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를 회상하다

팀 버튼의 '빅 피쉬' & 월터 살레스 '모터싸이클 다이어리'

by 장서율

사람에게는 누구나 한 번쯤, 혹은 살면서 일정한 주기로 몇 번씩, 본인이 원한다는 전제 하에 자신의 인생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와 시련 혹은 경험의 순간이 찾아온다고 생각한다. 그 순간을 깨달은 순간 그 '불편할 수 있는 진실'에 맞닥뜨릴지 피해 버릴지는 당사자의 몫이다. 하지만 길지 않은 인생 가운데, 나름의 힘든 일을 겪고 이겨내고 뒤돌아보면, 아니, 그전에, 삶은 지혜 혹은 인내라는 이름의 책을 펼쳐 보이기 마련이었다. 내가 평소에 잘 쓰는 표현인, 아무 생각 없이 있으면, '툭' 하고 깨달음을 던져주듯이. 절대자 그분이 주시는 깨달음이란 참 쉬크하기 그지없다.


현실을 비튼 판타지 영화의 대가 팀 버튼의 '빅 피쉬' (2003)'라는 영화를 보면 아무 걱정거리도 없이 행복하기만 한 어떤 마을의 한 시인이 나온다. 시인은 현실의 고뇌를 제일 날카롭게 느끼는 이여야만 하고, 자신의 밑바닥까지 내려가 내적/외적 진실을 마주 봐야 하는 사람이라고 배웠다. 윤동주의 시를 보면, 쉽게 쓰여진 시를 부끄럽게 여기는 시대 앞의 한 청년이 있다. 나는 그 부끄러움이 아름다운 고뇌, 혹은 깨달음으로 가려는 한 인간의 벌거벗은 솔직함이라고 생각한다. 어차피 내가 지금 어떤 사람인지, 착한지 나쁜지, 세상은 신경 쓰지 않는다. 그저 내게 그런 자각이 있는지 없는지가 관건인 거 같다. 더 나은 사람이 되어 세상에 도움이 되려고 하는지, 아니면 그냥 골프 스코어 PAR를 기록하듯 있는지 없는지 모르게 사는 사람이 된 지, 흔히 영화 속에 나오는 빌런처럼 악인이 되어 주변을 괴롭히고 악행을 저지르면서 살든지. 언제가 읽었던 만화책의 주인공은 이런 삼분법으로 세상의 사람들을 분류했는데, 살다 보니 이 얘기가 맞는 것 같다. 그냥 나는 나은 사람까지는 아니어도 PAR 정도의 평타를 치면서 나 자신에게는 떳떳한 사람이 되고자 해 왔다. 어떻게?


이 영화는 포스터만 봐도 설렌다.


혼자 수없이 많은 글을 쓰면서, 기록하면서, 자성하면서,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아도 혼자 부끄러워하면서. 내가 나인 것을 죄스러워하고 미안해하며 세상을 등에 짊어지려고 하면서. 이십 대의 나는 그렇게 무모하게 나를 옭아매고 있었다. 삼십 대를 지나 여기저기 치이고 나니까 이제는 주변의 시야에 무뎌지는 사십 대가 찾아든다. 뭐라고 해야 하나, 나이 들었다고 느끼는 순간은 튀는 행동을 하면 안 되겠구나, 는 생각이 들었을 때다. 내가 스스로 떳떳하다고 해서 내 옷차림이나 겉모습에 길을 지나는 행인이 놀라면 안 되니까. 대학교 다닐 때 오렌지 탑에 하얀색 미니스커트에 무지개색 니삭스를 신은 나를 보고 과 동기들이 '나 너 몰라' 라며 피해 다녔던 기억이 난다. 내가 들고 다니던 핑크색 호피 무늬 우산은 1년 동안은 놀림의 대상이 되었을 것이다. 청바지에 회색 플리스 재킷을 입고 있는 지금도 내 아이쉐도우는 초록색이고 내 손톱은 진빨강이다. 나는 컬러풀한 게 좋다. 하지만 너무 전면에 내세울 수는 없는 자기표현을 포인트로 가져간 것만 해도 나한테는 나이 먹었다는 증거인 듯해서 맘이 좀 아프긴 하다. 그러나 글을 쓰는 동안 나의 눈은 시종일관 웃고 있다.


영화 "빅 피쉬"의 이 시인은 노래와 술과 여인에 둘러싸여 자신이 바라보는 아름다운 풍경에 걸맞은, 역시 아름다운 시를 써보고자 하지만, 결국 단 한 줄도 쓰지 못한다. 시상이 없는 것이라기 보다는, 그에게는 시를 쓸 의욕도 날카롭게 그려낼 현실도 고뇌도 없다. 그 마을 사람들은 더 이상 마을 밖의 세상에 나가 고생할 필요가 없이, 마을의 높은 전선줄에 자신의 신발들을 던져 쳐놓은 채로 매일 같이 똑같은 행복, 똑같은 일상 속에 젖어든다. 그것이 행복이 될 수 없다는 -적어도 저 밖의 너른 인생을 배우고, 더 많은 것을 경험할 수 없다고- 깨달은 우리의 주인공 에드워드는 애써 걸쳐놓은 신발을 건져 내려 다시 길을 떠난다. 그에게는 아버지가 해 준 이야기들의 진위를 밝혀야 하는 퀘스트가 있지 않은가.


걱정 없이 아름답기만 한 마을에서의 파티, 그 안으로 들어가는 주인공 에드워드


"큰 물고기는 잡히지 않기 때문에 자기 길을 갈 수 있다."라는 명언은 주인공이 노인이 되어서야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된다. 그는 영화 속에서 아마도, 열심히 살았을 것이다.


