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람난요가 Nov 13. 2018

리시케시에서 '함께'란

경계를 넘어 다른 경계 안에서의 자유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가 힘들어할 때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내가 곁에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 최선이었다. 어떤 식으로든 내게 손을 내밀면 최선을 다해 무엇이든 도와줄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원하지 않는 도움은 상대의 자존감만 해칠 뿐이었다.  상대가 원하지 않는 한 방법을 제시하는 것은 함께하는 것이 아니었다.

함께 맞는 비. 신영복 선생님의 글귀다. 내 우산 안의 한켠을 내어주어 내리는 비를 함께 피하는 것이 아니라 우산을 접고 비를 같이 맞는 것이 진정 함께하는 것이라는 글이다. 정말 어려운 일이다. 읽으며 고개를 끄덕이긴 했지만 실제 상황을 맞닥뜨리니 어찌할 바를 몰랐다. 내 마음 좀 더 편하자고 무조건 들이밀 수가 없었다. 어떻게든 도와주고 싶었지만 무엇도 해줄 수 없다는 현실에 지금도 생각하면 목이 멘다. 그렇게 함께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님을 절실히 느꼈다.


속해 있는 직장이나 단체에서는 어떤가. 비를 같이 맞아주기는 커녕 자신의 실수를 가리거나 능력을 돋보이게 하는 화려한 우산의 사람들이 많다. 개인의 상황과 처지는 안중에 없는 상하 전달식 지침들 역시 많다. 수직적 관계와 주입식 교육으로  훈련된 사람들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침묵한다.  노동조합이라는 단위로 권리를 주장 하기도 하지만 쉽지 않다.


시도 때도 없이 조직을 나와 곳곳을 나다니며 홀로서기를 반복했던 나는 학연, 지연, 혈연 등으로 엮여있는 지역 사회에서는 경쟁력이 없다(아직은). 남들은 잘 다니는 직장을 허구한 날  바꿔가는 내가 나도 미울 때가 있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나는 늘 최선을  다하고 싶었지만 다하지 못했고 그 이유를 찾을 수밖에 없었다. 돌고 돌아 시간이 오래 걸려도 말이다. 그리고 그 시도의 방향은 내가 머무르는 지역 사회에 도움이 되는 존재로 살기 위함이다.



잔디밭에서 요가 asana 자세 교정 수업

멀리 떠나온 이곳 리시케시의 요가 마을에서는 어떤가. 나이도 직업도, 알아도 모르는 어떤 연고도 묻지 않고 함께 시간을 즐기고 다시 혼자로 돌아간다. 서로에게 그 어떤 집착도 소유도 없다. 그냥 존재할 뿐이다.  다들 혼자다. 나 역시 혼자다.  그리고 이들은 묻는다. '같이 비를 맞아도 될까, 싫다고 해도 괜찮아.' 그들은 생각지도 못한 제안으로 나를 놀래키기도 했다. 다양한 문화가 모여 접촉하니 생각도 다양하게 변한다. 그리고 그런 다른 개인의 생각을 공감한다. '그 상황에서의 너의 생각은 싫지만 너는 좋다.'가 가능하다. 여행지라서 가능한 것은 아닐 것이다. 한국에서는 개인주의가 이기적이고 다소 단절된 인간성으로 여겨지지만  잘못된 것이다. 상대의 의사를 분명히 알고 존중하는 것이 개인주의다. 비를 함께 맞기 전에 괜찮은지 물어볼 수 있다면 상대의 생각을 더 잘 이해하고 다양한 상황과 관계를 받아들일 수 있지않을까.


갠지스강에서

개인주의와 가장 가까운 단어가 자유다. 그래서 누구나 혼자 하는 여행에 앞서 분명 자유라는 단어를 떠올렸겠지만 우리 모두 기존의 테두리 안에서 떠나와 새로운 테두리를 경험하고 있는 것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떠나온 곳에도 경계와 한계는 있다. 조직과 무리에서 강제하는 '함께'가 없는 곳에서 자유롭게 함께한다.  낯선 곳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서로를 인정한다.


자유롭게 함께해서 얻는 게 무엇이냐 묻는다면  내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수많은 상황 중에서 내가 가장 나다울 수 있게 선택하는 방법을 적나라하게 훈련할 수 있다고 말하고 싶다. 제대로된 개인주의를 연습하는 것이다. 내가 내 생활의 주인이다. 아무도 참견하지 않지만 혼자가 아닌 상황에서 사소한 것들을 스스로 고민해서 선택하고 결정하게 만든다. 직장이나  조직에서 처럼 눈치 보며 흐름을 따를 이유가 없다. 각자의 특성을 공감하며  같이 한다.


기존의 테두리 안에 머물지 않고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주체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임은 틀림없다.  성장을 막는 한계에 맞서서  끊임없이 시도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기도 하다.


자유롭게 함께하고 있지만 더 혹독하게 나를 다 잡으며 존재를 확인하고 있다.





이전 03화 살아가기 위해 머무르는 나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