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참 피곤한 일이야. 안 그래? 몸에 익숙하게 붙은 관성대로 살 수가 없어. 낯선 상황에 적응하기 위해 긴장해야 하고. 낯선 잠자리, 낯선 사람들, 낯선 길 모두 스트레스지. 그런데 익숙한 곳에서 벗어나 가야 할 길을 스스로 결정하는 일은 늘 가슴 떨려. 내가 가고 싶은 길로 그냥 가면 되는 거잖아. 이게 가능하다고. 누구도 강요하지 않고 나도 휘둘리지 않아. 생각해봐. 우리가 얼마나 우리 가고 싶은 길로 가면서 살아?
여행 떠나기 전 오랫동안 남들처럼 출근을 위해 매일 걸어야 하는 길을 걸었어. 매번 같은 지하철을 타고 같은 출구로 나와 매일 같은 시간에 내 몸뚱이를 내 정해진 책상 앞에 갖다 놓아야 했어. 가는 길은 늘 정해져 있었어. 벗어나 봐야 지각이지 뭐. 그 정해진 길의 일부였던 서울 지하철 6호선 공덕역 2번 출구까지 가는 길에서 ‘내가 지금 콱 죽어버린다면~’ 같은 상상에 빠졌어. 보스 새끼 엿 먹일 수 있겠다, 오늘 처리해야 할 일 빵꾸 나겠다, 날 괴롭힌 사람들은 그래도 조금은 고통스럽긴 하겠지? 그것만으로도 쌤통이다... 이런 찌질한 생각을 하면서 말야.
겨우 용기를 내고 여행을 떠났을 때, 내가 얘기했나? 처음 섬 같은 남한을 떠나기 위해 비행기 타러 공항에 갔을 때 제일 무서웠던 게 자동문이었다고? 풉. 비행기 탑승 수속 절차를 열심히 익히고 왔는데, 길을 터주려고 자동문이 활짝 열렸는데,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서 자동문을 지나서 그 문 옆에 오랫동안 서 있었거든. 먼 길이었고 혼자여서 더 겁났겠지. 그렇게 어리바리했는데 슬리퍼 하나 끌고 화산도 사막도 히말라야(안 올라가고 구경만 했어)도 다녔으니 얼마나 기특한지. 이 뿌듯함과 여행하면서 만난 사람들 얘기로 요새 계속 히죽히죽 웃고 다니고 있어.
여행 다닌 생각들로 하루하루를 채웠어. 사연 많은 것 같은 골목 초입에 들어설 때는 기대하지 않은 행운처럼 그저 놀라운 일들이 벌어질 거 같아. 물론 그런 곳에서 길도 잃고 돈도 잃고 두려움에 떤 적도 있었지만, 길바닥에 앉아 지도를 다시 보고, 한숨 몇 번 쉬고, 엉덩이를 툴툴 털고 일어나 다시 낯선 골목으로 들어갔어. 길을 잃어봐야 알래스카 빙하 지역이나 사하라 사막은 아니니까. 도둑놈, 사기꾼뿐 아니라 환대하는 사람들도 만나고 또 그렇게 다시 그냥 가고 싶은 길로 갈 수 있는 힘을 얻었어.
이런 잡생각으로 오늘도 사는 일이 조금은 덜 무서워졌어. 태블릿과 여권만 챙겨도 든든하고. 뭐든 심심하고 지루해서 문제잖아. 안 심심하려고 내 인생의 ‘가장 나종 지닌 것’이 뭘까 생각해봤어. 그만큼 소중한 거 말야. 어설프게 박완서 흉내를 내보긴 했지만, 죽기 직전까지 내 손에 있을 게 여행 기억일 거 같아.
여행의 기억을 끝까지 간직하고 그 이야기로 웃고 싶어. 간직한 이야기를 전달하고 공유할 수 있으면 더 기쁠 거 같아. 사실, 사는 게 불안하고 겁나는 게 많아서 이런 얘기를 주절대고 있는 거지 뭐. 현실에 더 집중하려고 말이야. 함 생각해봐, 너에게 가장 나중까지 지닐 것은 무엇인지.
여기 내 이야기를 내놨어. 너가 많이 웃고, 나아가 이 이야기가 너가 길을 떠나 다른 이야기를 만날 사소한 부추김이라도 될 수 있다면 참 좋겠어. 너에게 이야기가 쌓이면 이번엔 내가 들을게.
해먹 사진이 있는 곳은 조지아 FIFTH SEASON이라는 곳이야. 여기에 너가 있는 모습을 보고 싶어. 너무 춥지 않을 때 가야 해. 저기 누워 사뿐하게 뺨에 부딪히는 바람을 맞으면 새로운 기쁨이 속에서 올라올 거야. 발가락 사이를 오가는 바람도 느낄 수 있을 거야. 그걸 실컷 즐겼음 좋겠어. 저기 너가 있는 모습을 기대할게.
김성냥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