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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서율 Oct 27. 2024

파도 자국

어느 날의 꿈


아파트 경관을 수리하는 드릴 소리가 유난히 시끄럽다. 고요한 듯 어지러운 아침을 깨우는 여러 가지 소리와 냄새. 서율은 아직 무사히 살아있다는 것에 안도하며 침대에서 일어난다. 눈에 내리 꽂히는 햇살이 날카롭다.


십여 년 만에 그의 꿈을 꾸었다.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어서 괴로워했던 트라우마는 그렇게 가슴속에서 사라져 가고 있는 줄 알았었는데.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서 그에게 목을 졸리고는 소리를 지르는 꿈이었다. 그녀는 꿈에서도 무서웠다. 사시나무처럼 떤다는 게 그런 의미인 줄 몸소 깨달았다. 애초에 한 밤중의 강의동에서, 지름길이라고 해도 어두운 복도로 들어가는 건 좋지 않은 선택이었을까. 경고등을 따라 총총걸음으로 연구실로 향하던 중에 뒤에서 누가 그녀의 목 언저리를 껴안으며 차가운 바닥으로 쓰러트린다. 그녀의 귀에 대고 반가운 듯이 낄낄대던 남자는 낮게 노래를 읊조린다.


'홍도야.. 우지 마라...'


순간 전신의 털이 곤두서는 소름을 느낀 서율은 새된 목소리로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꿈에서 소리를 질렀었나 보다. 사건이 있고 십여 년이 지난 지금 그녀가 꾸는 꿈에서 현실과 달랐던 부분은 단 하나,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는 사실 뿐이었다. 작은 가슴속에 응어리 진 피멍들이 모두 모여 절박하고 가느다랗고 긴 비명을 만들어 낸 꿈을 꾸고 나서 서율은 한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가만히 노래를 불렀다. 그녀의 심정만큼 처연한 노래였다.


'조각조각 부서진 작은 꿈들이.. 하늘 멀리 저 멀리 흩어져가고..'


왜 이 노래였을까. 행복한 노래는 애초에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았다. 슬프고 외롭고 처연한 정서가 그날 이후의 그녀의 온몸을 지배했으니까. 그것이 온 뒤로는 모든 게 익숙하게, 남색 빛으로 뒤덮인 것만 같았으니까. 서율은 자신의 무지갯빛 꿈을 잃어버렸다.


****


십여 년 전의 그녀는 깡마르고 목소리도 작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야기하는 게 소극적인 대학생이었다. 서율의 어깨는 늘 굽어있었고 대강 풀어헤친 장단발과 안경은 그녀의 '어느 정도는 닫힌 세계'를 연상시키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그녀는 미래에 대한 꿈만은 원대하게 가지고 있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잘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마치 현재가 아니라 미래를 위해 사는 사람처럼 주변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살았다.  공강을 쪼개서 학교 안팎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수업시간에 문제집 감수 일을 했고, 그러면서도 도서관에 신규 도서 구입 신청서 명단에 자주 이름을 올렸다. 읽고 싶었던 책들을 모두 학교에 이미 납부한 등록금으로 구매 신청할 수 있다는 걸 아는 학생들이 의외로 많이 없었다. 그녀에게 아무도 손대지 않은 책의 첫 독자가 되는 일은, 순결한 소녀의 옷을 벗겨 처음 그녀의 동정을 취하는 경험을 상상하는 것처럼 설레었다. 그렇다고 해서 서율이 이성이 아닌 동성을 사랑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수많은 소설들을 읽으며 그녀는, '만약 내가 남자였다면', '만약 내가 이런 성격이 아니었다면', '만약 내가 다른 나라에 태어났다면...' 등등의 가정을 즐기며 마법에 걸린 것 마냥 자신의 현실에서 도피해 나가기 일쑤였다. 그녀의 세계 속에서만큼은, 행복해 보이던 서율이었다.


그날도 잰걸음으로 강의동 사이를 가로질러 부지런히 다음 수업으로 향하고 있던 중이었다. 연한 하늘색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은 그녀의 어깨를 잡아끄는 남자가 있었다. 그녀의 '나름 친한'과 선배 지우였다. 지우는 서율이 입학하고 나서 그녀를 계속 사회학과 동아리로 집요하게 잡아끌었다. 서율이 자기 자신밖에 관심 없는 사람인 줄도 모르고, 자기 얼굴에 바르는 화장품 하나도 아까워하는 사람인 줄 모르고. 지우는 매번 서율에게 더 큰 세상을 보라고 채근해 댔다.


