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고백

변화에 따라 내일은 조금 더 나아질 거라는 믿음

by 장서율

최근 며칠간, 마음이 따뜻해지던 순간들에는 몇몇 분들의 소중한 충고가 있었다. 내 마음을 돌아보고 지난 삶을 반추하는 계기가 되었다. 나의 얕음을 깨닫고 조금씩 느리게라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였다.


'너 그대로도 괜찮아, 충분해, 뭐든 지나친 건 좋지 않아'.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의 이분법은 세상에 명확히 존재해도 '괜찮은 사람'은 많지 않다는 이야기를 듣고 무릎을 탁 쳤다. 이래서 공자의 중용, 과유불급이란 말의 실천은 어려운 것이었나. 아름다운 꽃도 '꽃은 그냥 꽃이구나'라고 현상 그 자체로 받아들일 수 있는 이성을 가질 수 있을 때까지 참 숨 가쁘게 달려왔다. 마음을 가다듬고 인생 후반전을 더 기껍게 맞기 위해서는 꼭 내 상처들을 돌아보고 약을 발라주어야 했던 거다. 몸이 조금이라도 아픈 건 잠시도 못 참고 병원에 가면서, 제 마음 들여다보는 건 왜 그렇게 무서웠을까. 내버려 둔 채 커진 심연의 깊이가 가늠도 되지 않아서 그랬겠지만 이제는 그 우물에 볕이 들고 있는 게 느껴진다. 맑아진 수면 위로 내 모습이 그대로 비쳤으면 좋겠다.


커오면서 나란 아이의 존재보다는 나의 타이틀이나 금전에 더 관심이 많은 것 같았던 엄마에게서 멀리 떠나와 서른이 훌쩍 넘어서야 제발 '정신 차리시라'는 모진 말들을 그녀에게 쏟아낼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영영 모두가 나락으로 떨어져서 나는 진정 가족을 모두 잃을 것 같았기에. 관계가 가까스로 회복된 지 1년여, 일상적인 통화를 하다가 문득 엄마에게 한 마디 들었다. 택시 타고 어디 좋은 데 간다고 하니까 괜히 들떠서 뭐 잊어먹지 말고, 즐거운 시간 보내라던 엄마의 말씀을 듣고 잠시 좀 멍했다. 엄마가 아무것도 내게 바라지 않고, 뭘 하라고 시키거나 혹은 돈을 달라고 하지 않고, 그냥 내 안위를 걱정하시는 말씀을 해 주신 게 얼마만이었을까? 많은 부분 엄마의 인생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던 나와 그저 인생 순리를 따라 살고 싶었다던 엄마. 살면서 몇 번의 큰 실수를 했다고 해서 엄마가 나를 낳지 않았고 보살피지 않은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오랫동안 나는 나의 엄마를 미워해 왔을까.


그녀가 그렇게 반대하지 않았어도 나는 언젠가는 그와 헤어졌을 거고, 그녀가 그렇게 싫다고 했어도 결국 나는 지금 여기에 있었을 것인데 말이다. 결국 모든 것은 나의 판단과 선택이었다. 인생길 여기까지 와 보니 이제야 마음으로 그녀의 존재를 받아들여본다.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영향을 준 존재, 오랫동안, 가장 많은 악몽의 주인공이었던 그 사람. 지금은 나를 위해 기도해 주시는 그 사람. 엄마처럼 살기 싫어서 해외까지 도망 나왔건만, 살다 보니 이런 날이 스르르 찾아올 줄은 30여 년 전에는 미처 몰랐다. 부디 이 평안을 잊지 않고 앞으로도 그녀에 대해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살기를 바라면서 작은 고백과 기도를 드린다.


살면서 어떻게 좋은 일만 있으랴. 노력하면, 내 마음을 보듬어 주면서 가만히 들여다보면, 올바른 선택을 하게 될 것이고 그로 인해 상황은 반드시 더 나아질 것이라는 믿음을 버리지 말자. 오죽 힘들면 그럴 수도 있지, 하며 남의 입장에서 나를 돌아보면 내 상황도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닐 것이다. 나를 둘러싼 현상에 대해 내 마음을 더 이상은 속이며 살지 않으리라 다짐해 본다. 예컨대 이런 거다. 지키지 못할 것 같은 약속은 함부로 하지 않으리라. 언행을 조심하리라. 생각을 바르게 가지리라. 지나온 나날에 대한 자기 비하는 가지지 않으리라.


정말 신기하다. 깜깜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때는 머릿속 회로가 모두 멈추어 버린 듯이 아무런 사고도 할 수 없었다. 정서가 없는 사람처럼 일만 했었다. 미래는커녕 그냥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 생을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었다. 가능한 한 기껍게 살자. 매일 웃으며 살 수는 없더라도, 내 마음에 거리끼는 일을 이제는 하지 않고 살 수 있을 것 같다. 나의 가장 가까운 최초의 사회적 타인인 '엄마'에 대해 용서와 수용이 이뤄지자 신기하게도, 더 이상은 애정 하는 대상에게 사랑을 구걸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이 마음이 충만하다. 사람에 대한 증오는 사랑도 왜곡시키는 괴물 같은 감정이었구나. 미워하는 감정이 생기는 사람이면 그냥 사람이다,라고 받아들여 보리라. 반대로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그 사람 또한 사람이니 존중하자, 해 보리라.


사진 출처 : http://institutions.ville-geneve.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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