늘 무거운 짐처럼 어깨 뻐근하게 가지고 다니던 두려움. 조금이라도 안전하기 위해 노력하며 나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떻게 될까, 늘 조심조심하면서도 긴장해야 했던 마음. 혼자 여행 온 여성은 무슨 일이 있었다 해도 전해줄 사람이 없었겠구나.
시뽀에 다른 한국인 여행자가 또 있기를 바랐다. 그러나 당시 그 지역에 있던 한국인은 내가 유일했나 보다. 다른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으니.
처음엔 설마, 하는 마음이 있었다. 시뽀에는 주로 1박 2일 트레킹 하러들 많이 오는데, 트레킹은 그룹으로 움직이며 투어가이드가 따라붙는 데다, 코스가 정해져 있어 실종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지도를 보니 투어 회사가 숙소에서 100미터도 안 되는 곳에 있다. 밤 9시가 좀 덜 되었는데 후딱 옷을 갈아입고 길을 나섰다. 너무 늦었나, 투어 회사 문은 닫혀 있었고, 호텔 리셉션과 주위 가게 사람들도 별다른 얘기를 해주지 않았다. 터덜터덜 숙소로 돌아와 투어 회사가 어리바리할 경우를 대비해 경찰서까지 가려고 위치를 확인해 두었다.
다음 날 아침 먹고 다시 길을 나섰다. 여기 있는 한국인 여행자가 나뿐이네요, 투어 업체 가서 확인해봤는데 그런 일 없대요, 걱정하지 마세요, 이런 글을 올려야 할 책임감 같은 게 생겼고, ‘혼자 온, 여성, 한국인, 여행자’가 누구든 안전하게 잘 있다는 확인을 받고 싶었다.
투어 업체에 들어가서 거기 직원과 인사를 나누고, 나 한국사람인데 어제 한국인 여성 실종 소식을 들었어, 까지만 말했는데 벌써 직원 표정이 어두워졌다. 아, 사고가 있었구나. 어제 한국인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소식을 들었는데 사실인지, 사실이라면 어떻게 된 건지 물었다. 그 직원은 자기도 들은 얘기라면서 상황을 전해주었다.
3일짜리 투어였고, 그날은 투어 마지막 날이었는데 강에서 튜빙 하는 코스가 있었다. 그 한국인 여성은 튜브를 잡고 물에 뛰어든 후 급류에 휘말렸다. 모두 놀랐고 벨기에 남성이 그녀를 구하려 뛰어들었지만 실패했다. 지금 경찰과 지역 주민이 나서서 강가를 수색 중인데 아직 찾지 못하고 있다, 고 했다.
실종된 날에서 이미 이틀이 지나 있었다. 가족들 생각이 제일 먼저 났다. 가족들에겐 알렸냐고 했더니 자기네는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수색 소식만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경찰도, 이미그레이션에서도 실종인지 사망인지 아직 모르니 수색 상황 보면서 기다리라고 했단다.
그녀의 물건과 가방을 그 직원이 가지고 있다고 해서 여권을 가져다 달라고 했다. 그녀의 이름과 나이, 사는 지역과 가족에 대해 들었고, 그 직원 휴대폰에 담긴 그녀의 사진을 보았다. 부랴부랴 숙소로 와서 커뮤니티에 소식을 올렸고 주위 도움을 받아 대사관에도 알렸다.
대사관에선 신속하게 대응해주었다. 비행기를 타고도 한 나절은 더 걸리는 이 먼 곳까지 바로 사람을 보냈고, 가족에게도 소식을 전해주었다. 가족이 미얀마에 도착해 이곳까지 오도록 한인회까지 나섰다. 그저 그녀가 살아서 돌아오기만 하면 되었다.
난 다음날 만달레이로 갈 예정이어서 그날 저녁, 마지막으로 투어 업체에 들렸다. 무슨 소식이 있을까 싶어서. 나와 대화했던 직원은 여러 차례 고맙다고 했다. 어떻게 해야 할 줄 몰라서 그저 기다리고만 있었는데 대사관에서 연락이 온 후 오히려 마음이 놓였다고. 글쎄 이게 내가 해야 할 일이었을까. 관할 경찰서가 나서서 관할 정부기관을 통해 대사관에 알려야 했을 일 아닐까. 현지인에게 소식 들었다는 한국 거주 중인 분이 커뮤니티에 글을 올리지 않았다면 언제까지 그녀는 가족들도 모른 채 실종 상태여야 했을까.
