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어야 하는 것도

'그대는 어디에'

by 장서율

요즘 '싱어게인 (Sing again) - 무명가수전'이라는 프로그램을 즐겨본다. 이전의 영광, 놓을 수 없는 음악의 꿈을 가진 사람들이 저마다의 사연을 안고 경연 무대에 선다. 심사위원들은 어느 시점에서 노래를 들으며 치유와 위로의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경연자들에게 따뜻한 충고를 건네기도 한다. 심리적인 역동이 이뤄지는 장면들에 뭉클하다. 어떤 곡에서 나는 나도 모르게 순식간에 눈물이 가득 고이는 걸 느낄 수가 있었다.


참가자는 헤비메탈을 했던 록커라고 했다. 저항의 음악인 록은 90년대 말부터 최근까지 나의 삶을 횡단하고 있었고, 나로 하여금 공연을 보기 위해 많은 여행과, 동호회 활동을 하도록 만들었다. 연대하는 저항감은 내 안의 응어리진 가장 큰 울분을 끌어내기에 충분했다. 공연장에서의 깊은 교감과 울림은 다시 삶을 힘차게 살게 하는 힘을 주었다. 마약을 해 본 적 없지만 꼭 그런 느낌이라면 이해가 될까? 소위 말하는 카타르시스, 혹은 나와 내 친구가 종종 명칭 했던 '라이브 병' 이 그것이었다.


헤비메탈처럼 표현하고 내지르는 창법을 쓰던 보컬은 마흔이 넘어 경연에 참여하면서 임재범의 '그대는 어디에'라는 노래를 부른다. 상당 부분 절제하는 모습을 보인 그의 창법은 답답한 게 아니라, 그 안에 잠긴 슬픔과 '연인 혹은 그 어떤 대상'에 대한 그리움으로 흘러넘쳐 있었다. 뭐라고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가슴이 턱턱 막힐 정도로 숨이 차오르고, 코끝이 찡해지고, 눈이 벌게졌다. 눈물이 흘러내렸다. 마음도 머릿 속도 멍해진다. 왜? 자려고 누운 자리에서 이것을 보고 있으니, 생각이 많아질 법도 하지만 오히려 나는 지치고 다소 깨끗해진 마음으로 잠이 들 수 있었다.


나이가 드니 알 것 같은 건, 목소리를 높여서 표현하는 것이 다가 아니라, 잠깐씩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분위기나 태도만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게 훨씬 강하다는 것, 그리고 또 말만 하는 것보다는 태도나 행동으로 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는 것.. 이런 것들이다. 따라서 이런 생각을 따라가다 보면, 나이가 들면 더 이상 자기 자신을 숨길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냥 받아들이는 게 제일 나답고 제일 마음이 편하다. 아마 이 경연에 나온 이들도 가슴에 묻고 살려던 자기 자신만의 열망을 숨길 수 없어 앞으로 당당하게 나온 사람들일 것이다. 음악으로 자신을 표현한 것만으로도, 자기 자신의 어떤 부분을 이겨낸 것이라 활짝 웃는 사람, 방황 끝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사람, 길었던 트라우마에서 자신을 들어 올려 세상으로 나오려는 사람... 등등. 내 눈에는 모두가 아름다워 보였다.


마지막 참가자는 트라우마로 약과 심리치료를 병행한다고 말했다. 그녀 역시 임재범의 '비상'을 불렀다. '웃어도 되는' 지 몰랐다고 했던 것 같다. 사람들이 자기를 자꾸 아픈 시선으로 보니까, 그러지 않던 성격이라도 자꾸 위축될 수도 있었을 것 같다. 나도 그냥 내 주변 사람들에게 우울증이라고 알리고 도움을 받을 걸 그랬다. 그게 뭐라고, 몇몇 몰지각한 사람들이 내게 했던 말들 덕분에 사람들 앞에서 꽁꽁 나 자신을 숨겨내고 있었나 싶다. 결국 화선지에 먹이 번지듯 나올 텐데, 주변에 몇 안 되는 소중한 사람들이 떠날까 두려워서 나를 좀 이해해 달라고 말하지 못했던 내게, 노래들은 심심한 위로와 '너 자신이어도 괜찮아'라는 위로를 건네고 있었다.


그분들의 용기에 감사한다. 그리고 마흔이 되어서야 있는 그대로의 나여도 괜찮다고 드디어 인정해주는 나의 ego (자아) 에게도, 잘 견뎌왔다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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