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ker is the Joker

Loser is the loser

by 장서율

#2019월겨울호영화원고각색 #제목은엑스재팬의'Joker (1991)'차용 #호아킨피닉스 #히스레저 #사내연애

**프롤로그**


‘Joker (조커)’ 현지 개봉일이 2019년 10월 12일 주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연말로 다가설수록 바쁜 우리 업계 특성상, 바쁘고 또 바빴던 나날들 사이, 미팅 나선 길에 바보처럼 우산을 미리 챙기지 못해서 쫄딱 비 맞고 돌아온 날이 있었다. 늘 가방 속에 넣어두던 것을 그 날 따라 왜 빼놨을까 반문해 볼 겨를도 없이, 다음 날 바로 열이 나고 감기에 걸렸다. 아마도 마음이 맹숭맹숭한 나날들이어서 그랬을까, 스펀지처럼 물을 쭉 빨아들인 것처럼 가라앉은 마음 탓인지 몸도 함께 무너져 내렸다. 엎어진 김에 쉬어 가라고, 마침 금요일이던 그 날 병원에 들러 약을 타오는 길에 나는 무언가에 홀린 듯 또 영화관을 찾았다. 그렇게 선택한 영화는 히스 레저에 이어 악인을 연기하는 호아킨 피닉스의 ‘조커’. 그렇다. 영화 배트맨에 등장하는 바로 그 악역 ‘조커’의 프리퀄 그 영화다. 암울해 보이는 저 영화 포스터, 혼자서 당당히 영화관에 들어서는 나. 외로울 때는 아예 외로움의 바닥을 쳐야지 위로 다시 솟구쳐 오르는 나의 성격답다. 무엇 때문에 작은 흔들림에도 무너졌는지는 뒤에 쓸 것이다.


W의 이면에도 많은 쓸쓸함이 있었을 것이다.




**영화 이야기 1**


사실 호아킨 피닉스라는 배우를 잘 모른다. 하지만 어제도 '아이다호'에서 썼듯이 23세 나이에 약물 중독으로 작고한 그의 형 리버 피닉스를 많이 좋아했었다. 아마도 중학교 수업 때 봤던 'Stand by me (1986)'라는 영화 때부터 좋아했던 것 같다. 수업이 끝난 후 선생님을 쫄래쫄래 쫓아가서 '한 번 더 보고 싶어요, 비디오테이프 좀 빌려주세요' 했던 내 모습이 생각나기에. 난 좋아하는 영화는 꼭 세 번 이상은 봐야 성이 풀렸다. 열흘 동안 영화관에서 세 번을 관람한 영화도 몇 편 있을 정도니까 말이다. 슬프고 선량한 리버의 눈빛을 빼닮은 것 같은 호아킨 피닉스. 영화에서 ‘조커’라는 악당으로 탄생하기 이전에, '아서'라는 이름으로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역으로 분한 그는, 긴장하거나 화가 나면 주체할 수 없이 웃음이 터지는 병을 앓고 있고, 사람들 앞에서 시종일관 웃음 짓는 광대 피에로를 연기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 그는 또 , 가난하고 고단하지만 언젠가 스탠딩 코미디를 하는 멋진 희극인이 되고 싶다는 꿈도 가지고 있다. 아서는 어머니와 함께 주말 저녁이면 시청하는 빌 머레이의 코미디 쇼를 보며 그 꿈을 키우고 있었다.