달리 할 말이 없어 나도 고맙다고 빨리 그녀를 찾기 바란다고 했다. 그녀가 다행히 살아서 표류해있는 걸 구조했다는 소식 같은 걸 기대하면서. 그 직원은 굿바이라고 인사하기 위해서라도 그녀를 꼭 찾아야 한다고 했다. 아마 생존 귀환 가능성을 포기한 듯싶었다. 그 표정도 슬퍼 보였고 나도 슬펐다. 그렇게 시뽀를 떠났다.
떠나면 남의 일이 되어버릴 줄 알았다. 사진 속의 그 얼굴이 계속 떠올랐지만 내가 더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시뽀로 올 때 내가 탄 기차가 탈선한 사고까지 있었고, 대사관에서 사람을 보냈다는 얘기까지 들은 후 긴장이 풀려 걷다가 자빠져 무릎이 왕창 까졌다. 왠지 허탈하고 비현실적인 상황의 연속. 실종자 가족들이 이곳에 오면 아마 황당할지도 모르겠다. 뭐 이런 시골 구석까지 왔을까 싶어서. 가족들에게 이 모든 상황은 또 얼마나 비현실적일 것인지.
몸도 마음도 힘들어 만달레이로 갈 때 버스 대신 세 배나 더 비싼 셰어 택시를 예약했다. 그러나 뭐가 문제였는지 택시는 두 시간이나 늦게 왔고, 자기 영업에 바빠 뺑뺑이를 돌렸고, 운전사도 숙소 측도 설명이나 변명 혹은 사과도 하지 않았다. 형식적인 사과라도 받고 싶었는데 운전사는 뭐가 잘못된 건지조차 모르는 듯 나를 외면했다. 난 난폭 운전할까 봐 화도 못 내고, 그래서 더 화가 났다. 미안하다고 한 마디만 해줬어도 그냥 웃을 수 있었는데... 예상보다 3시간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일정도 꼬였다. 많이 우울했다.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무사히 집에 갈 수 있을까.
늦게 예약한 숙소에 도착해보니 가방에 얌전히 있던 태블릿이 아무 이유도 없이 벽돌이 됐다. 또 뭔 일인가. 한국 가족, 친구들과 소식 창구인 카톡도 텔레그램도, 택시요금 흥정의 피곤함을 없애줄 그랩 어플도, 그동안 저장된 사진도, 캡처한 여행 정보도, 숙소 예약 정보와 결제를 도맡았던 어플도, 내 갈 길을 보여주던 구글 지도 앱도 모두 날아가버렸다. 충전을 충분히 한 후 아무리 전원 버튼, 셋업 버튼을 눌러도 그냥 까만 화면.
이 정도면 그냥 숨만 쉬고 있어도 다행이다. 호텔에 콕 박혀서 어떻게 할 것인가, 만 연발하다 지쳐 잠이 들었다.
양곤행 기차표를 끊었어야 했는데 그 시간도 없어 하루 더 만달레이에 머물러야 했다. 그렇게 숙소에 널브러져 있는데 태블릿이 또 아무 이유도 없이 살아났다. 아아아, 이런 이상한 상황들, 이제 그만! 후다닥 정신을 챙겨서 기차역으로 가 예매를 한 후, 미얀마에서 내가 제일 좋아한 장소인 만달레이 힐로 향했다.
거기서 조용히 미얀마 여행을 정리하려고 했다. 양곤에서 하루만 머물고 한국 가는 비행기를 탈 예정이었기 때문에. 저녁노을 빛으로 샤워할 수 있는 나만의 장소에 걸터앉아 보니, 인터넷이 연결된 태블릿에 여러 가지 다양한 방식으로 메시지가 들어와 있었다.
