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이 아닌 곳을 갈 수도 있다고
... 서른 정도까지는 늘 부모님의 자랑거리였던 내가 이혼을 한다고 했을 때, 엄마는 사람이 살다 보면 길이 아닌 곳을 갈 수도 있다며 다시 돌아 나와도 된다는 말씀을 해 주셨다. 아주 많이 고민해서 간 길이 절벽 끝 낭떠러지였다는 생각에 몇 년 동안 치를 떨며, 그런 선택을 했던 나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며 살았던 게 사실이다. 최선이 아닌 선택에도, 차선이 더 좋은 경우도 많다. 장고 끝에 악수 둔다는 옛말은 틀릴 게 없더라. 생각이 유독 많은 나 같은 사람의 경우에 그러한 거다.
보름 정도, 몸이 많이 아파서 힘들어하면서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내 인생에 대해 반추해 보았다. 지금 내 곁에 아무도 없는 이유와, 내가 가지는 삶에 대한 기대와, 환상과, 그것들이 이루어지지 않음으로 해서 오는 좌절감들에 대해서, 식은땀을 흘리며 스스로를 채찍질하듯 생각해보았다. 사람을 믿음으로 해서 왔던 상처도, 내가 너무나 솔직히 나 자신이어서 받았던 질타도, 세월이 흐르면서 괜찮은 척하는 마음의 껍데기 속에 갇혀 숨이 막혀가고 있었던 건 아닌지. 마음속에 있는 요새, 그 어둠으로 들어가는 주변에 있는 수풀들을 헤치고, 터널 앞에서 그 심연을 바라보고 있는 내 얼굴이 마주 보였다.
불안하고 무서워서 무의식적으로 보지 않으려고 했던 과거 어느 시점의 나, 누구보다도 행복하게 살고 싶었던 나, 살면서 인정받고 싶었던 나, 그러나 중간중간 있었던 상처들을 제대로 아파하지 못하고 괜찮은 척했던 나의 모습들이 그 안에 고스란히 자리 잡고 있을 거다. 그래도 이전과 달라진 게 있다면, 그런 내 모습들과 지금의 내가 다르다는 걸 인지하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의 내가 건강하길 바라는 나의 마음이, 내가 과거의 나를 용서해야 하는 이유가, 나를 사랑한 그에게 용서를 구해야 하는 이유가 그 안에 있다는 걸 안다.
사랑하고 사랑받을 줄 몰라서 주고받은 상처와, 내 마음을 있는 그대로 봐주지 못해서 만든 상처와, 채워질 수 없는 기대감에 대한 좌절에 스스로 받았던 상처들을 안은 그 아이를 찾아가서, 이제는 괜찮다고 잘 가라고 다독여 주는 작업. 시작만 있었고 실천은 하지 못했던 일을 한참 아프고 나서 다시 시작했다. 현저하게 빨리 모든 게 이뤄질 거란 생각은 안 하지만, 충분한 애도 뒤에 오는 청량감과 마음의 상쾌함은, 파랗게 개인 하늘과 닮았다. 바닥을 찍고 다시 솟아오른 의지의 불꽃이 천천히 오래도록 꺾이지 않기를. 혼자인 인생이지만 함께 하는 순간들이 찾아오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해 보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