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나를 채찍질하지 않았다. 몸이 고장 날 때까지 멈춰 서지 않은 것은 나다. 지난 5년을 돌아봤을 때 나의 사회적 성취가 높아졌을수록 더욱더 자주 번아웃의 주기가 찾아왔다. 그 전의 5년, 또 전의 5년, 이런 식으로 기억이 나는 가장 어린 순간까지 돌아가서 내 삶의 패턴을 돌아보면, 숨 쉬지 않고 달려온 기억들이 가득하다. 다만, 지금에 와서 많이 안타까운 건, 그렇게 열심히 살았다고 자위함에도 내 인생길은 커다란 보자기 위에 여러 모양을 짜깁기하는 형식을 반복해왔기에, 노력 대비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이다. 최근에서야 진짜 나다움을 찾으려고 하고 선택과 집중을 해 보려고 하고 있다. 'Connecting dots'는 곧 개인의 가치 찾기라는 자기 계발서의 이야기처럼 말이다. 나는 다음의 정의로 내 삶에 쭉 이어지는/이어지지 않는 활동을 구분할 수 있었다.
남이 시키지 않아도 내가 기꺼이 오랫동안 하고 있는 일과, 고용주나 연장자가 시켜야 겨우 하는 일의 차이. 혹은 몇 주 혹은 몇 달 하고 끝나는 일 (취미, 네트워킹) 이 아니라 꾸준히 몇 년, 혹은 몇십 년 지속해 온 내 삶의 버릇.
예를 들어 약속 없는 저녁 아프지 않으면 굳이 요가매트에 얼굴을 내미는 것도 내 안에서 여유를 찾기 위해 꼭 필요한 나만의 치료법이다. 내가 ' create space (=空)'라고 명명하는 이 행위는, 채운만큼 비워내야 내가 겨우 원래의 상태로 돌아와 숨 쉴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고객들과 고용주님 거기에 중요한 타인들이 비수가 되는 줄 모르고 내게 던진 아픈 말들이 소화가 되어야만 겨우 잠이 오는 건 예민한 내게는 자연스러운 생리현상이었다. 내가 조금만 상대에게 덜 공감하고 덜 동화되는 성격이었다면, 타인의 모든 걸 이해하려고만 하지 않고, tit for tat (쉽게 말해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같은 전략을 써서 세련되게 풀어내고 마무리했을 텐데. 그래서 오늘도 요가는 계속된다. 또 지난 5년 동안 마감일 어기지 않고, 꾸준히 써서 냈던 지역 잡지의 영화 칼럼도 그런 맥락이다. 보수가 있는 것도 아니고, 일도 바쁜데 그런 걸 왜 하냐고 최근 누가 물었을 때 나도 모르게 했던 대답이 모든 걸 정의해 주었다.
'이걸 쓸 때 내가 가장 살아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인가 지난 5년 간 마감일 즈음 급히 써 내려간 원고들을 다시 읽어보니 그 안에서 너무 신나 춤을 추듯 쉴 틈 없이 문장들을 뱉어나가는 내가 보여서, 내가 이렇게 수다쟁이였나 싶어 피식 웃게 된다. 영화 한 편 속 불특정 다수의 인생과 사건들이 허구처럼 눈 앞에 펼쳐지기에 어쩔 수 없이 내 것도 반추해가며 보는 편인데, 많은 깨달음과 울림을 주는 영화들일 수록 나는 그 감동에 비례하는 열 배 스무 배의 이야기를 쏟아내고 싶어 하지 않았던가. 지난 5년 내가 꼭지를 선택해 글을 써낸 영화 이야기를 보면서 지난 내 마음 상태를 깨닫는다. 아픔과 고난을 딛고 성장한 것에는 스스로 어깨를 안아주며 칭찬해 주고 싶다. 하지만 시간을 더 값지게 쓰고 싶었다면, 내 진짜 밑바닥으로 가면 어떤 막다른 어둠의 골목들이 있는지를 빨리 파악해서, 그 미로에서 길을 찾아 나가기 위해 노력했어야 했다. 선택과 집중을 했어야 했다. 나의 열정도 노력도 한계치가 있는데, 겉으로는 괜찮은 척 남들 하려는 걸 다 따라 하며 살려고 하니 진짜 내 모습이 사라져 갔던 건 당연한 결과다. 그런 빈 껍데기 같은 삶은, 버스럭버스럭 빈 깡통 같은 소리를 냈었다.
