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로 대학시절 한 달 동안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떠났을 때의 일이다. 여행사에서 이태리의 숙박시설과 제일 가까운 지하철역 이름을 잘못 알려준 바람에, 나와 내 친구는 저녁 무렵 홍등가 초입에 도착해서 아연실색해 있었다. 금발머리의 미녀가 우리에게 다가와 신기하게도 일본어로 말을 걸었다. (다행인 건 친구도 나도 일어 전공자였다는 사실이지만! 하늘이 도우셨다.) 그녀에게서 차로도 30분 이상 떨어진 곳에 호텔이 있다는 사실을 듣고 주저앉고 싶었던 찰나, 사람 좋아 보이는 아저씨가 재규어의 시동을 걸면서 우리에게 말을 걸었다. 그쪽이라면 가는 길이니 호텔까지 태워주겠다고 말이다. 나와 내 친구는 '설마 남자 혼자 여자 둘을 어떻게 하겠어' 하며 그 차에 지친 심신을 욱여넣었다. 그 순간 아저씨는 우리에게 이태리 억양이 섞인 영어로 호통을 치시기 시작했다. '이태리가 어떤 나라인데 처음 본 남자 말을 믿느냐, 내가 너희만 한 딸이 있는 이혼남이라서 다행이지 다음부터는 어떤 남자 말도 믿지 마라' 시는 거였다. 그때부터 긴장감에 휩싸인 우리는 꽁꽁 얼어서 내리는 순간까지도 고맙다는 인사는 연신 하면서도, 그분의 성함이나 이메일 주소 같은 건 여쭤볼 심적 여유가 없었다. 지금 생각해도 아찔했던 그 순간, 이름 모를 그분의 친절로 우리는 마음 편히 호텔에 머리를 누이고 여독을 풀 수 있었다. 오늘 밤 내 몸 하나 누일 곳 없다는 위기감, 20대에 여행을 떠나 비 오는 처마 밑에서 기꺼이 밤을 새운 적은 있어도, 타의로 그런 일을 겪게 된다면 한 시간이나 버틸 수 있을까. 그때의 열정도 체력도 이제는 많이 소진되고 없다. 하지만 열 시간을 걷고도 짱짱했던 여행의 추억은 지금의 나를 기껍게 웃으며 버티게 해 준다. 사진을 업로드하고 싶은데 여행했을 때만 해도 다 필름 카메라라, 파일이 없다.
**나의 이야기 1, 영화 이야기 1**
어릴 때의 나는 가만히 틀어박혀 책 읽는, '소공녀' 류의 이야기를 많이 좋아했던 그런 아이였다고 한다. 열 살 이후엔 소설가를 꿈꾸며 자라면서는,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을 읽고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는 내 공간과 일정한 수입을 꿈꿨다. 지금은 평생 내가 소유할 수 있는 집을 가질 수 있을 만큼 돈을 벌려면 얼마나 더 일해야 할까 하는 생각에 한숨 쉬다가도, 매달 월세를 꼬박꼬박 낼 수 있음에 감사한다. ‘집’이라는 공간을 매개로 과거 한 시절의 공동체였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주인공 ‘미소’의 시선으로 담아내는 이 따뜻한 영화의 한글 제목은 '소공녀'이지만, 영어 제목은 ‘Microhabitat’ (미소의 서식 환경, 여기서의 한자 ‘미소’ 염화시중 속 그 미소가 아니라 '미생물'이라는 뜻의 동음이의어)이다. 지난 10년을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해외에서 거주했던 나는 늘 새로운 한국 영화에 목말라 있었다. 2018년 한창 삶이 힘들었을 때, 충동적으로 멀리 스키를 타러 날아간 뉴질랜드 여행에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이 영화를 보게 되었다. 아무런 사전 지식 없이, 영화 '마담 뺑덕'에서 강렬한 인상으로 남은 배우 이솜의 연기를 보고 싶어서 영화를 정해 틀었다. 처음에는 황당한 행동을 하는 주인공의 이야기에 다소 지루해하다가, 어느 순간 파안이 번지고, 찔끔 눈물도 나고, 세상살이가 녹록지 않다는 걸 보여주면서도 어떻게 저렇게 따뜻하게 ‘미소’를 그려낼 수 있을까 감탄도 했다.
나의 이야기, 혹은 영화 이야기. 특이한 취향의 소녀, '미소'
영화 속 미소는 대학교 때 밴드의 일원이었고, 부모님이 안 계시고, 월세방에 산다. 그녀가 현재 하는 일은 가사도우미이고, 그녀의 취미는 위스키 바에서 마시는 잔술과 담배이다. 위스키 좀 마셔본 분들이시면, 그 한 잔의 향기로움이 하루의 스트레스를 날릴 수 있다는 걸 느끼실 수 있으실 거다. 그녀는 머리색이 하얗게 세는 병을 앓고 있어서 늘 약을 먹어야 하고, 월세를 내야 하고, 밥 값 외에 자신의 취향인 위스키와 담뱃값을 벌어야 한다. 그런 그녀에게는 사랑하는 남자 친구이자 웹툰 지망생인 ‘한솔’ 이 있다. 이게 그녀 세상의 전부이다. 어느 날 미소는, 오르기만 하는 월세와 자신의 취미 사이에서 방황하다, 결국은 ‘집’이라는 '굴레'를 포기한다. 보통 사람에게 집은 안식이지만, 영화 속에서 이미 이때 그녀의 집은 이미 바퀴벌레가 지나다니는 허술하고 낡은 단칸방에 지나지 않았다. 호기롭게 짐가방을 들고 거리로 나선 그녀는 함께 밴드 생활을 했던 친구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되뇌며 찾아 나선다. 미소가 친구들을 하나하나 방문하면서, 그녀의 변하지 않은 천진난만함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어딘가 마모된 친구들의 모습과 대조되면서, 나는 많은 생각에 잠겼다.