아주 오래 전의 가요 ‘피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라는 가사 속에 ‘난 차라리 슬픔 아는 피에로가 좋아’라는 구절이 있었는데, 영화 초반의 아서를 보고 있으면 그 노래가 겹쳐지며 그 고군분투를 보는 일이 안타깝다. 피에로로 분해 일하는 도중에 소품을 도난당하고, 린치 당하고, 갑자기 웃음이 터지는 병 때문에 조롱거리가 되기도 한다. 어느 날 동료가 자기 자신을 지키라며 건네 준 총을 몸에 지니고 아동 병원에서 춤을 추다가 발각이 되어, 해고를 당하는 순간에도 그는 ‘내 직업을 정말 사랑한다’며 읍소하지만 사장은 냉정하기만 하다. 영화 속 아서는 그냥 외로운 사람이 아니라, 누구보다도 순수하게 존중받기를 원했으나 그러지 못했고, 가장 가까워야 할 사람에게 버림받았으며, 사랑을 하고 싶었으나 현실에서 그럴 수 없어 자신의 망상 속에서 숨을 쉬는 남자였다. 그가 자신의 광기를 발견하는 순간인 한 밤중의 열차 장면은, 꼭꼭 눌러둔 아서의 괴로움과 외로움이 모두 폭발한 순간이며, 그 순간의 숨 막힐 듯한 정적 속 에너지는 묘한 쾌감마저 불러일으킨다. 마침내 내면의 모습을 발견한 그는 도망친 화장실에서 아주 조용히, 몸을 크게 움직이며, 춤을 춘다. 그 춤사위는, 조커라는 악인의 탄생을 끝끝내 막거나 비판하지 못하고 그대로 받아들인 아서의 모습을 대변하듯, 슬프고 매력적이다.


열차에서 자신과 여자를 괴롭히던 일당들에게 린치 당한 후, 그들을 살해 하고 조커로서 자유로움의 춤사위를 펼치는 아서.




관객이 성선설 혹은 성악설을 믿든 믿지 아니하든, 자신의 진짜 존재 이유를 알게 된 아서는 점점 멈출 수 없는 길을 가게 된다. 자신에게 총을 건네 준 동료를 살해하는 장면, 자신에게 부재한 아버지의 상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다는 욕구)을 깨우처 주던 머레이의 쇼에 출연해 그를 살해하고 세상에 자신의 존재와 그 이유를 알리던 장면은 영화의 클라이맥스다. 감독은 조커의 그런 선택들이 옳다 그르다를 직접 말하지 않는다. 그냥 한 사람을 진짜로 외롭게 만드는 것은 사회나 가정의 한 일원으로 받아들여지지 못하는 사실이라는 것을 역설하는 것만 같다. 아서의 어머니의 과거에 얽힌 반전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부를 찾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알게 되는, 배다른 동생일지도 모르는 브루스와의 만남 (브루스는 후일 배트맨 시리즈의 주인공, 배트맨이 된다는 설정) 또한, 아서에게는 조커로 탄생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사건이 된다. 조커로 분한 아서의 존재는 어둡고 빈부격차가 심해 불안정한 사회 (고담시)에서 폭동들에게 하나의 상징으로 거듭나게 된다.


**나의 이야기 1**


십여 년쯤 전인가, 서울에서 알게 된 한 정신과 의사 분과 작고한 배우 히스 레저가 연기한 ‘조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그는 이렇게 복잡한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만으로도 배우가 너무 많이 외로웠을 것 같다고, 그가 자살 (혹은 약물 남용이었다는 후문이 있다) 한 이유를 유추해 볼 수 있을 것 같다고 했었다. 그분은 사실 내 소개팅 상대셨는데, 그분과의 몇 번의 만남 가운데 생각나는 두 가지 대화 내용 중 한 가지가 '조커'에 관한 이야기였고, 또 하나는 늘 바쁜 나에 대한 불만 이야기였다. 물론 그렇게 직설적으로 말씀하시지는 않았지만, 불만이 맞았던 것 같다. '뭐가 그렇게 바빠요?'라는 말을 자주 전화로 물으셨다. 나는 누군가를 만날 심적 여유가 그때도 없었다. 그냥 평소에 내가 살던 대로 지내는 게, 남들 눈에는 '뭘 그렇게 여러 가지 하고 사니' 이렇게 보였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때는 회사를 그만두고 과감히 유턴한 대학원에서 심리학 공부하면서, 조교 하면서, 아르바이트하면서, 혼자 대학원 근처 가정집에 꽃꽂이 배우러 다니면서, 앞으로의 진로를 생각하면서 그렇게 지낼 때여서, 이렇게 돌아보니 소개팅 굳이 안 했어도 될 것 같다. 씩씩하게 자란 탓에, 혹은 사회초년생 시절에 이런저런 이유로 사람에 데인 일들 때문에, 내 트라우마를 자아실현으로 극복하는 게 먼저라고 생각했지, 나를 받아줄 아량이 있는 그 누군가에게 기대는 법을 몰랐다. 다시 말해 사랑해주는 사람이 곁에 있었어도, 사랑받는 줄 모르는 그런 나였었던 게 미안하고, 안타까운 인연들이 있다. '히스 레저'의 조커 때도 그랬는데, '호아킨 피닉스'의 조커를 볼 때도 그랬구나. 아. 생각이 났다.



