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원칙 찾기
재택근무 8개월 차, 잠이 오지 않는 이유
나는 잠들기 전에 어떤 자극이나 생각에 빠지면 쉽게 잠들지 못한다. 꽤 오래된 현상이고 참, 괴롭다. 글 쓰고 싶어 밤새는 것과 차원이 다르다. 다음 날 오전에 중요한 클라이언트 미팅이라도 있는 날이면 미쳐 버릴 것 같다. 아로마 떼라피, 명상, 운동, 우리 보스가 프랑스에서 공수해다 준 허벌티까지, 온갖 방법을 써봐도 문제는 내 마음속에 있다. 몇 년 전 출장 때 만난 한국 지사장님이 비행기 시차에 적응 못하신다며 본인은 멜라토닌을 의사에게서 처방받아 복용하신다고 하셨는데, 그때는 이 약이 수면 유도제일까 봐서 섣불리 손대지 못했었다. 찾아보니 아래와 같다. 실제로 올해 들어 처음 여기서는 시판 가능한 멜라토닌 3mg을 필요시에 복용하기 시작했다. 자다가 중간에 갑자기 눈을 뜨는 일은 생겨도 잠드는 시간은 확실히 빨라진다. 다만, 수면시간이 모자라면 뇌가 잠자는 것처럼 몽롱해서 카페인을 많이 섭취해야 하는 부작용은 있다.
멜라토닌은 뇌에서 분비되는 생체 호르몬으로 불면증 치료에 사용되는 약물이다. 기존의 뇌를 억제하여 수면을 유도하는 약물과는 다르게 멜라토닌 수용체를 활성화시켜 자연적인 수면을 유도하는 작용을 한다. 생체 리듬이 깨진 사람들 또는 멜라토닌 수치가 낮은 노인이나 불면증 환자에게 효과가 있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멜라토닌 (약학 용어사전)
이상적인 생체 리듬 형성과 달리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은, 혼자서 8개월째 재택근무를 하며 결핍된 유대감이다. 경제가 안 좋아서 감봉되는 회사들도 많다는 위기감도 있지만은, 사람은 혼자서는 살 수 없다는 말을 절실하게 느끼고 있는데, 또 막상 누군가가 내 삶에 들어오면 나는 온 힘 다해 밀어내므로 적당한 거리두기가 필요하다. 참, 나란 사람은 예민하기 그지없다. 어제는 잠이 오지 않아서 침대 옆 테이블에 큰 종이를 올려두고 펜으로 막 휘갈겨 적었다. 이런 말들이 적혀있었다. 음, 지금 보니 랩을 하고 싶었나 싶기도 하다. 하루에도 수십수백 개의 정보들이 내 눈 앞을 스쳐 지나간다. 그중에 무엇을 잡아서 내 것으로 만들고 내 삶에 적용할지는 순전히 나의 선택이다. 모든 것에 반응할 필요는 없다.
감정 다스림
걱정하지 마
너만 생각해
세상 문제는
네게 아니야
헌데 돌아보니 늘 나는 그렇게 살았던 것 같다. 나만의 원칙이 없이, 주변에서 듣는 이야기들로 내 인생을 채점하면서, 나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예쁨 받으려고 애쓰면서. 인간관계에서 기대하고 상처 받으면 생채기는 훨씬 깊고 오래가는데, '나만의 원칙'이나 '줏대'가 없이 휘둘리다 보니 대체로 내가 사용했던 방어기제는 부정, 투사, 반동 형성 등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기를 거부했던, 남 탓했던 것들이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호불호는 뭔지, 어떤 걸 잘하고 못 견디는지, 모르는 채로 남들이 '너는 이런 애니까'라고 하는 말을 믿고 거기에 나를 짜 맞추고 살았다. 삶이 얼마나 불행했을지 확고한 자아가 있으신 분들은 예상 가능하리라 싶다. 그러니까 나는 화가 나면 첫째, 화를 내는 나 자신을 인정/수용하지 못했고, 둘째, 그걸 어떻게 다스려야 할지 몰랐다. 술이나 담배 같은 중독성 물질 탐닉도 몸이 망가지지만, 도박 같은 쾌락에 빠졌으면 아마 패가망신했을 거야.