내가 나임을 기쁘게 해 주는 순간, 미소와 위스키 한 잔.
**나의 이야기 2**
내가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주변 지인들에게 듣는 건, 굳이 시대를 거스르는 나의 아집의 결과일까. 나를 지키기 위함일까. 혼자 오래 있다 보면, 보통은 옆에 있는 사람과 타협 같은 연애도 하게 되지 않던가. 귀국하며 이 영화를 봤던 뉴질랜드 여행길에 올랐을 때, 우리 그룹은 신기하게도 모두 한 학교 동문으로, 남녀 비율 똑같이 3명씩 5박 6일을 붙어있었다. 매일 저녁 당번을 정해 장을 봐서 요리를 하고, 밤새 엄청난 양의 술을 마시고 나서는 자고 일어나 아침나절 해장을 하고 샌드위치를 만들어 각자 취향에 맞는 스키며 보드를 타러 나갔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웬걸, 그 안에서 커플은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별한 지 얼마 안 돼서 급하게 누군가를 맘에 들이지 않아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기억나는 건 스키 대신 하이킹을 간 날 오후 눈 덮인 산에 올라가, 헤어진 그 사람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었던 말들을 소리쳤던 것. 옆 봉우리까지 올라갔던 남자들이 깜짝 놀라 다 돌아보며 그 대상이 자기가 아닌 것에 안도했다고 지금도 얘기할 만큼, 그때 내 입에서 '십장생'이 막 쏟아져 나왔다고 한다. 나는 그 순간이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맥주 거품처럼 차올랐던 내 울분이 한 겹 걷혔다는 시원함은 지금도 가지고 있다. 그때 내가 무리해서 그 여행을 떠나지 않았다면, 느끼지 못했을 감정과 맺지 않았을 그와의 인연. 그때 그냥 내 이별의 상처를 덮고 또 다른 그를 만나 봤었다면, 아직 서로 호감을 가졌던 그 사람과 잘 되었을 수도 있었을 텐데. 그 후 2년을 곁에서 그 사람의 진면목을 보고 난 다음에는 그를 좋아했었던 내 마음도 꺼진 모닥불처럼 수그러들었달까. 그는 내게 이런 말을 남겼다.
'너는 사람 좋아하다가도 너랑 안 맞는다고 생각되면 그 마음도 정리해버리는 애잖아' 심장이 쿵 하고 떨어졌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렇게 대답할 걸 그랬다.
'저기요, 저는 저의 가치관과 맞는 사람과 연애하고 싶거든요. 모든 여자가 당신을 좋아할 건 아니거든요'.
얼마 전 내 어시가 아직도 솔로인 나한테 말했다. 진심을 담아, 'Good things must wait'라고. 믿고 싶다 정말.
눈 쌓인 그 산에서 내 화를 풀어내었다. 찬 눈이어서 다행이었다.
**영화 이야기 2**
영화 속 미소는 마치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내어주고 공유하는 성녀의 모습과도 닮아 있다. 열을 가진 사람이 하나를 내어주는 것과, 하나를 가진 사람이 그 하나를 타인과 나누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일 것이다. 미소는 당연히 자신이 소유한 모든 것을 그 시절 친구들과 나누어왔지만, 지금 미소보다 더 나은 삶을 사는 듯 보이는 친구들은 하룻밤 숙소를 간절히 청하는 그녀의 소원을 거절하거나, 혹은 어떤 대가를 바라고 호의를 베풀거나, 아무것도 해 줄 수 없을 만큼 지쳐있거나, 과거의 친절한 모습을 모두 거둔 채 다른 삶을 살고 있다. 그럼에도 미소는 시부모님과 살며 고시생 남편 뒷바라지에 지친 친구에게 손을 내밀어 주고 함께 울어주고, 이혼하고 모든 게 엉망인 집에서 사는 친구에게는 집 밥을 해주며 청소를 자청한다. 상황이 여유로운 친구 집에서 조금 오래 머물다가. 종내에 ‘인생 그렇게 살지 말고 보증금 줄 테니 나가라’는 친구에게는 ‘그 돈 필요 없다’ 고 거절하면서도, 그런 친구들의 집을 나설 때마다 한 장씩, 소중히 간직했던 그들의 사진에 따뜻한 편지를 곁들이는 걸 잊지 않는 그녀. 요즘 세상에 과하다 싶을 정도로 무른 그녀의 모습이 안타깝다가도, 그저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이 남들과 다를 뿐,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사는 것이 뭐가 나쁠까 하며 나는 점점 미소에게 동화되었다. 타인에게 자신의 친절함을 베풀 수만 있다면, 미소는 마음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부자일 거야,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그녀는 자신의 처지와 상관없이 자신이 나누고 싶은 것을 타인과 나눈다. 어려운 형편에 계란 한 판 나눔, 자신이 임신한 줄도 모르던 윤락가 여성에게 베푸는 삼계탕 한 그릇, 그녀는 꼭 필요한 집이 없지만, 자신의 표방하는 삶의 가치 (무형의 나눔)나 여유(개인의 취향, 즉 담배, 위스키, 그리고 남자 친구)를 잃지 않은 것이다. 영화 후반부에 미소가 극적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자신만의 방법'을 을 완벽히 터득하는 데는 ‘한솔’과의 이별이 있다. 한솔은 미소를 행복하게, 그리고 평범하게 만들어 주고 싶은 마음에 웹툰 작가라는 자신의 꿈을 포기하고 해외 파견근무를 신청해 떠난다. ‘그저 지금 이렇게’ 너만 있으면 된다고 말하는 미소와 ‘미래를 꿈꾸는’ 한솔의 마지막 키스는 서로가 서로를 딛고 일어서 더 큰 세상으로 가려는 청춘들이 애달팠다.