W와는 2019년의 조커 개봉 4개월쯤 전 사내 행사에서 만났다. 나는 그가 우리 회사에 있는 줄도 몰랐다. 원래 나는 프로젝트 한 번 들어가면 내 일과 내 사람들만 챙기는 경향이 있어서, 근무지도 먼 지점인 그가 생경했다. 어차피 사내 보은 행사였으니 그날 밤은 클럽을 빌려 사장님부터 부장님들까지 샴페인을 따고 위스키를 들이붓는 중이었다. 그 와중에 그가 내게 와서 말을 건다. 근데 나는 처음부터 그가 마음에 들었다. 우습게도. 바빠서 연애는 안중에도 없었는데, 캐나다에서 오래 살다 왔다는 W의 말에 내가 이런 망언을 날린다. '너 얼굴 보니 연애 안 했을 거 같지 않은데 그냥 거기 눌러살지 왜 왔냐'라고. 그랬더니 W 가 말했다. '엄마가 아프셔서 간호하러 왔는데 돌아가셨다' 고. 순간 되게 미안했다. 정말 아무 생각 없이 던진 돌에 개구리를 죽일 생각은 없었는데, 참 경솔했다. 하지만 그 장소에서 W도 내게 무척 경솔한 행동을 했다. 만난 지 두 시간 만에 모든 사람이 있던 없던 상관없이 내게 키스를 한 거다. 둘 다 술이 많이 취해서였다고 생각한 내 동료들은 우리를 떼어내고 각자 귀가시켰다.


다음 날 정신이 들어 요가 수업을 받고 나왔을 무렵 그에게서 문자가 왔다. 그게 참을 수 없는 이 연애의 시작이었다. 참을 수 없다고 표현하는 건 친해지며 알게 된 W의 성장배경이 실로 우울했기 때문이다. 회사 동료에서 친밀한 친구가 되어가는 와중에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눌 때는 잘 맞고 반짝반짝 빛이 나는 것 같았는데, 배다른 형 둘, 배다른 여동생 하나, 생물학적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르는 자기 자신, 그리고 암으로 인한 어머니의 죽음, 유산 분쟁, 이혼과 자신에게 딸린 어린 아들까지 그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까 숙연해졌다. 한 사람이 남자로서 맘에 드는 것과 그 환경이 나와 너무 다른 것 사이에서 오는 갈등을 적지 않은 나이에 온 몸으로 느끼는 것도, 회사에서 동료들이 우리 이야기로 수군대서 메신저나 톡을 맘 놓고 할 수 없는 것도, 어찌 보면 짜증 나는 연애였다. 동료들은 나에게 제발 다시 생각해 보고 그를 만나라고 했다.


