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의 아이들과 요가 하기
9명의 아이들이 내게 왔다. Martial arts를 배우고 있다는데 가르치는 이가 몸살이 나서 내가 맡았다. '우리 요가 하자'라고 했더니 유연한 몸으로 고난도 동작들을 먼저 보여준다. 나는 앞뒤 없이 이것저것 해내는 아이들에게 수리야나마스카라를 가르쳐 보기로 한다. 하나 둘 셋넷 순서를 말하며 아이들에게 다가가려니 제대로 될 리가 있나. 요가 홀을 뛰어다니고 소리 지르느라 정신없다. 아이들은 자기들이 보기에는 이 밋밋한 동작들이 재미없다. 그저 신나게 구부리고 피는 동작들이 하고 싶은 것이다. 그래도 시도해 보기로 한다. 나는 아이들이 보든지 말든지 수리야나마스카라를 집중해서 했다. 그랬더니 아이들이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자신들도 할 줄 안다며 외친다. 좋아 그럼 다 같이 한 번 해보자. 그런 아이들을 보며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고 진지하게 동작을 살폈다. '너희들과 내가 뭐가 다른지 다시 봐봐'하며 내가 다시 동작을 반복하니 자기들끼리 이것저것 얘기한다. 그리고 자신들 하는 것을 봐달란다. 그제야 나는 아이들의 동작을 하나하나 짚어 줬다. 물론 얼마 지나지 않아 다들 시끌벅적 제자리였다. 그래도 아이들이 내게 집중한 시간이 15분은 된 것 같다. 이 정도면 처음 치고는 괜찮다.
사실 이 아이들에게는 요가는 그저 놀이다. 신나게 놀고 놀기 위해 모이고 모여서 놀이를 만든다. 8살에서 14살의 인도 아이들은 여느 아이들처럼 에너지가 넘쳤고 나를 포함해서 눈에 보이는 도구는 모두 이들의 놀이 기구다. 논두렁의 나뭇가지와 돌멩이, 올라타기 좋은 나무들, 손이 닿는 곳이면 어디든 매달린다. 나 어릴 때의 모습이다. 인형 놀이나 고무줄놀이도 물론 했지만 목가 맞추기, 구슬치기, 딱지치기, 얼음놀이 등 공터에서 남자아이들과 뛰놀 때가 훨씬 신났었다. 해가 지면 밥 먹으라는 엄마의 외침에 마지못해 집으로 들어왔던 그때였다.
잘 놀아야 공부든 일이든 삶을 제대로 즐길 줄 안다는 혹자의 말이 떠오른다. 생각해 보니 신나게 놀던 어릴 때의 내가 있었기에 그리 영리하지도 재빠르지도 않은 내가 찾고 또 찾아가며 포기하지 않고 지금껏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한국에서는 아이들에게 요가를 가르치는 목적이 두뇌발달, 집중력 향상, 체력 증진이 대부분이다. 모두 책상과 컴퓨터 앞에서 살아남기 위함이라는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 나 역시 쳇바퀴 돌아가는 듯한 학창 시절을 보냈고 그런 생활이 늘 탐탁지 않았다. 무엇보다 정답을 찾아 맞춰야 하는 시험이 가장 싫었다. 1등도 해보고 학생 대표로 상도 받아 봤지만 답안에 4번으로 도배를 해놓고 책상에 엎드려 자던 날 만큼 짜릿하진 않았던 것 같다.
치열한 경쟁관계에서 우리 아이들이 살아남기 위해 요가가 필요하다면 당연히 함께 할 것이다. 단 경쟁의 도구가 아니라 요가와 나를 도구삼아 그들이 신나고 재미있고 서로의 에너지를 느끼며 함께 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싶다.
처음 이 곳에 왔을 때 아무것도 없던 논에는 물이 대지고 논의 벼들은 벌써 푸릇푸릇 한 뼘 이상이 자랐다. 그런데 모내기를 하는 사람들을 배경으로 우후죽순처럼 늘어난 요가학교의 학생들이 요가를 한다. 나도 요가를 배우러 왔지만 어쩐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정작 동네 주민들은 아무렇지 않다. 그저 파란 눈 흰 피부의 외국인이 신기하다. 외국인들을 돈벌이 대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대도시에서 넘어온 이들이거나 돈을 쥐고 있는 유지들이다.
그래서 논밭을 매는 이들의 피붙이인 동네 꼬마들에게 더 마음이 간다. 아이들의 순진함은 말할 것 없다. 12살 14살의 한국 아이들과 다르다. 인터넷이나 티브이를 접하기 힘들어서 몰라도 되는 것들은 모르고 산다. 많이 알아서 더 문제인 외로운 한국의 아이들보다 행복해 보인다. 떠나는 날까지 수리야나마스카라를 호흡을 더해 다 같이 할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