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양곤 가는 기차 안
내가 그냥 지금 숨 쉬고 있는 채로 나여서 부정당하거나 차별당해본 적 있는가. 화내려야 화낼 수도 없다. 대놓고 나에게 혐오감을 표하는 사람들은 대개 나보다 힘이 세고, 그래서 너까짓게 화내 봐야 어쩔 건데,라고 멸시하는 마음을 대놓고 말할 수 있는 거니까.
대입 시험 보러 가는 날. 내게는 중요한 날이었고 엄마는 긴장하지 말라며 청심환까지 먹였다. 나는 고집을 부려 혼자 가겠다고 했고 이른 아침에 무심히 택시에 올라탔다. 운전사는 거울을 통해 내 모습을 확인하고 ‘아침부터 안경 쓴 여자가 타면 재수 없는데...’라고 말했다.
안드레아 드워킨은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의 고통은 남성의 행동의 의미를 알기 때문이다.’라고 썼다. 그러게. 그 의미를 몰랐다면 상처받지 않았을 것이다. 대입 시험 당일 고사장으로 향하는 내게, 내가 안경을 쓴 여자여서 재수 없다고 말한 그 운전사는 자신의 행동의 의미를 알았을 것이다. 당시 나는 몰랐다. 아저씨가 더 험한 소리를 할까 봐 무서워 그냥 가만히 있었다.
그 운전사에게는 ‘안경’ 쓴 ‘여자’가 ‘이른 아침’에 택시를 탔으니 재수 없음 3단 콤보였겠지. 정작 본인이 그렇게 생각한다 해도 속으로만 생각하고 나에게 말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나한테 대놓고 재수 없다고 말했다. 내가 손님이고 돈을 내는 사람이었으나 그게 무슨 의미가 있었을까. 그가 힘의 우위를 확인하고 상대에 대한 멸시를 노골적으로 드러냈기 때문에 몇십 년이 지난 지금도 난 상처받는다.
안경 쓴 것은 시력 때문이고 여자로 태어난 건 내가 의도한 것도 아니고 시험 보러 가야 하니 택시를 탔을 뿐인데 도대체 뭐가 문제인가. 내 몸이 거기 있다는 것만으로도 멸시의 대상이 된 경험은 아직도 나를 두렵게 한다.
연예인 이영자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고 한다. 택시 탔더니 아침부터 여자가 택시 타서 재수 없다고 하길래 이영자는 그 생각을 깨주겠다면서 택시비로 10만 원을 줬다고 한다. 글쎄 그래서 그 운전사 생각이 바뀌었을까. 그 멸시를 막을 방법은 돈밖에 없는 건가. 씁쓸하다. 나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노골적인 멸시에다 가는 거리까지 짧다고 대놓고 투덜대길래, 가는 동안에는 입 다물고 있다가 내릴 때 택시비를 두 배로 주면서 겨우 하고 싶은 말을 했다. 돈 더 드릴 테니 그만하시죠. 그뿐이었다.
얼마 전 읽은 조지 오웰의 책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읽었다. 그의 탄광 노동 실태 보고서, 『위건 부두 가는 길』에 따르면 1930년대 영국 탄광 노동자들은 출근길에 여성을 보면 재수가 없으니 출근을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탄광은 사고가 많은 곳이고 인명사고는 자주 죽음으로 이어지니 조심 또 조심해야 할 필요가 있을 테고, 그러니 이런저런 금기도 많았을 것이다. 탄광에 사고가 자주 난다면 노동자의 안전을 위해 제대로 구조보강을 하지 않았다거나 석탄 생산량에만 집착해 살인적인 노동강도를 강요했다거나 제대로 된 안전교육을 시행하지 않았다거나 하는 등의 원인을 밝히고, 그 원인에 맞는 대책을 찾아야 할 것이다.
어떤 사고가 났는데 탄광 노동자가 아침에 여자를 마주쳤기 때문에 재수가 없어서 그랬다면 그걸 도대체 누가 믿을까. 그러나 이런 ‘여성에게 낙인찍기’는 사회 어디에나 있다. 특히 토목 공사장, 어촌, 탄광촌 등 남성 노동 위주의 사고 위험이 높은 사업장일수록 그렇다. 누군가 탓을 해야 마음이 편해지니까. 문제가 생기면 남 탓하기가 제일 쉽고, 그중 만만하고 약한 대상 탓을 하면 마음도 편하고 역효과도 없으니까. 여성에겐 온갖 멸시와 혐오를 뒤집어 씌워도 문제가 없으니까. 정말 비겁하고 졸렬하고 비인간적이다. 여자를 마주치는 것조차 그렇게 재수가 없다면 애초에 여자 몸에서 여자의 피와 살을 취해 태어난 그 존재 자체는 얼마나 재수 없을 것인가.
