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발적 시네필인가

내 최초들에 관한 기억

by 장서율

기억을 더듬어 올라가 보면 내가 최초로 영화관에서 봤던 영화를 떠올릴 수 있다. 1984년 작 '아마데우스'였다. 당시 사촌 언니네 집은 굉장히 잘 살았다. 성악을 하던 언니가 보고 싶다던 오페라와 모차르트의 인생이 얽힌 영화를 보러 따러 나섰었다. 롯데월드의 경양식 집에서 밥도 먹고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 나왔던 경양식 집처럼, 햄버그 스테이크를 시키면 밥 드릴까요 빵 드릴까요 웨이터가 물어보던 그런 집이었다. 밥 먹고 나오는 길에 탤런트 노주현 씨를 실제로 봤다. 그 당시에 턱시도를 입고 계셨는데 멋졌다.) 영화 속의 웅장함에 취해서 마냥 즐겁던 어느 날의 내 모습. 아마도 국민학교 생활 내내 통틀어 처음 영화관에서 본 영화가 아니었나 싶다. (그 시절엔 만화책과 책을 읽는 것이 좋았고, TV에서 하던 영화만 봐도 기뻤던 어린 시절이었기에.)


세월이 흘러 중학생이 되고 얼마 되지 않아, 나는 어린 시절에는 특권이라고 할 수 있을 아주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되기에 이른다. 바로 주거 환경의 변화다. 주재원인 아버지를 따라 동남아로 이주하게 된 거다. 말이 동남아지 영국 식민지 지배하에 있던 마천루가 아름다운 그 나라는, 어린 나에게는 신천지였다. 영어를 잘할 줄 몰라서, 늘 주눅이 들어 있었는데, 한 번은 이런 경험을 했다. 바쁜 아버지를 뒤로 하고 셋이서 영화관에 가 아놀드 슈왈츠제네거가 나오는 '트루 라이즈'(1994)를 보는 중이었다. 당시 우리 세 명은 시장이다 슈퍼다 백화점이다, 함께 꼭 붙어 다니며 서로의 위화감을 완화해 주고 있는 중이었다. 백화점 지하에서 먹은 일본 우동 한 그릇에 멋모르고 단무지를 시켰다가 5000원쯤 더 내고 화를 내던 엄마의 모습이 선할 만큼. 그런 우리에게 외국 영화는 사치이고 도전이었다. 아마 그날도 주말이었을 것이다. 영화의 어떤 장면에서 우리 앞에 앉은 두 서양인 남자들이 큰 소리로 웃었다. 지금 생각해 보건대 자기들끼리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다가 웃었을 터인데, 나는 그걸 듣고 따라 웃었다. 영어권에서 소외되고 뒤쳐지기 싫어서, 숙제가 뭔지 제대로 알아듣지도 못하면서 국제 학교에 다니고, 교과서를 달달 외어 시험을 보던 독한 나였다. 그날도 뒤쳐지기 싫었나 보다. 엄마랑 동생이 내게 물었다. '이 장면에서 뭐랬는데? 왜 웃긴 거야? 나도 같이 웃자' 순간 얼굴이 벌게졌다.


영어로 말문이 틔인건 민중사 영한사전을 달달 외우고 학교 숙제를 열심히 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이주 후 몇 달 지나지 않아 집으로 생수 배달을 시킨 엄마와 배달 아저씨와의 오해를 중재하다가 방언처럼 터진 '화' 때문이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글쓰기를 좋아했던 나는, 영어라는 장벽 앞에서 친구들과의 수다는 물론, 독서나 글쓰기가 막혀버린 것에 크게 분노했던 것 같다. 하고 싶은 말 못 하고 어버버 대던 것이, 따지려는 마음이 생기니 나도 놀랍게 청산유수처럼 흘러나왔다. 그때부터였을 거다. 학교에서 숙제로 내주는 영어 에세이 쓰기가 아주 즐거웠던 것이. 어린아이는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빠르게 성장했다. 언어를 듣게 되자 노래가 들렸고, 드라마나 영화가 자연히 눈에 들어왔다. 당시 유행하던 MTV (지구촌 영상음악을 보신 세대들은 MTV를 잘 아실 것이다)에서는 영화 OST가 자주 흘러나왔다. 그걸 보고 부모님 몰래 비디오 가게 가서 빌려본 테이프도 많다. '베티 블루 37.2' (1996) , '쇼걸' (1995) 같은 열몇 살 소녀가 보면 안 되는 영화도 있었고, '프리 윌리' (1994)처럼 감동적인 PG-13 영화도 있었다. 그러다가 본격적으로 영화관에 다니기 시작한 게 아마, '업 클로즈 앤 퍼스널' (1996) 때부터였을 거다. 셀린 디온의 영화 주제가랑 뮤직 비디오가 너무 좋아서, 워낙 미쉘 파이퍼도 좋아했던 지라, 어느 날 학교 끝나고 숙제를 빨리 끝내 놓고 혼자 버스 타고 시내 영화관으로 향한다. 그날도 어떤 영국인 아저씨가 나한테 와서 영화 혼자 보러 왔냐며 이런저런 말을 걸었다. 그냥 무시하고 영화를 보다가 혼자 울었다. 그즈음 말랑해진 사춘기 소녀에게는 자주 있는 일이었다. 사랑 이야기, 이별 이야기, 그런 매체들에 많이 영향받는 걸 보니 첫사랑이 진행 중이었었나 보다. 그 영화를 보고 와서 나는 주제가인 ' Because you loved me' 가사를 타이프해, 내 방 거울에 붙여두었다. 그리고는 가만히 거울을 들여다 보다가, 치렁치렁 거주장 스러운 내 머리카락을 가위로 잘라버렸다. 그렇게 시원했던 적이 없다. 아버지와 모임에 다녀오신 엄마는 그런 나를 가만히 보시다가 내가 미처 자르지 못한 뒷머리를 다듬어 주셨고, 난 중학생 단발머리 소녀가 되었다.


