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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난요가 Nov 24. 2018

나는 한국인입니다

리시케시에서 평화와 통일을 말하다


낙타 자세를 설명하고 있는 나

두둥~ 오늘 드디어 teaching시험을 봤다. 함께 배운 사람들을 직접 가르치는 시험이다. 그간 고군분투하며 보냈던 시간의 결과물이기도 해서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었다. 강사의 허락 하에 일본, 중국 친구들은 자국어를 섞어서 했지만 난 그러고 싶지 않았다. 수다와 일광욕의 여유도 마다하고 방에 들어와 책을 펴고 녹음한 강의를 듣고 들었는데 한국어로 하기에는 면도 서지 않았고 열심히 한 티도 내고 싶었다.

결과는 만족스럽다. 완벽하지도 않았고 완벽할 수도 없었지만 나도 친구들도 함께 내 수업을 즐겼다. 마지막 스트레칭에 넣은, 그들에게는 처음 해보는 모관운동이 한몫했다.  팔다리를 천장으로 향하고 흔들어대는 서로의 모습에 다들 웃음이 터졌다. 2분을 지속시켰더니 다들 힘들어하면서도 흔들어 대는 모습에 또 한 번 웃었다. 내가 짠 수업 내용을  공유하고 싶다고 보내 달라니 더 바랄 것 없다.


그리고 수업 시작 전 알려 줬던 한국말 두 마디.

"평화여 오라! 통일이여 오라!"

평화와 통일을 말하다

Asana 요가 동작은 영어로 했지만 내가 한국인 임을 각인시키고 한국말을 알려주고 싶었다. 시간은 45분으로 정해져 있고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설명을 또 해야 하니 어떤 말을 할까 고민하다 정한 두 마디다. 내 수업을 듣기 위해 앉아 있는 친구들은 서툴지만 잘 따라 해 줬고 나는 세계 유일 분단국인 한국에 대해 짧게 설명했다. 이 두 마디가 훗날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떠오를지 모를 일이다. 모르긴 몰라도 한두 명은 이미 검색 창에 korea나 unification을 써넣었을 것 같다.  시험 후  깐깐한 일본 친구는 에스프레소를 사주며 시간을 할애했고, 스페인에서 온 mel은 통일과 평화에 대한 얘기가 정말 감동적이었다고 말했다. 동양인 중에 일본인과 중국인이 압도 적으로 많은 리시케시에서 나를 한국인으로 알아주는 것만으로 되었다.



오늘 나는 이들을 가르친 게 아니다. 시험을 마치고 돌아가며 좋은 말들만 해줘서 내가  답했다.


'난 솔직히 이 과정을 지속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어. 철학 수업 첫날에는 들리지 않는 말이 더 많아서 말문이 막혔어. 그런데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이렇게 있을 수 있는 건 당신들의 넘치는 에너지가 내게 닿았기 때문이야. 이건 분명해. 당신들은 매일 나를 격려했고  웃음을 줬고 방에서 쉬겠다는 나를 어르고 달래서 어마한 경험을 선물하기도 했어. 어떻게 말해야 할지,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 정말 고마워. 내가 아니라 당신들이 정말 대단해!'


사실이다. 열심히 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나는 고작 잘해보려고 했다면 다른 이들은 즐기려고 노력했다. 3주가 지나자 몸도 지치고 마음도 틈을 보이기 시작했다. 알람 소리도 듣지 못하고 일어나 허겁지겁 나가던 날에는 윗도리가 뒤집어진 줄도 모르고 하루를 보낼 정도였으니까. 그런 날들도 그들은 어떻게든 즐거운 분위기를 만들어 냈다. 내가 운이 좋았다. 수많은 요가 학교 중에 이들을 만나서 함께 하다니!


이들 중 엄마 나이 즈음으로 짐작되는 분의 시험이 있던 날에 내가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teaching이 끝나면 나머지 사람들이 돌아가며 느낀 점을 말해 주는데 내가 말할 차례가 오자 울컥하는 게 아닌가. 쉽지 않은 수련 시간들이 스쳤고 아들과 함께 와서 배우는 모습을 보니 엄마 생각도 났고 고마움 때문이기도 했다.  내가 울먹이며 말을 잇지 못하니까 다들 따라 울거나 눈시울을 붉혔다. 그 모습을 보며 서로 웃음이 나서 또 같이 웃었다.



공교롭게 내가 끝에서 두 번째로 시험을 봐서 이제 같이 할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딱히 고마운 마음을 표현할 다른 방법이 생각나지 않아 철학 수업 시간에 집에서 가져온 김을 가지고 갔다. 정성이 들어간 음식을 나누는 것만큼  좋은 게 없을 것 같았다. 나보다 먼저 인도를 경험하고 오신 고모님께서 손수 사다 양념해서 싸주신 김이다. 반응이 어마 하다.  집에서 만든 거라니 더 놀라워한다. 이게 뭐냐며 묻는 친구들에게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김을 아는 이들이 handmade라고 칭찬하며 어디서 나고 무엇인지 알아서들 설명한다.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교실 안에 퍼졌고 나는 오늘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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