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랑, 팬텀 스레드

비밀의 숲 이준혁 배우가 좋아하는 영화라고 해서 생각났어요

by 장서율

*2017년 영화칼럼으로 발행한 글을 각색했음을 밝힙니다, 이 글이 쓰인 시점은 4월이었네요*


4월은 잔인한 달, 황무지에 피는 새 생명을 보며 느끼는 공허함이 아닌 밀려드는 일을 안고 허둥대는 나 자신을 바라보며 느낀 감정이다. 현실의 냉정함이 턱 끝까지 차오를 때마다 이토록 이성적이 될 수 있나 한 생각이 든, 출장길의 비행기 안에서, 본 영화에는 한 공허한 남자의 사랑과 일 이야기가 펼쳐졌다. 배경은 1950년대의 런던, 사교계. 레이놀즈는 나이가 들었지만 여전히 매력적이고 외모 관리에 힘쓰는 드레스 디자이너이다. 풍성한 거품을 내서 공들여 면도하는 턱 주변과 곱게 빗질하는 머리와 세심하게 다듬어 내는 얼굴의 잔털들. 일련의 과정들이 마치 그가 만들어내는, 물결치게 주름 잡힌 공단 드레스 같다. 오직 한 사람만을 위해 완성되는 그의 드레스는, 그의 영혼의 일부 와도 같은 공간 (메종; maison, 불어로 스튜디오, 집, 작업 공간, 아틀리에)에서 만들어진다. 그에게는 디자인에 관련된 일들 이외의 것을 – 사적인 부분까지도 - 처리해주는 여동생이 함께한다. 그녀 일의 일부는, 그가 주변에 들이는 드레스의 뮤즈 (muse ; 영감을 주는 여성들을 일컬음) 들을 하나씩, 때가 되면 그 메종에서 떠나보내는 일이다. 그렇다. 이 완벽주의자이자 미남인 드레스 장인에게는 여성 편력이 있다. 그는 한 여성에게 안주하지 못한다. 그 이면에는 엄마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어서 그렇다. 행복해지려고 하면, 그의 발목을 붙잡듯, 죽은 엄마의 형상을 한 드레스를 입은 여인이 다가와 그가 행복할 것인지에 대해 추궁하는 것만 같다.

죽음의 그림자를 이고 사는 것 같은 레이놀즈. 죽은 자는 아무리 사랑했더라도 말이 없다.


레이놀즈는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쏟아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고, 만족할 만한 작품들 앞에서야 비로소 잠시 육체를 뉘이고, 다시 에너지를 쏟아부을 오브제(대상)를 찾는다. 그럴 때마다, 그는 만족할 만큼의 음식을 가득 주문한다. 마치 아름다운 대상을 욕망하는 사내처럼, 자신만의 방식으로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 아침, 그는 식당에서 드레스를 입기에 알맞은 골격을 가진 여인을 만난다. 둘은 첫눈에 서로가 마음에 들었다. 그녀의 이름은 알마이며, 그녀가 어디에서 와서 그 식당에서 일했는지, 가족이 있는지 배경 설명은 없다. 알마는 까다로운 그의 조찬 주문을 전부 외우고, 그의 데이트 신청을 받아들인다. 그녀는 곧 그의 첫 맞춤 드레스를 선물 받고, 그의 뮤즈가 되어 메종에 정착한다. 그는 늘, 자신이 쇠약하고 힘들 때만 알마에게 기댄다. 일상에서의 그녀는 드레스 메이킹과 패션쇼의 파트너일 뿐, 정작 알마가 사랑하는 남자로서 그를 찾을 때, 그는 거기에 없다. 대부분의 여성들이 그즈음에서 떠나갔겠지만, 알마는 자신의 사랑을 지키기 위해서 약간은 다른 행보를 걷는다. 용감하고 무모한 알마의 선택은 신선하고 아름답고 약간은 처절했다. 그만큼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다. 자신의 마음과 그의 마음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모험을 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나도 누군가에게 이런 확신을 가지고 내 마음을 밀어붙일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다시 한번만, 내 인생에서, 제발.


그 행보는 여성의 고유 영역인 (이제는 시대가 바뀌었지만) 부엌에서 이뤄진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맛있는 요리를 해 줄 수 있는 건 남자에게든 여자에게든 축복이고 행복이다.