이렇게 태어난 몸으로 겪은 멸시를 구구절절 하소연한 건, 미얀마에서 겪은 멸시와 배제 때문이다. (이 글을 쓰면서 내가 왜 흑인 여성의 이야기에 그렇게 몰두하는지 깨달았다. 거기서 나의 이야기를 찾았기 때문이다.)
미얀마는 여성에 대한 거부와 낙인을 가장 강렬하게 보여준 나라였다. 부처님의 자비로움이 넘쳐야 할 미얀마 사원 곳곳에서 너무 노골적인 거부가 내 몸을 막았다. 여성은 (부처님이 계신 단에 오르는 것이) 금지된다, 고 사원 앞에 표지판을 만들어놨다. 그 금기의 언어가 너무 명확해서 발 들여놓을 생각이 아예 나지 않았다.
미얀마 인레호수가 있는 낭쉐에 유명한 파웅다우 Phaung Dawoo 사원이 있다. 이 사원엔 다섯의 부처님들이 계신데, 사람들의 신심도 대단했다. 사원에 들어서자 나를 강렬하게 거부하는 ‘LADIES ARE PROHIBITED’ 팻말이 눈에 꽂혔다.
사진에 보이는 황금 눈사람 형상이 원래는 부처님들이었다. 이 사원의 다섯 분 부처님 이야기는 미얀마 부처님 이야기 중 가장 유명하지 싶다. 온갖 사연을 겪고 자리에 돌아온 부처님들에게 사람들은 얇게 가공된 금을 붙여 자신의 믿음을 표현하고 복을 기원한다. 그런데 부처님들께 금 붙이러 올라가는 곳에 여성은 갈 수 없다. 금을 남자에게 부탁해 붙여야 한다. 그 위에 고양이는 암컷 수컷 구분 없이 올라갈 수 있는데 사람은 노소 불문하고 외국인도 편하게 올라가는데, 오로지 여자는 안 된다. 심지어 전쟁과 폭력의 상징 같은 군인 출신들이 단 위에서 부처를 돌보고 행사를 진행하는데 오직 여자는 안 된단다. 저 단에 갈 수 없으니 여성은 모니터로 부처님들의 형상을 보고 그 앞에서 기도한다.
내가 아는 prohibit이란 말은 법률이나 권한 같은 권위를 가지고 어떤 행동을 금지시킬 때 쓰는 말이었다. 체벌이나 운동선수의 약물 사용, 특정 장소에서의 흡연, 운전 중 핸드폰 사용 같은 것들 말이다. 인류의 절반이 이런 식으로 금지당하는 건 처음 봤다.
여자의 몸에서 나온 것들 중 수컷 인간들만이 열심히 금을 붙이고 있고 모니터로 실시간 그 모습을 보여준다. 여자의 몸에서 나지 않은 인간이 있는가. 예수도 마리아의 몸을 빌어야 했다. 부처님이나 마호메트도 그렇고. 남자들이 정치 사회적 권력을 다 가지고 있는 곳에서 종교적 권력까지도 다 독차지했다 치자. 여자가 뭘 어쨌다고 접근도 못하게 하나. 이 팻말 앞에서 여러 말을 넣어봤다.
다른 사원의 Don’t Woman To Place라는 사인. 정확하지 않은 영어지만 하고 싶은 말은 분명히 드러난다. 우습게도 이 팻말 위엔 여성이 부처님을 직접 뵙고 무언가 바치는 그림이 있다. 부처님은 중생을 어떤 차별로도 대하지 않았는데 개뿔, 부처님 상 모셔놓고 감히 누구에게 금지를 강요하는 건지. 내내 여성의 접근금지를 주장하던 미얀마 남자들에게 내가 속으로 삼켰던 말은 ‘너네 부처님이 그러라고 시키디?’였다.