내게도 대학 시절 혹은 그 이후에 그릇과 견문이 큰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히 했지만 어찌해야 할지 잘 모를 시기가 있었고, 무작정 시도하고 실패하고 또 일어서서 앞만 보고 가던 긴 세월들도 있었다. 물론 지금도 그 방황 혹은 모험이 끝났다고 생각진 않고 과정 중이라고 생각해서 그런지, 늘 삶의 의미, 꿈, 또는 소중한 것을 찾아 떠나는 로드 무비 형식의 영화를 좋아했었고 지금도 좋아한다. 여전히 혼자 떠나는 여행을 좋아했던 2004년, 영화론 수업을 들으며 나의 단짝 현미군과 (https://brunch.co.kr/@aileensoyeonjan/16 참조) 이 영화를 봤던 게 엊그제 같지만, 귀국해야 했던 나는 취업 준비생이자 대학교 4학년 1학기 생이었다.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모르고 남들이 하는 대로 따라 하는 시늉만 했던 그때, 근처 비디오 가게에서 '모터싸이클 다이어리'라는 영화를 빌려보게 되었다. 진짜 무엇이 하고 싶을지 몰라 방황했던 그때, 에드워드나 젊은 체 게바라처럼 안이하게 정착하지 않고 길을 좀 더 떠났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딱 6개월만 더 고민했었다면, 조금만 더 열정적인 20대로 남았다면, 그렇게 먼 길 돌고 돌아 여기에 있지는 않을 텐데. 후회해도 소용없다. 생각해 보면 시간은 늘 있었지만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았다. 어느 정도 하다 보면 되겠지 라는 생각으로 안이하게 회피했다. 현미와 헤어져 10년 만에 길을 떠나 지금 여기에 있는 나. 내게는 지름길을 찾아갈 요령은 없었던 것 같다. 그저 우직하게 인생길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배우고, 느끼고, 아파하며 걸어왔다.


젊음은 아름답고 청량하고 치열하다


하지만 영화의 주인공들은 젊어서 길을 떠났다. 과감하게 떠난 길에서 맞닥뜨린 사람들과 소통하고 자신이 도울 수 있는 일을 찾았으며 그 안에서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과 좋아하는 일을 찾아냈고, 자신이 생을 바쳐해야 할 일들에 의미를 부여했다. 또한 현실의 사람들이 겪는 불합리성에 대해 분노하고 많은 생각에 잠긴다. 그런 고민들은 이들에게 새로운 영감, 그리고 의미를 부여해준다. 로드 무비의 정석 같은 '모터싸이클 다이어리 (2004)'는 의학도였던 영화의 실제 주인공이자 쿠바의 지도자였던 체 게바라의 젊은 시절 남아메리카 여행기이다. 체 게바라가 어떤 사람이고 쿠바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잘 모르더라도, 사람을 돕는 일에 열정을 가지고, 부조리한 현실에 분노하며, 길 위에서 활동적으로 자신의 길을 찾아 자신의 이상을 좇으며 살았다는 사실만으로도 동경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했다.


영화들처럼 거창할 수는 없어도, 이런 여행길에 핑계만 대고 떠나지 못했던 나의 나약한 청춘을 깨부수는 데 있어 가장 큰 밑거름은 편해 보이는 길만 선택한 속에서 찾아든 고뇌와 시련이었다. 내 안에는 시인 혹은 방랑자의 영혼이 있었는지 안락한 집과 현실을 떠나 스스로 개척하는 삶을 선택했다. 하지만 거기까지는 이런 영화 같은 삶을 동경하는 십수 년의 세월이 필요했고, 현실 속에서 다듬어지기 위한 인고의 시간이 필요했으며, 달라지고 또 달라져야만 할 스스로의 모습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연습도 필요했다. 어느 날 갑자기 되돌아보니 인생은 그런 거였다. 길이 툭 던져주고 떠나는 하나의 메시지를 차곡차곡 담아서, 상처도 인내로 바꾸어 곱게 곱게 다져나가는, 지혜를 쌓는 연습의 장이 삶 그 자체였다. 하여 깨달음을 주워 담기 위해 가끔씩 나는 머리에 쥐가 나듯 '깨어있는' 사람이어야만 했다.


길을 떠나고 자신의 삶을 돌아볼 수 있는 여유는 항상 충만하다.


돌아보고 나니 아직 20대였던 나의 세대는 그나마 영화, 소설, 시, 그리고 음악 등에서 오는 위안으로 버텨낼 수 있었지만, 지금 젊은이들에게 닥친 시대는 훨씬 더 가혹하다는 생각이 든다. 청년 실업률 최악이라는 잣대며, 끝나지 않는 코로나 사태, 이상 (Ideal) 대신 안정적인 수입을 쫓아야 살아갈 수 있는 사회 속에서 무엇이 옳은 길인지에 대해 설하려고 하는 게 아니다. 삶이 힘들면 견디며 더 나아질 수 있는 방도를 찾되, 삶이 자신에게 속삭이는 교훈에 귀 기울여 나아가면 더 나아질 거라고 말할 수 있는 시대도 아닌 것 같다. 하지만 여전히, 시대가 어떠하든지, 어떻게 살 것인지 결정하는 것은 자신의 몫이다.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고 행하면 언젠가는 이루어진다. 해서 더더욱 꿈이 간절하던 지난날이 그리워지는 요즘이라 오래전 본 영화와 그 시절을 회상해 보았다. 누구에게나 있을 아름다운 그 시절 20대, 한 번쯤 그때 영화들을 다시 보며 생각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한국으로 치면, 천고마비의 계절 가을이다.


당신은 지금 당신 인생 어디쯤 계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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