하지만 W는 나를 자기 아이 대하듯 위해주었다. 세상에 다쳐서 마음에 둑을 쌓고 살던 내게 '괜찮아. 울어도 돼. 기대도 되'라는 말들을 해 주었지만, 그것만으로는 나의 신뢰를 얻기가 부족했다. W나 나나 일에 있어서는 한 치의 양보도 없고, 연애보다는 일이 먼저고, 그 이전에 그는 당연히 자신의 아이가 먼저였고, 나는 나 자신의 안위가 우선이었다. 그런 어떤 주말에 TV 드라마를 혼자 보다가, 남자 주인공이 이혼하면서 자기 아들을 아이 엄마에게 맡기면서 우는 장면이 나왔다. 근데 바보같이 나는 그걸 보고 W의 마음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며 눈물을 흘렸었다. 그 사람한테 세상에 진짜 자기 피붙이는 어린 아들내미밖에 없는데, 어떻게 내가 그 자리에 비집고 들어가나, 이런 생각이 드니까 어느 순간 마음에서 포기가 되었던 것 같다. 영화 조커를 보기 전 그 비가 많이 오던 날 미팅이 끝나고 나서 나는 W를 만날 생각에 부풀어 있었는데, 현장에서 사고가 났다는 W의 말에 풀이 죽어 집에 일찍 왔는데도 굳이 몸살이 난 걸 보면, 상사병이나 체념 그 중간 어디쯤에 있는 내 감정들에 체했던 게 맞는 것 같다. 나는 그 사람이 참 좋았거든. 실제로 많은 걸 포기하려고 했었을 만큼. 좋은 건 좋은 거였다.


그와 만나고 6개월쯤 지났을 무렵, 당일치기로 서울 출장을 다녀와서도 쉬지 못하고 새벽까지 다음날 미팅을 준비할 만큼 나는 바빴다. 하루 종일 굶고 일하다가 허기져서 먹은 햄버거 한 입에 체해서 열이 39도까지 올랐던 적도 있다. 그즈음 나는 W의 동료와 준비하던 큰 프로젝트 2개가 있었고, 연말까지 그것들을 제출하고 비딩을 따내는 게 목표였다. 그리고 그 동료를 통해 W가 이직하려 한다는 걸 얼핏 들었다. 우리는 크리스마스도 신정도 없이 일했다. 나는 이미 12월이 되면서부터 그와 곧 헤어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매일 나누던 톡도 뜸해졌을 때였다. W의 상사가 내게 전화를 해서 이런 질문을 했다. 그의 송별회를 열어 주고 싶은데 너라면 그가 받고 싶어 할 선물이 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고. 나는 순간 너무 화가 났다. 그에게 내가 바랬던 것들을 제대로 이야기하지 못한 것도 화가 나고, 우리는 이미 헤어져 가고 있는데 주변 사람들에게 이런 질문을 받는 게 화가 났다. 어차피 내가 무한 희생하지 않으면 안 될 관계라고 정의 내렸던 나니까. 그런데 그 상사에게 나는 W가 언젠가 잃어버렸다던 아끼던 헤드폰의 사양이며 모델명까지 알려주고 있었다. 그런 내가 너무 싫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를 만날 핑계로 자기가 있는 서쪽 끝 사무실에서 동쪽 끝까지 오는 것도 마다 하지 않았던 그였는데. 나만 보면 경직된 얼굴에서 파안이 번지던 그였는데. 좋아한다는 마음만으로도 내가 극복할 수 없는 게 있더라. 한없는 그 사람의 외로움, 늘 그 사람의 본질적인 상처를 받아내줘야 할 것 같다는 마음, 그리고 대여섯 살이 되었다던 그 아이에 대한 두려움. 내 안의 외로움도 감당이 안 되는데, 그렇게 평생을 살 수는 없을 것 같았다. 회사에서 마지막 인사할 때 W는 다음 주에 밖에서 만나자는 제안을 했지만, 그의 성격을 간파한 나는 내가 먼저 연락하지 않으면 먼저 만나자는 약속은 잡지 않겠구나 하고 마음속으로 마지막 인사를 해버렸다. 그게 끝이지만 여전히 내 동료이자 프로젝트 파트너였던 그녀를 통해 W의 이야기를 듣는다. 이직해 간 회사에서 그렇게 우리 회사 욕을 하고 다닌다고 하더라. 씁쓸하기도 하고, 잘 살고 있구나 싶어서, 마음의 빚은 덜었다.


