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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난요가 Dec 23. 2018

인도, 그리고 나의 친구들

 안녕 대신 하리 옴 Hari Om

한 달의 여정이 남아 있지만 급히 귀국하는 비행기 안이다. 이렇게 빨리  되돌아갈 줄 모르고 리시케시에 더 머물러야 할지 고민하던 그간의 시간이 떠오른다. 고민의 이유도, 머무르기로 결정한 이유도, 관계 안에서의 나와 상대에 대한 진심을 믿느냐는 문제였다.


아침나절에 갑자기 들이닥친 경찰이 호스텔 관리인을 압송했다. 뉴델리에서 온 경찰들이었다. 외국인 여성을 대하는 주인의 태도가 지나치게 친절하다 싶었다. 개인의 취향이든 어떻든 애초 나에게는 경계의 대상이긴 했다.  그는 요기라는 타이틀을 달고 러시아 여성과 교제를 했고 이 호스텔을 빌려 운영할 자금을 여성에게서 받아 쓰고 돌려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인도 대통령의 사진을 도용해서 유명인임을 사칭했단다. 신고는 그녀가 했다는데  얼마나 마음이 피폐해 졌는지 그녀의 집착도 심했다.


어느새 숙소의 외국인들은 다 떠났고 나와 인도인 커플만 남았다. 옆방에 있다가 떠난 (셈에 유난스럽던) 중국인 친구는 하루가 멀다 하고 메시지를 보냈다. '왜 아직도 거기 있느냐,  난 인도인을 믿지 않는다, 걱정된다 밥은 먹었느냐, 제발 조심해라.' 외국인이 많은 리시케시에서 실종된 사람을 찾는 광고가 심심치 않게 들리기도 했고 온라인 상의 어두운 댓글들을 읽은 데다가 중국 친구의 문자 공세에 갑자기 이 곳의 사람들과 함한 시간들이 공포로 밀려왔다.


내가 안정적인 마음을 갖지 못한다면 더 이상 이 곳에 머무를 이유가 없었다. 중요한 문제였다. 나는 친구라 부르는 인도인들을 믿고 있나? 믿는다는 것이 뭘까. 호스텔 주인에 대한 실망은 없었다. 기대가 없었다. 다만 그런 주인의 결백을 믿는 내 친구들까지 의심하게 만든 이 상황이 정말 싫었다.


생각을 정리하는 동안에도 몇몇의 마을 유지들이 다녀갔고 나는 인도 친구들과 일부러 더 자주 짜이를 마셨고 밥을 먹고 얘기를 나눴다. 카레가 담긴 대접에 세명의 오른 손가락들이 담가졌고 한 개의 짜파티를 찢어 나눠 먹는 시간이 그들에게는 믿음의 시작이었을까.  그런 내가 아직까지 남아있는 계급이 만들어 낸 금기를 훌쩍 넘어 이들의 마음을 움직였던 모양이다. 친구들은 시간이 갈수록 속 얘기를 내어 놓았다. 자신들은 아무도 믿지 않으며 자신들을 이해해주는 사람은 너와 마마(60대 서양 여성) 뿐이란다.  앞날을 얘기하고 꿈을 이야기하는 이들의 진정성을 알았고 너는 우리를 믿느냐는 물음에 답은 했지만 미안함이 앞섰다.

밥때가 되면 내 방까지 올라와 손수 요리한 음식들을 함께 먹자는 내 친구들이 이곳에 있었다. 그들과 먹고 얘기하고 걷고 운동하는 시간들을 의심할 여지는 없었다. 그리고 그런 나를 믿었다. 진심이든 아니든 인도 친구들이 나를 대하는 그 시간 그 행동들은 나를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다시 주인 없는 호스텔에 인도 친구들과 생활이 익숙해질 즈음 언니로부터 메시지를 받았다. 할아버지가 위독하시단다. 메시지를 받자마자 귀국행 비행기를 새로 예약하고 날짜와 시간을 조정하느라 정신없던 내게 친구들이 무슨 일이냐 묻는다. 할아버지가 많이 안 좋으셔서 급하게 귀국해야 한다는 말에 친구들도 안절부절이다. 저녁을 먹자는데 속이 안 좋아 먹고 싶지 않다고 하니 짜파티 한 개만, 아니면 정말 한 입만, 것도 싫으면 1분만 앉아 있다 가라며 기어코 밥상머리로 끌어내는 친구들이었다. 내 고집이 이렇게도 꺾이는구나. 가서 보니 내가 만들어 먹던 매운 다진 양념까지 대령해놨다.


떠나기 전날 밤 할아버지와 가족들 생각에 잠들지 못한 내 울음소리를 들었는지 친구 둘이서 하지도 않던 짓을 한다. 새벽부터 하리 옴 만트라를 2층 내방까지 들리도록 크게도 틀어 놓는다. Man-tra 깊은 생각을 도와주는-도구. 구슬픈 듯 꾸짖는 듯 어르는 듯 느껴지는 소리에 일어나 앉아 말라(염주)를 손에 쥐어 굴리며 따라 읊었다. Hari Om Hari Om Hari Om~. 뜨겁고 차갑고 가 가슴과 배를 따라 몇 번이나 왔다 갔다 한다. 

주인이 부재인 호스텔을 지켜야 한다며 전혀 움직이지 않던 친구 Somash. 내가 급하게 델리행 국내선 비행기를 타야 한다니까 노프라블름!하며 편도 40분이나 걸리는 거리를 오토바이로 바래다주었다. 그리고 나를 위해 크리스마스날  케이크와 맛난 음식으로 함께 보낼 계획이었다던 인도 커플은 직접 만들고 포장했다면서, 급하게 만드느라 포장이 상자가 아니라 미안하다며 귀걸이를 내민다.


몸 둘 바를 모를 내 마음을 어찌해야 할지 모른 채 친구들의 과분한 마음을 받아 안고 그렇게 할아버지를 뵈러 한국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이다.

비행기 안에서도 말라를 쥐어본다. Hari aum-모든 속박과 고통을 제거하고 우주로 돌아가는 길이 되기를. 그리고 왠지 모든 것이 할아버지의 덕분인 것 같다. 전날 저녁 갠지스강을 바라보며 할아버지를 기억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유학시절 하루도 빼놓지 않고 안부와 격려를 물으셨던 할아버지가 계셨기에 인도의 요가 마을에서 하루하루를 잘 넘겼던 것 같다.  정말 그렇다. 그때는 몰랐지만 이제 와 생각하니  할아버지께서 염두에 두신 것이 그것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기숙사 방의 전화기 앞에서  할아버지의 전화를 기다리는 그 시간이 단순한 기다림이 아니었다. 연고 없는 유학생활에서 나처럼 호기심 많고 사람 좋아하는 이가 긴장이 풀리면 그것처럼 위험하고 무서운 게 없었을 것이다.


인도 리시케시의 ganga에 내 다짐 들을 띄워 놓고 오기로 했는데 지키지 못해 아쉽다. 아쉬움이 후회로 남기 전에 다시 시작을 위한 발판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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