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집에 대해 엄마에 대해 그립거나 미련두지 않게 되었다. 그간의 마음의 짐들을 털어내고 진짜 나 자신이 되어 보자 해 보니 점점 더 멀어진 그날의 내 방으로부터 집에 갈 때면 엄마가 담가주던 김치 한 통으로부터 들려온 짠내가 더 이상 생각나지 않았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은, 스스로 찾아서 해 나가야 하는 것 같다. 모르면 누군가에게 물어서라도 살아나가야 하는 동안 의지할 건 나 혼자 뿐이고 다독여 주는 것도 나 혼자 뿐이다.
모순되게도 나의 온갖 수단을 다 써서 지금 여기 있는 나는 사무치게 오늘 집에 가서 엄마 집밥이 먹고 싶다.
친구의 아이가 초등학교에 간다면서 좋아하기에 세뱃돈을 조금 넣어주었다. 그 아이의 단발머리를 수건으로 말려주고 있으려니깐 친구는 하지 말라고 말린다.
예전에 엄마가 이렇게 말려주면 나는 푹 자곤 했어. 무심코 잊고 있던 기억이 생각났다. 가족은 영원히 풀리지 않는 미제야. 힘들어서 도망치면 또 보고 싶고 아무것도 바라지 않으면 더 잘해주고 싶은. 이 지랄 맞은 가족을 나는 왜 그렇게 만들고 싶었던 걸까.
남자아이를 하나만 데리고 이혼했다는 옆 방 남자는 주말이면 여자 친구랑 남은 여자애 하나를 데려오는데 그 여자애가 뛰어다니다가 징징거리다가 하는 소리가 듣기 싫어 죽겠다. 행복하지 않은 애가 우는 건 당연하다. 참 안 됐는데 정말 꼴 보기 싫다. 이왕 살 거였으면 바람피우지 말고 잘 살지 그랬니. 니 사정 들어주기엔 니 애들이 너무 안됐다. 그럼 여기 셰어하우스 말고 집 한 칸 빌려서 제발 나가줘.
나도 내가 이런 양가감정을 가지게 될 줄 몰랐다. 상처 받은 아이의 마음은 어른이 되어도 채워지기 힘들고 오랜 시간이 걸리며 때에 따라서는 불필요한 방황도 하게 만든다. 사랑이 충만해서 감정이 받아들여지며 자란 가정의 아이는 그것보다는 수월하게 자기가 가고 싶은 길을 찾아갈 수 있을 것 같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