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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난요가 Dec 02. 2018

사바사나 savasana

명상하며 울음 태우기

요가 교육기간이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모두들 지친 모습이 역력했지만 새벽부터 시작하는 수업에 빠지는 이들은 없다. 명상은 오히려 더 깊어지는 듯했다. 그런 우리를 배려해준 걸까. 오후 아사나 수련시간에는 relax yoga로 몸을 좀 쉬어주기로 했다.


Savasana, 송장 자세라고도 하는 요가 자세다. 쉽게 설명하자면 매트에 편하게 누워 온 몸을 쉬어주는 자세다.  지친 몸을 잠재우기 전이나 격한 요가 동작을 마치고 사바사나로 마무리하곤 한다.


길게 누워  일부러 호흡을 안정시키고 안정된 호흡이 익숙해지면 온몸에 힘을 뺀다. 발가락부터 손끝을 지나 머리 끝까지 찬찬히 집중한다. 어떤 때에는 한없이 가앉는 몸을 느낀다.


오늘은 피곤해서인지 깜박 잠이 들었다. 그리고 생각을 멈추려고 호흡에 다시 집중해보지만 여지없이 파고드는 기억들이 있다.



#
내가 스물여섯 되던 해 할머니의 죽음을 들었다. 정적이 흐르던 장례식장 할머니 영정 앞에서 엄마가 목놓아 우셨고 그 울음에 가족들은 흐느꼈다.  발인 날에는 가족 모두가 통곡했다. 갑작스러운 할머니의 임종이 믿기지 않았다. 그래서 그랬는지, 거짓말이겠지만 내손이 닿은 할머니의 이마는 차갑지 않았다. 

할머니는 그녀 앞에 서 있는 가족들에게서 울음이 터져 나오게 했다.  모두가 서럽게도 울었다. 지르는 울음에 놀라 깨어나실 것만 같았다. 가족들의 통곡에는 그녀를 더 이상 볼 수 없는 슬픔에 더해 서로에 대한 애증, 채워지지 않는 외로움과 욕망, 그리움, 서러움, 공허함 등 온갖 것들이 섞여 있었다. 그날의 울음이 잊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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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리시케시, 우연히 들른 곳에서 내가 한국인임을 알아보고 그녀가 울컥해서 눈물을 보였다. 생전 처음 보는 나를 앞에 두고 말이다.  훗날 그녀의 역사 속에 잘 보이지도 않을 티끌만 한 나를 점찍어 놓고 눈물을 보이다니. 이 순간이 정말 어마하다.  눈물을 보이면 나약해 보이는 것 같아서 싫었다. 울고 싶지 않은데 이미 흐르고 있는 눈물 때문에 짜증이 났었다. 그런데 오늘 내 앞의 그녀는 그런 나와 다르게 강하고 멋져 보였다. 그녀의 눈물은 자신이었고 용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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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커다랗고 잎이 많아 반짝이는 나무였다. 그 아래에 서면 무서울 게 없었다. 그랬던 아빠였다. 어느 날은 엘리베이터에 나란히 서서 거울에 비친 아빠와 나를 봤다. 커다란 나무 같던 아빠의 키를 내가 먹고 자란 것인가, 유난히 작아 보이던 아빠.

겨울날 시골집에서 아빠의 품에 작은 몸을 집어넣고 추운 줄 모르고 자던 때가 있었다.  시간이 많이 흐르고 울고 계시는 아빠를  다독이는 내 품을 갖고 있었다.


아빠의 눈물은 싫다. 시간이 지나 작아진 아빠의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다. 아빠는 그냥 계속 커다란 나무였으면 좋겠다. 



#

엄마. 엄마의 눈물은 더 싫다. 내 옆에서는 절대 울지 않으실 것을 안다. 하지만 이젠 내 옆에서만 우셨으면 좋겠다.



갠지스강에서 울음을 태우다


다시 호흡에 집중한다. 어느새 흘러서 말라있는 눈물에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호흡이 빨라져 있다. 울렁이는 감정 때문이다. 다시 상념이 파고들기 전에 우짜이(ujjayi) 호흡으로 집중한다. 목에서 나는 거친 소리와 폐로 들고 나는 숨을 알아차린다.   히말라야의 세찬 바람소리에 내가 있는 곳을 상기시키고 savasana 송장 자세를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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