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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난요가 Jan 02. 2019

나 홀로 인도 여행   

홀로 인도 여행에서 여유를 갖는다는 것

인도에서의 여정이 얘기치 못하게 중단되었고 한국으로 돌아온 지 거의 일주일 만에 잠다운 잠을 잘 수 있었다. 몸은 지쳐 있고 마음도 아직은 흐리지만 하늘이 보이는 거실 한쪽에 찻상을 펴고 글을 쓴다. 글을 쓰는 것도 요가의 한 벙법이다. 생각 없이 봐진다는 티브이 앞에서도 마구잡이로 솟구치던 생각들은 글을 쓰기 시작하면 차분해진다. 요가를 알고 시간이 지날수록 요가가 삶 전체에 닿아있다는 생각이다. 앞으로도 쭉 어떤 식으로 일상에서 요가를 접목시켜갈지 나 조차도 기대된다.





인도 북부 리시케시에서 요가를 배워보겠다고 '여자 혼자 인도 여행'을 시작했다. 삶이 그렇듯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 투성이었고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당황하면서도 흥미진진한 그 시간을 즐겼었다. 수십 번도 더 들었던 '위험한 인도'에서 내게 가장 필요한 것은 다름 아닌 여유였다.


인도 델리의 간디라 공항에 내려서부터 바짝 든 긴장으로 온몸에 힘을 주고 다니기 시작했다. 온통 힘이 들어가 있는 초행길의 여행자는 분명 위험하다. 인도가 위험한 이유는 인도가 위험한 것이 아니라 인도를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그 사람의 경계심과 두려움에서 나온 어색함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다. 델리에서 요가 마을 리시케시로 가는 시간 동안은 한마디로 혼돈의 시간이었다. 짐이라곤 옷가지와 책이 짐의 대부분이었던 기내용 캐리어 하나와 반도 차지 않은 배낭 하나가 전부였다. 그런데도 몸은 두꺼운 목화솜이불을 두세 겹은 둘러싼 듯 무거웠고 두 눈은 사방팔방을 훑느라 혼미 지경이었다. 지금 와서 그 모습을 떠올리니 웃지 않을 수 없다.  


반면 인도인들과 수없이 이야기를 나누고 밥을 먹고 춤을 추고 눈을 마주치는 시간이 지나니 늘어난 무게의 짐을 짊어지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시간은 그저 귀국길일 뿐이었다. 오히려 편하게 갈 수 있게 도와주는 이들이 있었다.  물론 물건 값을 올려 받고 릭샤 값을 속이며 때로는 배낭을 털어가고 터무니없는 돈을 지불하게 만드는 일들이 일어나기도 한다. 나 역시 배낭의 자물쇠가 뜯기기도 했고 흥정할 줄 모른다며 걱정의 소리를 듣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일들을 웃어넘길 여유가 생겨버린 것이다. 여유, 말이 쉽지 위험천만한 인도에서 여유는 무슨 여유냐고 물을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나도 그랬다.


바보처럼 사람을 좋아했지만 그만큼 관계 속에서 불신도 커져버린 나였다. 경험이 기억이 되어 비교의 잣대가 되는 그 순간, 경험은 인생에서 쌓아 올린 노력의 성과가 아니라 정신과 영혼을 혼란하게 하는 기억일 뿐이었다. 새로운 상황과 새로운 관계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싶었지만 머릿속은 이미 오만가지 경험의 자국들로 한가득 이었다. 지난 경험에 비추어 비교하기 시작하니 의심과 불만족을 낳을 수밖에 없었고 더 많은 것을 바라더라. 그런 나의 두려움이 '너를 믿지 못하겠다'는 말이 되어 인도 친구에게 뿜어져 나갔었다. 친구는 말없이 나를 바라보았다. 마주친 그의 망연자실한 눈동자를 다 쳐다보지 못한채 고개를 돌리며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도움과 배려조차 의심하고 긴장과 경계로 피곤해하는 내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지금 이 시간이 내게 최악의 상황을 가져온다고 해도 인도인들을 믿어보고 싶어 졌다. 물론 쉽지 않았다. 긴장과 경계로 똘똘 뭉쳐져 다니는 것이 더 쉽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나 자신을 믿지 못한 것이 인도인들을 믿지 못한 이유라 여겼고 그들을 의심하지 않기로 했다. 그러니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다.


바지를 사러 들어간 옷가게에서는 이름을 묻고 인사를 건네면서 이야기를 시작하면 짜이를 권했고 값을 흥정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걷다 허기져 멈춰선 노상의 리어카 앞에서는 파라타(인도식 부침개) 만드는 솜씨를 칭찬하니 역시 짜이 한잔을 내어 놓으며 기다리란다. 만들어 놓은 것이 있음에도 새로 만든 따끈따끈한 파라타를 맛보게 해 줬다. 간디라 공항 입장시간이 한참 남아 와인숍에 가서 술을 사고 공항에서 먹을만한 장소가 있냐고 물으니 경찰이 오면 대신 말해주겠다며 직원이 직접 따라와 다 마실 때까지 옆에서 수다를 떨어주기도 했다.  내가 겪은 일들을 위험하기 짝이 없는 상황으로 생각하기 시작한다면 끝도 없다. 인도 사람이 건넨 차에 뭐가 들었을 줄 알고, 주변에 몰린 인도인들을 네가 얼마나 안다고, 큰일 날뻔한 일을 수도 없이 저질렀다고 보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경계를 늦추지 않고 긴장을 유지하는 것 역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여행 초반에 내가 인도인들에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가장 많이 물었던 질문이 '너 나 믿어?' '내가 너 믿어야 해?'였으니까. 하지만 나의 인도인들은 듣던 것과 달랐다. 경직돼 있던 내 몸과 마음을 열고나니 얻는 것들이 더 많았다.  


여유는 개개인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살아온 환경과 만나온 관계들이 다르고 그 안에서 다져져 온 것들이 천차만별일 테니까. 인도 배낭여행을 앞두고 갖가지 정보를 수집하는 것 역시 중요하지만 자신의 강점과 약점을 잘 살펴 나만의 여유를 갖을 수 있는 방법 역시 꼭 생각해보고 가기를 바란다. 인도를 다시 가고 또 가고 싶어 하는 이유가 바로 그 여유를 맛보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인도 여행 중 여유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그러고 보니 인도친 구들을 믿고 함께 했던 시간들이 내게는 큰 선물이었다.

 


인도에서 여유를 갖는다는 것은 또 다른 요가를 하는 것이다.
인도에서 여유를 갖는다는 것은 힌두 문화를 알아가는 첫 발을 뗀 것이다.
인도에서 여유를 갖는다는 것은 내 안의 두려움에 맞설 준비가 되었다는 것이다.
인도에서 여유를 갖는다는 것은 이미 나 자신을 믿고 있다는 것이다.
오후 네시, 갠지스강에서의 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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