드라마 '멜로가 체질'에서의 안재홍 배우와는 다른 풋풋함이 있는 '한솔'의 모습
시간이 흘러 미소가 방문했던 친구들이 한자리에서 재회하여, 뜻밖에 그녀의 안부를 서로에게 묻게 된다. 미소의 일거수일투족을 기억하는 그들의 표정은 온화하다. 세상 끝 벼랑에서 만난 따뜻한 봄바람 같은 그녀. 미생물처럼 유약하고 작지만, 그렇게 공기 중에 파고들어 사람들에게 미소를 심어준 그녀. 영화에서 미소가 전달하는 편안함과 따뜻함에, 살다가 혹여 이런 '조건 없는 나눔'을 자신도 몰래 실천하시는 분들을 만나게 되면 감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과 부대껴서 살면 살수록 원래의 내 모습에 대한 확신은 없어지고, 타성에 젖는 기분이 든다. 남들과 다른 것은 틀린 것이 아니고, 나쁜 것도 아니라는 걸 머리로는 알지만 어린 시절 극심한 주입식 교육을 받아온 나에게는 그것은 하나의 명제로밖에 느껴지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러나 이런 내게도 미소처럼 포기할 수 없는 취미들과 나만의 세상이 있다. 그것들을 향유하기 위해 열심히 일도 한다. 그리고 다행히도, 아집과 잣대로 세상을 바라보는 나에게 더 트인 사고방식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 또는 있는 그대로의 나라도 괜찮다, 해 주는 분들이 주변에 계셔서 나는 참 행복하다. 이제는 나의 틀을 조금씩 깨면서 전진하되, 가장 나다운 것이 가장 올바르고 행복한 가치라는 걸 잊지 않으려고 한다. 그렇게 살다 보면, 진짜 내게 맞는 사랑도 다시 만나게 될 거라 믿으면서.
아닌가? 사람과 맞춰가야 진짜 사랑을 할 수 있는 건가? 아직도 헷갈린다.
닭이 먼저일까 달걀이 먼저일까. 나는 가치관이 너무 다르면 사랑의 감정이 있어도 끝은 안 좋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건 내 경험에 의거해서 그렇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일 뿐, 이런 문제를 이겨내시고 결혼까지 가신 커플들은 정말 대단하신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무쏘의 뿔처럼 혼자 서 있다. 이 세상을 밟고.
**에필로그**
나는 내'집'을 사려면 아직도 오랜 기간을 고용주의 노예가 되어 살아야 하기에, 어떤 날은 숨도 안 쉬고 일하면서, 실제론 여유롭고 약간은 게으른 내 모습도 잃고 살아가는 건 아닌지 잠깐 생각해 봤다. 오늘 점심시간에 나는 잠시 외출을 감행해 요가 수업을 다녀왔다. 억지로라도 한 시간 동안 개인용/ 영업용 휴대폰을 손에서 놓으면 얼마나 자유로운지 모른다. 끝나고 나오는 길에 비가 왔고 나는 준비한 우산을 썼다. 횡단보도 하나만 건너면 버스터미널인데, 내 옆에 비를 맞고 계시는 아주머니에게 다가가 우산을 씌워드리며 실없는 날씨 이야기를 했다. 기실 나는 이런 상황에서 타인의 도움을 받은 적이 두 번인가 있었기에, 스스럼없이 나온 행동이지만, 몇 번이고 고맙다고 하시는 아주머니의 인사에 내가 더 감사했다. 여유 있게 살아야지, 하면서 일터에 복귀하는 순간, 나는 다시 키보드 워리어에 쌈닭이 되어 버렸지만 말이다. 이건 어떤 이미지를 넣어야 할지 잘 모르겠다. 나는 오늘도 헉헉대며 하루를 '잘'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