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중요한 건 이제부터
3월이 끝나간다. 2021년의 1분기도 이제 끝이다. 집에서 일만 했는데, 다른 건 놓아도 일은 놓지 않았는데, 기대했던 보너스는 남들보다 금액이 별나다는 (?) 이유로 상부의 승인을 거쳐 아직까지 나오지 않았고, 글은 하나도 쓰지 못했고, 설상가상 몸도 아파서 거의 매일 실천하던 일상생활을 (수면, 식사, 운동) 수행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런데도 조금만 에너지가 생기면 눈물이 나고, 미래에 대한 걱정만 쌓여간다. 사실 나는 직장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이대로도 좋은 생각만 해도 괜찮은데, 우울증의 relapse인가 보다. 너무 오래 혼자 있었다. 일상과 다른 생활을 하는 게 무섭다.
한 가지 깨달은 건 있다. 하는 일의 성격 탓인지 그냥 내가 살아온 패턴 때문인지 나는 아파도 항상 남들을 챙겼다. 내가 '괜찮은지'에 대한 질문을 듣고 싶으면 그걸 투사하듯 주변 사람에게 '괜찮으냐'라고 물었다. 내가 챙기지 않은 마음속의 아픈 아이는 자기 혼자서 처박혀 있어도 외로운 줄 모르는 아주 크고 깊은 동굴을 만들었다. 그 안에는 빛도 바람도 없이 고요함만 있다. 내가 영화 '조제'를 좋아했던 이유다. 여주인공은 이별을 준비하면서 자신이 원래 침잠해 있었던 고요의 바다를 떠올렸었다. 나는 그게 참 좋았다.
항상 피곤하고 아프고, 나 자신을 챙길 줄 모르면 주변 사람들도 나를 챙겨주지 않는다. 내 노력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남들은 말 한마디만 해도 큰 반향을 얻는다. 남들을 탓하기에는 이런 패턴이 너무 오래 반복되어 와서, 그 문제의 원인이 내게 있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다. 나도 강인한 내 목소리를 내고 싶다. 삶을 버티고 버텨서 여기까지 왔다고 다독여주는데, 유능한 사람이라고 칭찬받는데, 내 마음은 황량하고 눈물은 멈추지 않는다.
스무 번째 상담 회차에서 선생님이 물었다. '나는 행복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스스로 규정짓고 있는 건 아니냐고. 이제는 그만 나 자신을 용서해 줄 때도 되지 않았냐면서. 내가 나인 것을 용서해 주어야 하는 순간이 오다니. 나는 도대체 어떻게 살아온 걸까. 내 마음자리 살피면서 더 나은 삶을 살기로 마음먹었고, 내 우울의 틀을 깨는 것이 쉽지 않을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몸도 마음도 아플 줄 몰랐다. 여전히 생각해봐도 기댈 곳은 다시 글 뿐이었다.
너무 생각이 많은 내가 아니기를. 나에게 너그러운 내가 되기를. 아프지 않기를. 닥치면 다 살게 된다는 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