'난 어디에서 나를 잃었을까? '
브런치에서 지난 사랑의 추억에 집중하는 매거진 '아일린의 영화 이야기 (외로워도괜찮지만사랑은목마른그대에게) '를 쓰기 시작했는데, 아마 이게 지금 내 인생에 가장 시급한 과제이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번아웃이 왔을 때 침잠하는 바닷속에서 허우적 대는 나를 다섯 호흡만 참고 바라보면 알 수 있다. 내가 지금 하려는 행위는 지난 인연들에게 올바른 'closure (종결)'을 주고 'mourning (애도)'를 하려는 내 마음 챙김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쉼 없이 무모하고 용감하게 이런 절차를 건너뛰고 살았기에 삶의 동반자를 그렇게 찾아 헤맸음에도 실패했구나 싶어서, 마음이 많이 단단해진 지금,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 싶었다. 호젓한 가을바람이 선선하게 불 때 그냥 좀 잠시 멈춰 서서 여유를 가지고 하늘을 바라보기도 하면서, 사랑에 있어서만은 노년기의 '자아통합' 작업을 미리 하고 싶다. 내 인생에 더 이상의 후회를 만들고 싶지 않아서 그렇다.
그리고 이 작업을 어느 정도 하고 나면, 나의 10-30대를 관통하는 아르바이트와 찬란한 덕질의 역사에 대해서도 쓰고 싶다. 박보검과 박소담이 출연하는 드라마 '청춘 기록'에 이런 대사가 있었다. '덕질과 주사(술버릇)가 같이 있는 여자는 진짜 사랑을 해 본 적 없다'. 아마 생활에도 마음에도 여유가 없었겠지. 덕질은 안전한 울타리 속 사랑이다. 상처 받을 일 없는 짝사랑이다. 내가 동경하는 대상에게 인정받고 싶어서 나의 우상을 그렇게도 열심히 쫓아다녔던 내 젊은 시절은, 그저 엄마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었다는 걸. 나는 이제는 안다. 나는 어렸을 적 내 엄마를 참 좋아했는데, 유일하게 내 등에 채찍질하며 한 단계 더 올라서야 한다고 늘 채근했던 그녀가 사실 나는 너무 힘들었다. 하지만 그게 내 엄마의 양육법이자 사랑법이라는 걸 알고, 이해하려고만 했었기에 결국 못 버티고 튕겨져 나온 거다. 힘들면 힘들다, 하기 싫다, 고 어려서 할 수 있을 때 떼라도 써볼 것을 그랬다. 결국 후회다.
해서 오늘 이야기하고 싶은 영화는 리버 피닉스의 'My own private Idaho (1991)'이다. 엄마의 흔적을 찾아서 세계를 여행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세상이 녹록지 않고, 그를 배신하는 사랑도 힘들지만, 그 착한 청년 마이크의 마음속에는 엄마에 대한 그리움과 자신의 뿌리를 찾아가려는 목표가 있어, 힘든 삶을 버틸 수 있다. 부랑자들과 상처 받은 사람들 속에서 진정 자신을 온전히 내어주는 마이크의 직업은 '남창'이지만, 영화 속에서는 또 다른 의미의 '성인(saint)' 같다. '나는 길의 전문가이고, 세상의 모든 길은 이어져 있다'며 걷고 또 걷는 마이크가 지병인 기면증을 일으키며 길에 쓰러졌을 때, 한 대의 차가 잠시 멈춰 서서 그를 바라보더니, 이윽고 그의 유일한 무기이자 자산이라고도 할 수 있을 부츠를 벗겨 유유히 달아난다. 어린 나는 구스 반 샌트 감독에게 외치고 싶었다. 포스터에 'wherever, whenver, have a nice day'라고 쓰시면서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냐고. 아무 생각 없이 쭉 이어진 길을 그저 걷고 또 걷기만 하면, 원하는 곳에 갈 수 있다고 어느 절대자가 알려준다면, 기꺼이 그렇게 할 텐데. 자기 판단 없이는 어느 길로 들어서야 할지 모르고, 어떤 함정이 도사리고 있는지 알 수 없기에, 함께 방황하는 청춘이 있는 '아이다호.' 끝없이 자기의 뿌리를 찾아가려는 마이크의 노력이 어린 내 마음에도 반향을 일으켰나 보다 그 후 30년이 지났어도 여전히 나의 최애 영화다. 번아웃이 계속되기 전에 나도 내 '아이다호'에 다다라 정착하고 싶다.
이 영화 포스터는 1996년 영국 여행에서 발견, 홍콩의 내 방을 지키다가, 1997년 서울 교보문고에서 표구한 이후 지금껏 내 방 벽을 지키는 내 영화 굿즈 보물 '1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