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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서율 Jun 26. 2022

파도 자국

잔인한 사실

거대한 파도 앞에 웅크리고 있던 모습이 보였다. 서율은 거의 매일 밤마다 꿈을 꾸는 자신이 싫었다. 어느 날은 깨어나서 베갯잇이 젖어있는 걸 보기도 하고, 어떤 날은 대상 없는 욕정이 일어 자신의 아래가 젖어있는 발견하기도 하면서 헛웃음을 쳤다. 그녀는 마치 행복하기를 포기한 사람처럼, 혹은 행복해질 자격이 없는 사람인양, 그렇게 자기 자신을 놓고 애써 괜찮은 척 포장하며 살아가고 있음에 다름 아니었다. 


얼마나 오랫동안 떠다니던 진공 속 어둠이었을까. 어떻게 그 속에서 숨은 쉬어졌을까. 암흑 속에서 괴물을 마주했어야 하는 그날로부터 그녀는 자신이 살아온 나날들이 잘 생각이 나지 않았다. 분명히 어떤 순간에는 웃었고, 어떤 순간에는 맛있게 밥을 먹었고, 어떤 순간에는 분노했고, 어떤 순간에는 이렇게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느낀 순간들도 있었다. 하지만 가만히 있는 시간에는 공허했다. 조금이라도 감정이 올라오면 그것들을 보지 않으려 애썼다. 사랑한다고 말했고 그 말에 책임지지 않은 사람에 대한 최고의 복수는, 최고로 행복해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행복의 정의는 그녀에게는 돈이었다. 다른 것이 존재함을 미처 배운 적이 없었다.


일곱 시 사십 오분. 잠에서 깨어 도보 십분 거리에 있는 회사로 갈 준비를 해야 한다. 여덟 시 반쯤 책상에 앉아 하루를 시작해야 하는 일과에 아침 오 분이 얼마나 중요한데. 예상치 않은 지우의 전화로 인해 이미 삼 분쯤 사라졌다. 바지런히 식빵 한 장을 토스터에 던져놓고 커피머신에 캡슐을 넣어 커피를 내리면서 화장실로 향해 세수와 양치, 화장을 동시에 진행한다. 손에 물을 묻히는 일을 한 번에 끝내고 나와 옷걸이에 열 벌 때쯤 나란히 걸린 전투복을 걸쳐 입고 – 회사에 가서 입는 옷은 이 주를 적당히 번갈아 입을 정도가 되면 충분하다 – 차장 위치에서 사람들이 손가락질 않을 정도의 브랜드 시계와 목걸이를 착용한다. 액세서리라기보다는 필요에 의해 착용하는 브랜드 구두와 가방, 개인용과 회사용 핸드폰 두 개, 역시 두 쌍의 이어 버드, 두 개의 충전기를 돌돌감아 클립으로 정돈해 가방에 넣은 다음 식빵과 커피를 흡입하고, 집 안의 스위치를 모두 내린 다음 운동화에 발을 구겨 넣고, 구두를 넣은 쇼핑백이 큰 가방 안에서 바스락 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회사로 향했다.


아침에 눈을 떠서 갈 곳이 있다는 건 나름 나쁘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서율은 그렇게 본능적으로 몸을 움직였다. 초고층 빌딩들이 모여있고 여전히 초고층 오피스텔 건물에서 튀어나온 그녀는 자신의 회색이 집에서 나와서 좀 더 어두운 곳으로 향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뒤에 누가 아는 사람이 따라올까, 행여나 큰 소리로 음악을 듣고 있는 내 어깨를 치면서 아는 척을 하지는 않을까, 그런 막연한 두려움을 느끼면서 ‘그럴 거면 운전을 해야 했잖아’라며 자책을 하면서도 도보 출퇴근을 멈출 수가 없다. 


'그날' 이후로 서율은 모든 상황에서 자신에게 통제권이 있는 삶만을 추구했다.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는 것이 숨쉬기 괴로울 만큼 깜깜했다. 돌발 상황이 많은 운전은 포기했다. 의전이 필요할 때는 회사에서 차와 기사를 붙여주었다. 해외 주거래처 영업 1부, 차장 박서율, 그녀는 영업 일선에 서서 해외 관련 업체에 회사 가 제공하는 서비스를 소개하고 관계의 물꼬를 트는 사냥꾼이었다. 회사에서 그녀의 별명은 ‘터미네이터’였다. 한 번 타깃을 정하면 반드시 성사시키는 전사, 그리고 회사에서 누가 험담하면 반드시 무너뜨리는 냉혈한. 뭐 그런 뜻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잠깐 커피를 마시면서 팀원이 하는 회의 전 브리핑을 듣는다. 그리고 서율은 그제야 오늘 자신의 옷매무새를 살펴본다. 마른 몸에 휘감긴 청색 스트라이프 바지 정장, 옅은 하늘색의 블라우스. 