'야, 박서율, 너 왜 자꾸 나 무시하냐? 사람이 말을 하면 좀 듣는 척이라도 해 봐'

'선배님 무슨 말씀하시는지 잘 모르겠어요.'

'야! 넌 사람이 잘해 주면 그 이면에 뭐가 있는지 잘 생각 좀 해 보고 대답해라. 그렇게 모르겠냐?'

'... 왜 그 이면이 있다는 말씀을 하시는데요? 제가 거기까지 헤아려야 하나요? 알바 가야 해서 바빠요.'

'.. 이야기 좀 하자니깐. 나 곧 군대 가서 그래. 동아리 학회장으로 네가 딱인데 과 모임에 좀 나와라'


나의 무엇을 보았기에 학회장으로 나를 선점한 걸까? 서율은 무심결에 자신을 바라보는 어떤 타인의 시선에 반응하고 있었다. 자라면서도 늘 혼자였던 그녀는 자신에 대한 평가와 인정, 혹은 관심에 목말라 있었다. 하지만 대놓고 그런 이야기를 묻는 건 겸연쩍다고 생각해 왔다. 아이로서 훈육받는 과정에서 늘 죄책감을 안고 살았던 서율. 자신을 비춰주는 거울이 일그러지고 깨져 있는데 거기에 비친 자기 모습이 그저 진짜 자신일 거라고 믿었기에, 그녀의 자존감은 콩알만큼 작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남에게 지기 싫고 쉬워 보이기 싫어서 - 오기 하나로 버텨왔기에 늘 바쁜 척하면서 지냈다. 사람과 어떻게 친해져야 하는지, 얼마만큼 자신을 내 보여야 하는지 실은 누구도 가르쳐 준 적이 없었고, 알지 못했고, 알아가기가 두려웠던 게 사실이다.


'지우 선배. 저 과 모임 지루해요. 따로 차 한잔 했으면 좋겠는데요. 지금 시간 되시면 30분 정도만요.'

당돌하게 나온 모 아니면 도의 제안. 지우는 선뜻 그 제안을 받아들이며 학교 앞의 카페로 나를 잡아끈다.

'뭐든 시켜. 비싼 거 마셔도 돼'

'여기 비싼 게 술 빼면 비엔나커피 정도네요.'

'... 술 마시든가 그럼'

'그래도 돼요?'

'뭐? 서율이 너 술 마실 줄도 아니?'

'... 저도 대학생인데요. 것도 벌써 2학기 째인데요.'

'어, 그럼 마셔. 뭐 마실래. 칵테일?'

'러스티 네일이요.'

'이제 보니 술꾼이네.'


지금 와 생각해 보니 서율이 지우 선배에게 느낀 친밀감은 그의 단발머리가 한 몫했던 것 같다. 장단발의 서율과 단발머리 뿔테 안경의 지우. 지우랑 서율은 멀리서 보면 쌍둥이처럼 풍기는 분위기가 비슷했다. 지우는 평범하게 자랐고, 평범한 학생들보다 아주 조금 더 사회 문제에 관심이 있었고, 그래서 사회학과 동아리를 운영하며 새내기들에게 황지우 시인의 시를 소개하면서 사회는 함께 만들어가야 하는 거라고 누누이 이야기하고는 했다. 서율이 고등학교 입시 공부를 할 때는 줄줄이 외워야 했던 공통 사회의 근대사와 대학에 들어와서 접하는 근대사는 마냥 달랐지만, 서율은 그가 소개한 '새내기는 쇳물'이라 칭하던 황지우 시인의 시가 마냥 좋았다. 시대에 반항하는 듯한 지우의 단발머리가 마음에 들었다. 마음속에는 쿵쿵 거리는 열정을 가졌지만 막상 표현하면 또 뭇매 맞을 것 같아서 - 기실 그녀는 학창 시절에 자주 담배를 숨겨두고 피우다 집에서 여러 번 구타를 당한 적이 있었다 - 꽤 많은 욕망을 숨겨두고 살았던 서율. 


서율이 그 욕망의 빗장을 여는 수단은 사실, '술'이었다. 술을 마시고 나서 약간은 다른 사람인 것 같은 착각에 취했을 때, 그녀는 그것이 진짜 자신의 모습인지 아닌지도 모르는 채로, 마음에 있던 말들을 비로소 뇌까리기 시작할 수 있었다. 진짜 자신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몰랐던 게, 서율이 제일 잘못했던 건 아니었을까. 자신의 마음에 대해서, 인생에 대해서, 꿈에 대해서, 제일 잘못한 게 있다면 자신의 마음 한 자락에 솔직하지 못했던 거, 그거 하나 아녔을까.