생각해 보면, 내게는 환경이 끊임없이 주는 스트레스가 있었다. 공부 욕심이 있어서 중간에 한 번 전학한 국제학교는 나라에서 쳐주는 명문으로, 재벌 자제들이 다닌다는 그런 데었다. 통학 버스를 타고 다녔으니까 딱히 비교할 건 없었는데, 친구 관계는 참 힘들었다. 어제는 밝게 인사하고 같이 밥 먹던 친구들이, 오늘은 어떤 이유로 나를 피하면, 양호실에 가서 조용히 드러누웠다. 선생님이 왜 그러냐고 물어봐도 나는 묵묵부답이었다. 부모님을 모시고 와도 나는 그냥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기에. 문학 시간과 시 쓰는 숙제를 제일 좋아했고, 수학과 물리, 그리고 체육 시간이 제일 싫었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부모님 필체를 흉내 내어 가정 통신문을 제출하고 학교를 조퇴해서는 영화관에 갔다. 아마 매달 두 번째 화요일 즈음, 학생 할인이 있는 날만 골라서 갔을 거다. 가만히 사람 없는 영화관에 앉아서, '브로큰 애로우' (1996) 나 '위험한 아이들' (Dangerous minds; 1995)같은 할리우드 영화를 보며 엄마가 싸주신 도시락을 먹었다. 영화관의 어두운 조명과 영사기 돌아가는 소리, 현실이 아닌 영화 속 허구가 내 몸을 감싸는 것이 참 따스했다. 나는 분명 또래들과 가족들 사이에서 잘 살고 있는데도, 그렇게 먼 현실로 도망가는 걸 동경했던 건, 현실 속의 무언가가 균형이 맞지 않게 부서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가끔 나랑 비슷한 처지의 또래들은 학교 근처에서 담배나 가벼운 마약 (마리화나) 같은 걸 했다. 나는 그럴 자신까지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그런 친구들과 어울리지 않았던 건 아니다. 우리 모두 해외에서의 생경함과 헛헛함을 어떻게 이겨내야 할지 모르고, 어린 디아스포라의 삶을 살았던 건 아닐는지. 부모님도 힘드셨겠지만, 사춘기 우리들도 역시 그랬다. 물론 세월이 흘러 장성한 지금은 다들 자신의 위치에서 잘 살고 있지만, 우리에게는 평범한 대한민국의 또래가 가진 것들 중에 얻은 것과 잃은 것이 극명했기에. 그렇게 나의 삶을 버티던 나도, 영화 '샤인' (1997)과 '크래쉬' (1997)가 개봉했을 무렵 한국으로 귀국했다. 또 다른 극기훈련 같은 적응이 시작되었다. 인생의 굵직한 사건들을 당시 개봉한 영화로 기억하는 나는, 어릴 때부터 시네필이었을까? 그 후로도 나는 얼마나 많은 영화들을 혼자서 가슴 떨면서 봤을까. 아니, 현실이 복잡할 때마다 영화관으로 도망을 쳤을까? 한국 집 어딘가 뒤져보면 그 시절부터 모았던 내 영화 티켓 앨범이 아직도 있다. 근 20여 년치의 기록을 지금도 이고 사는 나는 달팽이처럼 오늘도 한걸음 한걸음 현실과 이상 사이를 오고 간다. 현실에게 경험하지 못했을 간접 경험을 했고, 또 내게 무엇이 결핍되어 있는지를 깨닫게 해 준 소중한 영화관. 새삼 드는 생각이다. 한국에 돌아와서 다큐멘터리 '영매'(2003)를 보지 않았던들 나는 나의 가장 큰 결핍을 깨달을 수 있었을까?


영화에 대한 갈증이 영화를 만든다고 변영주 감독이 '방구석 1열'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말했는데, 나는 그 언저리에서 영화와 관련된 내 기억들을 열심히 기록하고 있는 중이다. 이런 노력들이 이어지다 보면 나 자신을 더 깊게 발견하고, 나의 경험들을 나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오늘도 부지런히 적는다. 공자님께서 살면서 가장 얻기 어려운 깨달음은 경험을 통해서라고 하셨다는데, 직접 겪으면서 느끼는 것도 좋지만, 영화에서 얻어지는 교훈도 있으니까. 하지만 선택권이 있다면 당연히 영화 속이 아닌 현실에서 살고 싶다. 현실이 아프고 힘들어도 결국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여기이니까. 이왕이면 두 발 굳건히 내리고 건강하고 행복하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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