-다행이다. 신뢰로운 색깔이네. 


8시 50분, 회사에서 두 번째 잔의 커피를 마시면서 서율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어제의 꿈. 여전히 그녀를 좇는 검은색 그림자. 기차역에서 쫓기듯 그녀는 달리고 있었다. 빨리 저 열차에 올라타야 따라오는 그림자가 나를 잡지 못할 것만 같았다. 열차에 올라타 보니 희미하게 보이는 역무원의 얼굴, 허여멀건 그 얼굴은 나와 닮아있었다. 그 아이는 무엇인가를 갈구하듯 처량한 눈동자로 나를 바라다본다.


-지우와 내 얼굴을 오묘하게 섞어놓았을 지율이. 지율이는 지금 몇 살쯤 되었나? 

나는 그 애에게 엄마의 자격이 없다. 아들이라는 그 생경한 이름. 어디가 어떻게 아픈 걸까? 

돈으로 보상할 수 있을까? 

만약 필요하다면 내가 무엇인가 해 줄 수 있을까? 


-박 차장, 지난달에 영업 1부에서 작년 한 해 매출 벌써 갱신했다며? 이제 3분기 시작인데 너무 앞서 나가는 거 아냐? 박 차장은 자식이 없으니 일만 하나?


강 부장은 시기와 질투를 드러내 놓고 하는 편이다. 씩 웃고 넘길 수 있다 이쯤이야. 한 밤중에 내가 뭘 할지도 모르면서 전화해서 지저분한 농담하는 고객들보다는 낫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가끔,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를 때가 많았다. 이럴 때 그녀 옆에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줄 사람이 한 명 있다면, 이런 삶 속에서 맥주 한잔하면서 일에 관한 이야기도 하고, 꿈에 관한 이야기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잘 모를 때, 묵묵히 내 손잡고 따라와, 같이 가자 이렇게 말해주는 사람을 그녀는 얼마나 희망했던가. 오찬 중에도 음식의 맛을 느끼지 못한 채로 그녀는 부던한 생각들을 했다. 


내가 부서지고 깨어진 이유는 바로 그 밤이 시작이었을까? 

아니면 지우를 사랑한다고 느낀 순간부터였을까? 

아니면 가족들로부터 사랑받기 위해서는 뭐든 잘 해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껴서였을까?


체기가 올라와 화장실로 부리나케 뛰었다. 회의 전에는 음식이 먹히지도 않고, 늘 출구 근처에 앉는 것이 편한 서율은 자주 속이 쓰려 화장실을 찾곤 했다. 그렇게 헛구역질을 하다 겨우 양치를 하고 나오는데, 뒤에서 누가 어깨를 톡톡 친다. 순간 놀라서 전신이 멈춘 그 순간, 


-차장님, 오전 회의 끝나셨어요? 회견 지금 출발하셔야 해요. 괜찮으세요?

-김 과장님, 알았으니까. 차 어디 있어요? 다음에는 내 몸에 손대지 말고 그냥 호명해요. 놀랐잖아요!


평소와 다르게 앙칼지게 말하는 서율의 톤에 김 과장은 내가 뭘 잘못했나 싶어 뜨끔했다. 다른 차장들에 비해 깔끔하게 개인적인 일까지는 부탁하지 않는 사람 아니던가. 오늘 나름 예민하시네, 조심해야겠다 싶었다. 


회견이 이어지고, 관련 서비스의 기술 관련 테크니컬 질문이 아니면 별로 말 수가 없는 기술팀 과장이 그녀를 재촉했다. 다른 생각에 빠져있던 서율은 그제야 질문을 한 기자의 명찰을 살핀다. 박준철, 한국 대 공대 클라우드 기반 기술 신문사. 동문이네. 근데 우리 학교에 저런 걸 연구하고 기사를 쓰는 신문사가 있었나? 

일인 신문사인가? 


서글서글한 인상의 그는 굳이 회사의 영업전략에 대해 캐묻는다. 서율은 사실 이런 질문이 귀찮고 쓸데없다고 생각했다. 영업은 타깃 전략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바다에 그물을 쳐놓고 걸리는 고기부터 낚아야 할 때도 있다고 생각해서였다. 


마음과는 상관없이 그녀는 예의 훈련된 달변으로 답한다. 그리고 또 지루한 질문들이 이어지고, 그렇게 시간이 가고, 밖에서 기다리던 운전기사에게서 문자가 왔다. 


-차장님, 언제까지 대기할까요?


시간을 보니 저녁 6시 반이다. 지우에게도 문자가 와 있었다. 지율이가 입원해 있다는 병원의 호수와 위치를 나타내는 문자. 하지만 그건 서율이 상상했던 그런 상황들의 결말이 아니었다. 소망병원 분원 정신과 병동. 소망병원은 지율이가 태어났던 곳이다. 


