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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난요가 Dec 10. 2018

천천히 천천히, 안될게 뭐가 있어

인도, 리시케시에서  떠나가고 또 다가온 인연들

10년을 신었던 슬리퍼가 끊어졌고 짚으로 엮은 슬리퍼를 새로 샀다. 여행길에 늘 배낭 한쪽에 넣어 다니던 10년 지기가 리시케시 산골의 울퉁불퉁한 돌길을 더 견디지 못한 모양이다. 발등은 햇볕에 그을려 슬리퍼 모양의 자국이 남아 있고 그 자국을 가릴 다른 슬리퍼를 샀다. 아쉬운 마음도 있지만 새로 산 신이 마음에 든다.


내가 살고 있는 인도 북쪽의 리시케시, 수많은 이들이 드나드는 이 곳에서 마음을 나눴던 사람들이 떠났고 또 왔다.

함께 요가를 배웠던 친구들이 오늘로 모두 떠났다. 그리고 인도에 가족이 생겼다. 명상 선생님이자 우리가 정신적으로 보살핌을 받고 있는 rishi dham, 묶고 있는 아쉬람을  실제 경영하는 abhi, 요리와 응대와 청소 등을 맡아하는 나의 친구들 somash와 satyam, 옆모습에 자신 있는 요가 선생 shivani, 그리고 나.


요리사 somash와 내게 헤나문신을 해준satyam
갠지스강에서 친구들과

이들이 나를 가족으로 받아들였다. 아쉬람의 하루를 정산할 때, 한 달 계획을 세울 때, 반성하고 의논할 때  그들의 옆에 내 자리가 생겼다. 그리고 함께 밥을 먹는다. 그들의 언어는 대부분 힌디어이지만 이야기하고 웃고 충고하고 반성하며 서로의 눈을 바라보는 그 분위기를 느끼는 시간이 좋다.  계급의 차이를 묻고는  그에 대한 답을 아직 듣지 못했지만 각자의 역사가 만들어 낸 행동과 말과 생활문화를 존중한다.


숙박객에 불과하던 나를 그들이 가족이라 부를 때까지 내가 한 것은 그리 특별한 것 없다. 힌디어를 못하니 그들의 눈빛을 계속 보게 되고 눈과 함께 입에서 나오는 힌디어를 따라 하게 되더라는. 의미도 알지 못하는 힌디어를 제법 잘 따라 했던지 하루 몇 마디씩 앉혀 놓고 수십 번 발음하게 한다.


음식 만들 때마다 뒤에서 뭐 만드냐 묻다 보니 어느 순간 내가 짜파티 반죽을 손에 쥐고 있었다. 하루는 인도 친구가 간을 본다며 음식을 손바닥에 덜어 입으로  훅 마시길래 처음 보는 광경에 놀라긴 했지만 와우~라 외치며 눈을 크게 뜨고 쳐다봤더니 내 손바닥에도 덜어준다. 나도 입으로 후루룩 먹고는 엄지를 척 내밀었다. 좌우로 고개를 흔들며 좋아한다. 사실 인도 음식이 너무 맛있다.  김치도 고추장도 없지만 시큼하고 매운 망고 장아찌와 다양한 소스가 대신한다.  


습관처럼 마셨던 진한 커피 대신 아침 짜이, 오후 짜이, 하루 마무리로 짜이를 함께 마신다.  있는 곳이 어디든 둘러앉아 짜이를 마시는 시간이 좋다. 영국의 식민 문화가 깊숙이 파고든 것들 중 하나인 짜이는 이제 인도인의 하루 중 없어서는 안 될 영혼의 음식이다.  홍차와는 다르다. 홍차에 소나 염소 젖을 넣고 사탕수수나 설탕을 첨가한 짜이는 고되게 일하던 노동자들의 허기를 달래줬다. 차 농사와 탄광, 공장에서 일하던 그들은 잠시지만 따뜻한 짜이를 마시며 쉴 수 있었다. 그렇게 시작된 짜이는 더 이상 식민문화가 아니다. 계급에 따른 생활이 확연히 다른 인도인들이지만 짜이는 차이 없이 마시는 그들의 삶이다. 인도인들과 친해지려면 짜이를 함께 마셔라.


이들이 나를 가장 의아해했던 때는 손으로 쌀을 카레에 조물조물, 짜파티로 접시를 싹 훑어 먹었던 때다. 숟가락과 포크는 없으면 그만이다.  아직 이들에게 삼지창의 무시무시한(?) 포크는 낯선 모양이다.  손으로 만지고 손가락으로 먹는 그 기분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나. 제국주의 영국의 수많은 식사 도구 대신 아무렇지 않게 손으로 집어 먹으며 인도인들을 존중하는 내 마음을 전한다고나 할까.  손으로 먹는 것도 일종의 명상을 하는 기분이 든다. 그리고 집에서 먹어왔던 강황가루를 시장에서 구해다 달라고 해서 하루 한번 물에 타서 먹었더니 손으로 밥을 먹을 때와 같은 반응으로 다들 멈칫하며 웃었다. 인도에서 기력이 달릴 때 우유에 타 먹기도 한다는데 이제는 내가 먹을 때 따라먹기도 한다.


요가 홀에서 인도 음악에 함께 몸을 흔들다가 둘러앉아 명상을 할 때였다. 내가 이들을 떠나 가면 누군가가 또 올 것이고 나는 다른 이들과 별반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처럼 지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늘 관계 속에서 나를 힘들게 했던 기대가 꿈틀거림을 알아차렸다.


나를 떠나가기도 하고 또 어느새 바짝 다가온 인연들이 생겨나니 정신이 없다. 그래서 오늘은 홀로 숙소 앞 밭으로 나왔다.  매트를 펼치고 햇살을 그대로 받으며 몸을 움직였다. 땀이 날 즈음 부신 눈만 수건으로 대충 가리고 누워 아쉬람 식구들의 부산함을 듣는다.


기대가 힘든 이유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상대를 내가 어찌할 바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지 못한 내가 어렸거나 기대할 만한 이가 안 되는 이들이었거나. 그래서 이번에는 새로운 관계에서 기대를 하는 나와 그들을 있는 그대로 그냥 받아들이여 보기로 했다. 그래서 그런지 성격 급한 내가 그들이 늘 하는 말을 오히려 그들에게 한다. 

'Slowly Slowly'  'why not'. 그러다 외로워지면 외로운 대로 그렇게 지내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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