다수는 실종된 한국 여성의 지인들과 가족들로부터 온 것이었다. 인터넷 카페에 글 쓸 때는 그 실종 여성에 대한 실명과 나이 같은 구체적 정보를 올리지 않았다. 개인 정보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고 대사관 측에서 조사하기 시작하면 구체화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 와중에, 혼자 여행 왔다 실종된 싱글인 40대 서울 거주 한국 여성이 자기 지인이 맞는지 애 끓이며 궁금한 사람들이 나에게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메시지에서 초조함과 두려움, 답답함이 읽혔다. 내 친구가, 가족이 연락이 안 되는데 그 이름이 누구 맞는지, 혹은 내 직장 동료가 누구인데 그 실종 여성이 맞는지 확인하려는 메시지. 실종된 구체적인 상황을 묻기도 했다. 난 전해 들은 얘기일 뿐이어서 자세한 상황은 투어 업체나 대사관에서 파견한 조사관에게 물어야 할 테고, 무엇보다 같이 투어에 참여했던 목격자 증언이 중요하다, 뭐 이런 형식적인 답변밖에 할 수 없었다.
네, 그분 맞습니다,라고 그 실종된 분을 확인해줄 때, 그저 내 의무라고 생각했다. 어쨌든 실명과 나이와 거주지역과 직업을 알고 있었으니까. 그 실종을 직접 확인한 최초의 한국인이었으니까. 그녀의 마지막을 아는 대로 증언해야 했고, 어쩔 수 없이 죽음에 가까워진 실종 사실을 확인시켜야 했다.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사람, 절망하는 사람, 탄식하는 사람, 아예 아무 말도 못 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나도 슬프고 힘들어졌다. 또 누군가는 가족들이 경황이 없을 테니 대신 전한다면서 대사관에 연락해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몇 번씩 반복했다. 이유도 없이 부끄러워졌다.
사랑하고 아끼는 누군가를 잃을 가능성을, 간절히 아니길 바라며 묻는 사람들에게, 당신은 그 사람을 잃을 가능성이 커요,라고 말해야 하는 일은 처음이었다. 그건 생각보다 훨씬 어려웠다. 속이 아프고 심장이 빨리 뛰었다. 실종 당사자는 내겐 생면부지의 사람이었지만, 그녀는 내게 이미 아무도 아닌 사람이 아니었다.
만달레이 힐의 붉은 노을빛 아래서 실종자분의 지인들과 서로 위로를 주고받기도 했다. 아무 연고도 없는 사람에 대해 이렇게 사실을 전해주는 것만도 힘든데, 사랑했건 미워했건 관계의 맥락 속에 있었던 사람들은 받아들이기 얼마나 어려울까. 당연히 집으로 직장으로 가족과 친구들에게로 돌아올 줄 알았는데, 이미 3일 전에 강물 속으로 사라져 버리고 없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나도 모르게 그녀와의 관계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녀의 페이스북에 접속해 그녀가 얼마나 용감한 사람인지 봤고, 살아있을 거라 확신하는 지인들을 통해서 그녀가 얼마나 강한 사람이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렇게 나도 마치 그녀의 지인이 된 듯했다.
귀국 길에도, 수속을 마치고 공항 안에서 한국 겨울 날씨에 대비해 옷을 주섬주섬 껴입으면서도 계속 생각이 났다. 이렇게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어야 할 사람이었는데. 차가운 강 어딘가에 아직도 있는 걸까. 시뽀를 떠나면서부터 매일 몇 번씩 그녀 소식을 확인하기 위해 인터넷을 뒤졌다. 한국에 기사화되어 실리기도 했고, 대사관, 한인회뿐 아니라 다이빙할 수 있는 인근 나라의 분들까지 수색에 애쓰신다는 소식도 들렸다. 역시 생면부지일 사람들이 그녀를 찾기 위해 온라인 전단지를 만들고 영어로 미얀마 말로 번역해 각종 커뮤니티에 뿌리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았다. 난 동포나 민족 같은 말이 편안한 사람은 아니지만, 그 낯선 땅에서 실종된 한 사람을 위해 아무 대가도 없이 기꺼이 자신의 시간과 돈을 내어주는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을 받았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애쓰고 있는데 그녀는 여전히 돌아왔다는 소식이 없다.
그녀의 웃는 모습, 혹은 무표정한 모습, 각각의 표정은 머릿속에 각인되고 나는 매일 그녀를 생각한다. 내가 혼자 여행할 힘을 잃는다면 그녀 때문일 거고, 덕분에 나는 더 안전해질지도 모르겠다. 40대 엔지니어로서 한창 열심히 일하다 휴가를 내서 여행 온 그녀는 킬리만자로도 다녀왔다는데, 수영도 잘하고 강한 사람이었다는데, 아직 돌아오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