***


준철은 기술 기자회견에 관한 기사를 수정하고 있었다. 클라우드 기반 기술은 상용화 후에 성공 사례를 최대한 많이 홍보해야 자대의 공대생 모집에도 도움이 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자신이 속해있는 거의 1인 신문사라고 해도 될 공대 연구실은 준철의 소우주나 다름없었다. 대학교를 다니고, 군대를 다녀오고, 졸업하고도 오랜 시간 그 안에서 생활하다 보니, 서른 중반의 지금에도 그는 마치 아직도 자신이 학생인 것 마냥 느껴졌다. 그가 속한 공대와 문대는 거리도 관심사도 멀어 보였다. 


하얀 원피스를 입은 은빈 선배를 처음 본 건 영화 동아리 '브레송'의 야밤 상영회에서였다. 공대생인 준철은 늘 문과에 대한 동경 같은 게 있었다. 소설이나, 시, 영화의 내러티브를 좋아했다. 공감할 거리가 많은 휴먼 드라마를 보고 사람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게 좋았다. 자기가 느끼는 감정에 공감해 주는 사람들을 만나는 게 좋았다. 형이랑 아버지만 있는 집에서 일찍 돌아가신 엄마를 그리워하면서, 자신을 무한대로 지지해 주는 사람을 늘 만나고 싶었다. 그런 사람은 세상에 엄마 말고는 없다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이야기를 나긋나긋한 모습으로 들어주는 은빈 선배를 보고 있자면, 실은 그 어떤 자신의 이야기도 지지받을 것만 같아서 행복하고 좋았다. 아주 깊은 바닷속에서 따뜻하게 숨을 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준철은 집에 돈이 없어 암 관련 수술을 포기해야 했던,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을 생각하면 치가 떨렸다. 한없이 어리고 무능해 보였던 나, 담배만 피우던 아버지와 형의 모습이, 온 벽에 스며든 담배 연기가, 떠오르면 지금도 치가 떨려왔다. 


일주일에 두 번, 준철은 일과 후에 호스피스 병동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의 말동무를 해 주는 봉사활동을 했다. 인생을 마무리하는 누군가에게 도움을 드리려 시작한 일이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죽음이라는 것을 막연히 두려워하기만 했던 이전의 자신과, 어머니의 기억들이 아스라이 펼쳐지며, 위로를 받는 기분이 오히려 들었다. 이야기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이해받으며 치유되는 힘을 준철은 믿었다. 그것만이 그를 지탱해 주는 것인지도 몰랐다. 


은빈과는 학교를 졸업한 후에도 꾸준히 연락을 했다. 술을 마시고 난 밤에 그녀에게 전화를 해 그녀 집에 찾아간 적도 있었다. 이상하게도 은빈 선배는 나를 많이 좋아해 주지는 않는 것 같아도, 관계는 허락했다. 그녀를 뒤에서 안고 있으면 준철은 한 없이 포근히 바닷속에서 숨을 쉬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은빈의 눈은 공허히 침대 옆에 있는 사진첩에 향해 있었다. 약간은 머리가 장발은 한 남자의 사진이었고, 그는 카메라 뷰파인더를 보며 미간을 찌푸리는 것처럼 보였다. 준철의 눈에 적어도 피사체는 사진작가를 별로 좋아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그럴 때일수록 준철은 한없이 은빈의 몸속으로 파고들었다. 그녀의 모든 것을 갖고 싶었다. 그녀는 쉽게 몸을 내어주었지만, 마음은 의뭉스럽기 짝이 없었다. 영화를 보고, 공연을 보고, 밥을 먹고, 준철이 원하면, 은빈은 그를 받아들였지만, 그가 비참해지는 순간들은 그랬다. 은빈은 자신에게 바라는 것이 없었다. 준철은 그녀에게 자신만이 유일한 파트너가 아님을 알고 있었다. 나이에 비해 젊고 아름다운 그녀가 원하는 삶이 어떤 것인지, 준철은 상상이 되지 않았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미래 – 그것이 자신과 이든 그렇지 않든 – 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상상해 볼 법도 한데 은빈의 관심사는 늘 먼 곳을 보고 있었다. 그녀는 미래를 기대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도대체 왜..?라고 생각하는 걸 준철은 이제 멈춰야 하나 싶었다. 


췌장암 말기에야 자신의 상태를 알게 되셨다는 203호 할머니의 이야기 동무를 해 드리고 나오는 길에, 낯익은 청색 스트라이프 정장을 입은 여성과, 좋은 인상이 아니었던 사람의 미간을 찌푸린 한 남자의 얼굴이 스쳤다. 오늘 낮에 있었던 기자회견에서 본 수영 기업의 영업 차장이다. 저 남자는, 만난 적은 없지만 은빈 선배의 침대 앞에 있던 사진 속 그 남자다. 준철은 잠시 자신의 다리가 휘청하는 걸 느껴 벽에 기대어 설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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