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마다 도지는 병
진짜 진짜 '내' 얼굴을 찾아서
"사이코지만 괜찮아"라는 드라마의 최종회 제목이 '진짜 진짜 내 얼굴을 찾아서' 였는데 참 마음에 와 닿았다. 상처 많은 사람들이 서로 보듬어 안으며 천천히 성장하는 드라마. 진짜 내 얼굴을 찾아야 내 인생도 마침내 행복할 수 있다는 메시지. 수동적인 여주인공이 아니라 자기 틀을 스스로 깨고 바꾸는 '사이코여도 사랑스러운' 히로인. 정신병원이지만 '괜찮은' 병원 속 사람들이 마음의 병을 함께 치유하는 이야기. 요즘 이런 이야기들이 부상한 것은 내면을 좀 더 바라보려고 하는 노력 탓일까, 그만큼 정신질환이 늘었다는 이야기 일까. 어째도 상관없다. 중요한 건 어떤 모습으로 살아야 진짜 내 삶을 살 수 있을까 고민하고 답을 찾는 것일 테니까 말이다. 내게는 심리 상담도 그 방편 중에 하나였다. 우울증 때문에 병원을 찾아갔다는 이야기를 들은 친한 친구 한 명이 15년 전에 그렇게 말해 주었다. 아무런 판단도 하지 않은 채, '병원에 스스로 간 게 벌써 반은 나은 것이다' 라며. 그 말이 지나와 생각해 보니 지금도 참 고맙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준 거 같아서 말이다.
사실 그 이후로 지난 10년간은 나도 괜찮은 줄 알았다. 정신의학과 방문 최초의 5년 전후로, 10회기 차 이상의 장기 상담 세 번, 그러고 나서 수면제 없이도 잠들 수 있다는 걸 깨달은 것도 근 10년 안짝이다. 입원까지는 아니어도 20대 초부터 참 많은 고마운 상담사 선생님들을 만나 참 많은 위로를 받았었다. 마지막 10회 차 녹음 파일을 주셨던 선생님은 가끔 그걸 들어보라고 하셨다. 뭐 하나 내 속에 소화되지 않은 채 '밥알이 곤두서 있는' 감정들을 풀어내야 진짜 내 모습에 다가갈 수 있다는 걸 계속해서 인내하며 알려주셨다. 그 한풀이 같은 회차들을 끝내고 이제 다 잊고 살고 있는 줄 알았는데 내 잠재의식 속에 늘 '상담'에 대한 갈망이 있었나 보다. 코로나가 내게 준 선물은 뚜껑을 열어둔 채 저 아래 바닷속 같은 무의식 속에 가둬둔 '상담'에 대한 열망을 깨닫게 해 준 것?
다시 공부하고 싶다는 꿈을 안겨준 것일 거다. 그게 전문적인 공부 일지 나 자신을 위한 마음공부 일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우선 시작은 했다. 지금은 뭐라도 하지 않으면 견디지 못할 정도로 나는 우울이란 바닷속에 침잠해 있으니까. 가끔 올라와서 숨 쉬고 또 가라앉기를 반복하면서 애써 마음속에 난 상처들은 못 본 척 괜찮은 척 꾸역꾸역 살았다. 울분의 실체를 찾아 더듬어 찾아가는 일이 상담이라고 생각한다. 상담자도 내담자도 엄청난 기력이 소진된다. 진짜 내 모습과 사람들이 지각하는 내 모습, 내가 느끼는 내 모습에 대해 이야기하던 1회 차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고인다. 안 울려고 해 봐도 감정이 차올라 멈출 수가 없었다. 그 순간 내가 느낀 감정은 '피곤함과 고단함'이었다. 10년 전에 진짜 하고 싶었던 걸 돈 때문에 포기하고 나서 그냥 닥치는 대로 할 수 있는 걸 찾아 하다 보니 여기까지 흘러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들은 살면서 굳이 겪지 않아도 될 일을 너무 일찍 알았다는 생각에 많이 억울하기도 했다. 회한이 미래를 이겨나가는 밑거름이 되려면 나는 얼마나 더 자정작용을 해야 할까? 가끔 몸에서 사리가 나올 거 같다. 그래도 이 방향이 힘들어도 맞다는 생각이 들기에 꾸물거리면서도 갈 수 있다. 달팽이가 자기 집을 이고 가는 것처럼 말이다.
아직 상담 9회 차가 더 남아있다. 살다 보니 큰 계기가 되어 다가온 기회이니 집단 상담과 상담 실습 교육을 계속 더 받아보려고 한다. 10년 동안 저작하지 않고 남겨둔 밥알들을 얼마나 소화시킬 수 있을지, 얼마나 울부짖을지 모르는 마음에 벌써 숨이 막힌다. 그래서 지난 며칠 동안 단 한 글자도 쓸 수 없었다. 핑계 덩어리가 아니라 부지런한 내가 되고 싶다. 세상에 선언하듯 여기에 쓰는 나의 다짐. 부디 진짜 내 모습으로 지금 여기를 살 수 있길 바라는 어른 아이. 그게 오늘의 나인걸.
"달팽이가 아무리 느려도 늦지 않다"는 어느 스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며 한 주를 시작해 본다.
사진 출처 : 포토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