사랑이라는 건 무엇일까? 서로의 부족한 부분, 서로가 갈망하는 부분, 서로가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게끔 해주는 원동력 같은 게 아닐까? 이들에게는 서로의 욕망을 채워주는 역할이 사랑으로 표현되는 것은 아닌가 싶다. 드레스는 그 욕망의 산물이며, 레이놀즈 내면의 트라우마를 표현해 승화시키는 오브제이다. 자신이 처음 만든 작품인 웨딩드레스를 입은 그의 어머니는, 레이놀즈가 아직 그녀를 필요로 할 때 죽음을 맞이했다. 알마는 보이지 않는 그의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어두움을 받아들이며, 그가 그녀를 더 필요로 하게 만들기 위해서, 그를 육체적으로 약하게 만들고자 마음먹는다. 그녀가 독버섯을 넣고 만드는 오믈렛을 만드는 과정은 한 편의 예술품을 만드는 것처럼 표현된다. 레이놀즈는 이 모든 것을 알면서도, 그녀가 하는 대로 내버려 둔다. 여태껏 자신에게 결핍되었던 보살핌을 위한 갈망이다. 사랑에 빠진 여자는 응당 상대에게 보살핌을 강구하기 마련이지만, 여기서는 반대의 경우가 되어 버렸다. 너무나도 완벽해 보이는 레이놀즈에게 알마는 독이라는 전대미문의 방식으로, 그에게 자신을 필요로 하게 만들었고, 지극정성으로 그를 간호하고, 그의 옆에 있을 수 있는 시간들을 감사하고 기뻐한다. 이 사랑이 나쁘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영화라도, 아무도 없다. 결국 둘만의 사랑은 두 사람이 가장 잘 알고 헤쳐 나가야 하는 긴 여행일 테니. 서로는 서로가 서로를 조금씩 부수어 가면서도, 독이 든 버섯을 먹으면서도, 함께하려는 모습을 그린 이 영화 팬텀 스레드.



어떤 뜻이 있을까 영어 단어를 찾아보았는데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니 보이지 않는 존재 (엄마)에게 공기처럼 지배당한 레이놀즈에의 영향력을 표현한 단어가 아니었을까 싶다. 공허한 실들이 얽히고설켜서 만들어내는 환영, 혹은 채워지지 않은 욕망을 사랑하는 것인가? 그 뒤에 숨은 많은 감정들을 덮은 두 사람의 알 수 없는 관계는, 둘에게는 사랑이었을까? 둘만이 알고 있는 진실이, 레이놀즈가 만들어내는 드레스만큼, 아름답고 신비롭다. 지독하게 심미안이고 스스로 아름답기까지 한 레이놀즈를 연기한 다니엘 데이 루이스라는 영국 배우는, 25년 전 내가 처음 본 그의 영화 ‘ 순수의 시대 (age of innocence)'와 별 다름없이 보였다.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와 자신을 사랑하는 여자 사이에서 갈등하던 아름다운 청년은, 사랑이라는 단상에 대한 깊은 여운을 남긴 이 영화 팬텀 스레드(phantom thread)를 끝으로 은막에서 사라졌다.


어쩜 이렇게 아름답게 늙을 수도 있는 것일까.


오래도록 그의 모습이 독한 포트 와인 한 잔의 여운처럼 남을 것 같았다. 쉽게 잠들지 못하는 비행기 안에서 보는 영화에는 늘, 으레 와인 한두 잔이 필수였지만. 열심히 출장 다니면서도 비행기 안에서 영화 보고 글을 썼던 불과 몇 년 전의 나. 코로나가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아니 그때는 이미 내 마음가짐이 이전과는 달라지겠지. 조금 더 인생에서 소중한 가치를 발견했기에. 그리고 당분간은 이런 상황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버텨야 할 것 같다. 인생에서 두 번 다시없을 충만함이 내 곁에 있다. 나 역시 엄마의 환상에서 벗어난 것 같다.

브런치에 글을 써야지 처음 마음먹고 프로필 사진 업로드했던 2019년 6월. 정확히 1년 걸렸다. 직접 레몬청 담가 마시던 차와 사연 있는 도자기 컵의 조화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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