방어기제는 자아가 위협받는 상황에서,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속이거나 상황을 다르게 해석하여, 감정적 상처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심리 의식이나 행위를 가리키는 정신분석 용어. 출처 : 네이버 두산백과
나는 어릴 때부터 모든 파괴적인 정서를 좋아했던 것 같다. 해서 어느 순간 나의 바비 인형들은 모두 머리카락이 짧아져 있었다. 어느 날 학교에 다녀왔더니 애지중지하던 아이들이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아버지가 이제 공부 열심히 하라고 모두 고아원에 갔다 주셨다고 했다. 그때 나는 아홉 살이었다. 너무 화가 나서 부모님께 따지는 대신 나는 방안의 모든 것들을 뒤집어엎었다. 전쟁이 난 것 같은 방구석을 보니까 화가 좀 풀렸다. 역시, 이상한 아이였을까. 커 오면서는 여자여자한 겉모습과는 달리, 악쓰는 록음악과 화려한 화장, 옷차림 같은 걸 좋아했다. 영화도 호러를 즐겼다. 공포영화에서 주인공들이 연기하는 감정이야말로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감정에 닿아있다고 믿으면서. 아이러니하게도 현실에서는 자기가 상처 받는 줄도 모르는 감정 고자(鼓子)였다.
이런 표현이 우습지만, 심리학 공부할 때 교수님께서 그러셨다. 사회생활 제일 못하는 놈들이 사회심리학 공부하러 온다고. 2년 동안 공부하고 석사 따도, 인생은 여전히 어려웠다. 모난 돌 정 때리는 사회를 견디다 못해 해외로 뛰쳐나왔어도, '나만의 뷰파인더를 찾아서 세상 바라보기', '내가 원하는 걸 정확히 인지하고 대인관계에 세련되게 대처하기', 이런 목표들은 늘 '해야 할 일' 목록에 있었지 실천이 어려웠던 것 같다. 너무 오랫동안 익숙했던 걸 벗어나려면 시간이 좀 걸리지 않겠나 싶다가도 어제 같은 날에는 조바심이 나더라. 재택근무 8개월 동안 나름 열심히 일했고 성과도 냈다. 이것저것 꿈꾸던 일들을 시작도 했다. 너무 힘들게 자신을 채찍질 하기는 싫다. 하지만 어젯밤에는 정말 알고 싶었다, 왜 아직도 우울한 건지. 코로나 블루인 건지 내 안에 내재된 우울감인지. 실체를 찾아서 찢어발기고 멜라토닌 없이도 편안한 잠을 자고 싶었다.
가슴속에 쌓인 울분들이 풍선들이라면 톡톡 터트려 줄텐데. 살면서 얼마만큼을 받아들이고 얼마만큼을 나로 살 것인지 나만의 원칙 세우기에 돌입해 본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로 다른 분들의 글을 읽는 것도 좋지만 나만의 고유성을 잃고 싶지는 않다. 무엇인가에 휩쓸리면 한 없이 휩쓸려버릴 나를 알기에, 준비 없는 사랑조차 나는 무섭다. 저녁에는 나가서 달려야겠다. 머리가 복잡할 때는 하나씩 덜어내야 제일 아래 가라앉은 찌꺼기 같은 본심이 나온다. 나를 드러내는 게 뭐 그리 어렵다고 꽁꽁 숨겨두고 살았는지 내 안의 상처 받은 아이를 만나러 가는 길은 아직도 이렇게 멀고 험하다. 포기하지 않고 보듬어주러 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마침표를 찍는다.
사진 출처 : 네이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