***


아직 덜 깬 머리로 커피를 마셔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몸을 일으켜 세운다. 언젠가부터 속이 아픈 것도 느껴지지 않고 조금만 피로하다고 생각되면 피부에 불그스름한 반점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술을 조금 많이 마셨다 싶은 날에는 구토와 신물이 참을 수 없이 올라왔다. 마치 참을 수 없을 만큼 쌓아둔 마음속 찌꺼기들이 악취를 풍기다 결국 거죽을 뚫고 나오는 것처럼, 자기 자신이 감정의 쓰레기통이 된 것 같아 견딜 수 없는 서율은, 예기치 않았던 악몽으로 인해 마음이 프리마 탄 커피 마냥 뿌옇기만 했다. 일곱 시 사십오 분, 원래 일어나야 했던 시간의 핸드폰 알람이 울렸다. 그리고, 알람을 끄려고 다가간 전화기에서 이른 시간 전화가 울린다. 띠링. 지우다.


'무슨 일이에요?'

'지율이가 많이 아파.'

'이제는 안 보여 줄 거라면 서. 연락 안 할 거라면서. 애를 어떻게 돌봤길래? 어머니가 잘 키워주신다면서!'

'... 어머니 많이 아프셔'

'... 왜?'

'암 이래. 췌장암. 말기야.'

'.....'


내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데. 내 노후 생각하기도, 내 일 해나가기도 바쁜데. 지율이. 지율이.. 지율이. 갓 낳은 핏덩이. 아이를 낳는 게 뭔지도 모르는 애가, 사랑받으면서 큰 적도 없는 애가, 모습만 대학생이었지 실은 마음도 여렸던 애가, 덜컥 애를 가지고 애를 낳았다. 러스티 네일을 마신 그날의 오후가 아니었다면, 그날의 알바를 몸이 안 좋다고 째지만 않았더라면, 그냥 서율이 하던 대로 자신의 알바를 계속하면서 무사히 졸업하고 그녀의 꿈대로 집에서 벗어나 멀리멀리 떠날 수만 있었던 들. 그녀는 지우와의 끈덕진 연을 피해 갈 수 있었을까. 고개를 도리도리 저어봤다. 서율은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날 자신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사랑한다는 말이 말로만 알지 뭔지도 모르고, 몸을 섞는 행위의 쾌락이 뭔지도 모르는 채로 그와 침대에 누웠다. 수많은 바리케이드를 치고 견고히 쌓은 성이었는데, 하룻밤만에 함락되고 말았다. 그리고는 그게 자신이 원했던 것이라고 자위했다. 나도 돌봐줄 사람이 있어.. 나에게도 기댈 곳이 있어... 그래서 나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라고 믿었다. 지우의 가족들은 서율을 탐탁지 않아 했다. 하지만 그녀의 뱃속에 생긴 아이는 원했다. 손이 귀한 집이라고 했다. 지우가 졸업하는 대로 결혼하고 아이를 먼저 낳으라고 했다. 자신의 집에서도 대접받지 못했던 서율은, 그래도 새 환경에 직면하면 새로운 자신으로 거듭날 수 있을 거라고 강하게 믿었다.