낭쉐의 한 카페 앞에서 만난 프랑스어 선생님은 따웅지에 살면서 일주일에 3일은 낭쉐에 프랑스어 가르치러 오신다고 했다. 난 내가 왜 금지당해야 하는지 물어야 했다. 미얀마 사람들은 여성들이 더티하다고 믿는단다. 정말 이렇게 말했다. The people believe that women are dirty. 뭐여 더티하다고?
난 또 물어야 했다. 당신 엄마는 더럽습니까, 당신 딸은 더럽습니까? 아웅산 수치도 더럽습니까. 할머니도 더럽습니까. 보살님도 더럽습니까. 그러고 나니 생리 얘기를 했다. 아이고야. 내가 그 얘기 왜 안 나오나 했다. 생리에 대한 터부는 말해 또 무엇하리. 여성이 생리를 하기 때문에 네가 태어난 거야,라고 말했지만 이런 사실이 의미가 있을까.
그는 덧붙였다. 이건 종교 문제라기보다 우리 문화와 관련 있다고. 그러면 그 문화를 바꾸면 되겠네. 여성이 더러우면 그 몸에서 태어나지 말고 박혁거세처럼 알에서 나오든가. 무성 생식하든가. 그 몸에서 태어났으면 감사한 줄 알고 더티하다느니 그런 배은망덕하고 싸가지 없는 말을 하지 말든가.
또 다른 남성도 생리 얘기를 했다. 여성은 한 달에 한 번씩 이슈가 있단다. 아이고, 아무 때나 발기하고 사정하는 건 이슈가 아니냐. 또 다른 남자는 나중엔 여자는 수다스러워서 금지된다고 했다. 말인지 방귀인지. 남자들 수다를 안 들어봤나. 나는 한 동안 영어를 할 줄 아는 미얀마 사람을 만날 때마다 이 얘기를 묻고 또 물어야 했다.
몽크 수련하는데 여자가 있음 방해된다는 의견도 있었다. 그건 몽크 머릿속에 음탕한 마음이 이미 있기 때문 아닌가. 그리 사념 많고 성욕 통제 못하면서 뭔 몽크를 하려고 해. 내 질문에 할 말이 부족해지자 화를 낸 남자도 있었다. 그럼 너네 나라는 여자가 막 사원 들어가고 그러냐?라는 질문을 받고는 다소 어이없는 국뽕에 차올랐다. 한국에선 성당이고 교회고 절이고 여성들이 다 들어가. 하나님, 성모 마리아, 부처님에게 모두가 기도할 수 있어. 너네 나라가 이상한 거야. 이건 종교문제도 문화도 아냐. 그냥 혐오고 멸시야. 너네 부처님이 알면 이런 차별 정말 싫어할 거야. 그러나 얘기는, 우린 옛날부터 그랬어. 전통이야. 인도는 더 심해. 인도에서 여자들은 사람 취급도 안 해, 로 이어졌다.
미얀마 여성들은 스스로가 이 존재 금지에 대한 의견이 없었다. 미얀마 말을 못 하니 대화할 수 있는 여성들만 만나면 용기 내 말을 걸어봤지만 이상한 거에 관심 갖는 외국인 취급당할 뿐이었다. 그러다 때가 왔다. 미얀마 만달레이에서 양곤으로 출발한 기차 안. 앞 좌석에 여자 스님. 오랫동안 사색에 빠져 계셨는데 잠깐 쉬는 틈을 타 눈웃음을 교환하고 인사를 나눴다. 그리고 천천히 질문을 시작했다. 그동안 답답함이 쌓여 긴 얘기를 쏟아놓고 이해받고 싶었다. 미얀마 사원은 왜 나를 못 들어가게 해요? 부처님의 가르침이 그런 건 아니잖아요... 스님은 내게 설명을 시도하다, 너의 질문에 답해 줄 현명한 분이 있다며, 그 분과 대화해보라고 했다. 고마웠다. 스님은 전화를 걸어 누군가와 통화하더니 수화기를 건네주며 너의 궁금증을 풀어줄 수 있을 거라 했다.
통화 목소리는 남성이었다. 현명하고 공부도 많이 했다는 그는 전통과 불교 교리와 또 그 ‘이슈’ 이야기를 했다. 좀 슬펐다. 결국 답을 찾을 수 없는 질문만 해온 것이다. 당사자 여성들은 계속 침묵한다. 아마 누군가는 스스로 목소리를 내고 있을 것이다. 내가 못 만난 것뿐. 그러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