**영화 이야기 2**


본인의 잘못이 아닌 이유로, 선택할 수 없는 배경으로, 자신이 속한 곳에서 버림받거나 겉도는 사람들, 타인에게 이유 없이 손가락질당하고 희롱당하는 사람들이 지금도 많이 있을 것이다. 혹은 과거에 본인이 그런 일을 겪었었다면, 그런 독이 얼마나 사람을 피폐하게 만드는지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 속에 섞여서 사람들을 곪게 만드는 ‘독사과 (Rotten Apple)’ 같은 사람이 되지 말자고 다짐해 보지만, 점점 나이 먹으면서 나의 진짜 모습을 내 보일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생각해 보면서, 그 영화관을 나왔다. 역시나 씁쓸하지만 어린 날의 나는 '뭐가 그리 잘났냐' 며 모난 정이 돌 맞듯 따돌림 당했던 적이 생각보다 많았다. 나는 내가 일에서도 내 인생에서도 가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어디까지나 허구의 현실을 그럴싸하게 보여주는 영화니까, 영화 속 '아서'가 '조커'가 되는 상황은 이해가 되지만, 저게 현실이 된다면 분명 악인의 탄생을 멈출 수 있을 만한 사회적 장치가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런 걸 만드는 바탕은 사람들의 양심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부터 양심을 버리는 일 없이, 남에게 피해 주는 일 없이, 온전히 내 모습으로 살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마음이 경쾌해졌다. 이런 아이러니. 그때 그 영화를 보면서 나는 W의 생각을 했었을까. 아니면 여전히 나의 안위가 우선이었을까. 항상 나에게 '너무 많은 생각을 하지 마'라던 그 사람. 안녕.


영화 '조커'는 러닝 타임이 다소 길고, 무겁고, 잔인한 영화이지만, 전 세계 상영 스코어가 보여주듯 논란의 중심에 있는 영화다. 호아킨 피닉스는 시종일관 열연하지만, 그가 조커로서 느끼는 최고의 쾌감을 표현했다는 계단에서의 춤사위는 정말 압권이다. 대본에도 없는 애드리브이었다고 하니, 배우가 역할에 녹아들어 살아있는 ‘인물’로 탄생시키는 배우라는 직업은, 참 위대하고도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호아킨 피닉스는 실제로 이 영화로 2020년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 주연상을 수상했다. 그의 작고한 형 리버, 누나 레인, 여동생 리버티 & 서머. 아름다운 이름들을 가진 가족이다. 히피셨고 자유롭게 사셨다는 부모님과 여러 곳을 여행하듯 살았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 W의 가족들도 서로 멀리 떨어져 살지만, 화목하게 지냈으면 하는 작은 바람이 있다. 아서의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이웃집 여성과의 사랑 같이 신기루가 아닌 진짜 사랑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고민된다. 내가 가진 얼마 안것들을 놓지 않으려고 하는 마음과 상대를 진심으로 위하는 마음이 49: 51이 되면 그건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는 마음인 건가. 누가 좀 알려줬으면 좋겠다. 책으로도 영화로도 경험할 수 없는 연애는 정말 참, 어렵다.


사랑이 끝나고 지나간 내 마음처럼 피폐한 고담시티 거리. 조커의 그림자가 강렬하다.


*주: 프리퀄이란, 전편보다 시간상으로 앞선 이야기를 보여주는 속편이다. 본편의 이야기가 왜 그렇게 흘러가는지 설명하는 역할을 한다. 대표적 프리퀄의 예시로는 영화 '부산행'의 프리퀄 격인 애니메이션 '서울역'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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