***

지우와의 일들 이후 얼마나 지나서였을까. 학과에 남아 강의 조교 알바를 했던 2학기 서늘한 가을날 무렵에, 서율은 교수의 심부름으로 과 회식에서 잠시 나와 강의동 연구실에 교수의 가방을 가지러 가던 길이었다. 좀 어둡기는 해도 에둘러 가는 길보다는 빠른 비상구 계단길로 빠르게 걷고 있었는데 누가 뒤에서 그녀를 덜컥 안아 올렸다.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인 데다가 목을 졸리니 발버둥을 쳐봐도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안경이 벗겨지고 옷도 차가운 시멘트 바닥 위에 마구 흩뿌려졌다. 벽에 머리를 몇 번 부딪히고 나서 정신을 잃었다. 아니, 서율의 안에서 살기 위해 정신을 놓아야겠다는 마음이 공포와 함께 밀려들었다. 반항하면 그녀를 들어 올린 이 괴물은 그녀를 삼켜버릴 것 같았다. 아픔도 느껴지지 않을 만큼, 시멘트 바닥이 차가웠다. 괴물. 어둠의 괴물 속에 삼켜진 서율은 그 후 한 참 뒤에 발견되었다. 행이었는지 학생들이 아니라 경비원에 의해서. 새벽 동틀 무렵 옮겨진 병원 응급실에서 수술 후, 해바라기 센터로 후송되었다. 성기와 항문에 생긴 열상은 바로 긴급 수술에 들어가서 다행히 장 손상은 없었지만, 그녀는 한동안 아무와도 만날 수 없었다. 지우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집에는 학교에서 숙식한다고 하고, 학교에는 급하게 휴학하고 어학연수를 간다고 둘러댔다.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이 많은 안정제와 항우울제를 복용하면서 하얀 천장을 바라보며 잠을 잤다. 얼마나 많은 시간이 지났는지 알 수 없을 만큼. 자신의 몸에 얼마나 많은 찰과상과 타박상이 생겼고, 또 어느 곳의 뼈가 부러졌는지 모른 채, 매일매일 그렇게 서율은 숨만 쉬고 있었다.


***

산부인과 협진을 받아야 한다고 주치의가 말했다. 임신 중이었고, 아이는 살아있었다고 했다. 그런 충격을 받았는데, 서율의 안에 있었다고 했다. 서율은 끔찍했다. 아무런 의욕도 모성애도 느껴지지 않았다. 애초에 나는 아이를 가졌으면 안 되었어, 그냥 집에서 나오기만 했으면 되었는데 왜 지우에게 기대려고 했을까. 이게 뭐야.. 이게. 베갯머리가 젖도록 며칠을 울다 지우에게 문자를 보냈다.


'몇 달 입원했었어. 걱정시켜서 미안해'

'어디야..? 아이는..?'

'소망 병원. 좀 와줘'


서율의 몸이 풍선처럼 부풀어 있었고, 임신 중독이 심했고, 아이는 인큐베이터에 들어갈 정도로만 주수를 채우면 제왕절개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지우의 어머니는 의료진에게 자초지종을 듣고 나서 서율을 벌레 보듯 했다. 더럽혀진 아이가 손자를 자연 분만하는 걸 참을 수 없다는 듯이. 서율은 말하고 싶었다. 나를 처음 가진 건 지우라고. 지우였다고. 지우가 없었다면 그녀는 그냥 자신의 계획대로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으로 혈혈단신 독립해서 해외로 진즉 떴을 거라고. 그녀가 집에서 자라며 겪어온 모든 일들은 서율로 하여금 가족에 대한 책임과 의무만 지웠으니까. 아이를 가지게 된 건 피임 같은 거 머릿속에도 없었던 댁 아드님 책임이라고. 외치고 싶었다. 하지만 목소리가 되어 나오지 않았다. 그녀가 제일 많이 다친 건 몸도 마음도 그랬지만, 사실 혀였다. 거의 절단되다시피 발견이 되었고, 봉합은 했지만 음식물도 먹지 못할 만큼 회복이 더딘 곳이었다.


병원 사람들이 혀를 끌끌 차는 가운데, 양수가 터지고, 또 수술을 받고, 회복이 되기 전에, 그 핏덩이를 안아보기 전에 지우의 가족들은 아이를 데리고 사라졌다. 어느 병원으로 갔는지, 산모인 내 동의도 없이, 어떻게 데리고 갔을까. 무지렁이처럼 서율은 생각이라는 걸 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몸이 얼마나 망가진 건지, 마음은 어떻게 되었는지, 아무런 생각을 할 수 없이 꽤 오랫동안을 병원에서 지냈다. 아이의 이름은 지율이라고 지었다고, 지우가 문자를 보내왔다. 찾지 말라고도 했다. 자기 호적에 올릴 테니, 너는 그냥 너 갈 길 가라면서 은행계좌 번호를 알려달라고 했다. 혼인신고도 하지 않았던 터라, 서율은 그들에게는 대리모에 지나지 않았던 것일까. 계좌에 생전 처음 보는 금액 삼천만 원이 찍혔다. 아르바이트로는 모을 수 없는 금액이었는데, 이 돈이면 해외 어디든 가서 일 년은, 아니 육 개월은 버티면서 살 수 있을 돈인데, 나에게 지난 몇 달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미처 깨닫지 못하는 서율은 그저 눈물만 흐를 뿐이었다.


그 눈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는 채로. 

그저 살아나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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