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를 대우하기로 했다

- 그래야 성장할 수 있다면

by 우인지천

우리 어릴 때만 해도 자존감이라는 단어를 들을 수 없었다.

학창 시절에 선생님의 체벌이 심심치 않게 일어났다. 마치 영화 친구의 한 장면처럼.


"너그 아버지 뭐 하시노?"


같이 학교를 다닌 학생 중에 한 명은 아버지가 국회의원이셨다.

친구들끼리는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었지만, 선생님들이 그 친구를 대하는 건 남달랐다.


그런 분위기이다 보니, 평범한 학생들은 선생님이 매를 들어도 당연히 받아들였다.

그때는 그랬다.


하지만, 지금은 있을 수 없는 행동으로 간주된다.

그만큼 초등학생의 자존감, 인권에 관한 주제가 공론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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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되려 선생님들의 자존감과 인권에 대하여 고민해야 할 시간이 되었다.

"내가 대우받으려면 먼저 상대방을 대우하자"는 사회적 운동이라도 전개되어야 할 듯하다.


20여 년 직장생활 후 퇴사하니, 자존감이 많이 떨어지게 된다. 지인들에게 먼저 연락하는 것도 주저하게 된다.

다른 퇴직하신 선배님들의 브런치 글들을 보니, 나만 겪는 문제가 아니라서 그나마 위안으로 삼는다.


이제는 단지 위안에 머물지 않고, 스스로를 대우해 주려고 한다.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데, 누가 나를 사랑해 주겠느냐는 얘기도 있지 않은가?

그동안 열심히 살아온 것을 스스로가 응원하고, 앞으로 다가 올 미래도 잘할 것이라고 격려해 주기로 했다.


소속감도 없고, 만나는 사람에게 건넬 명함 한 장 없지만, 이것이 내가 나를 무시할 이유는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지금부터 다시 20년 업으로 삼을 무언가가 찾아가는 과정에서, 스스로 당당하기로 했다.


20년 직장 생활에 이어서, 다음 20년 먹거리를 찾아가는 과정의 과도기에 있는 것이다.

20대에 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을 준비하던 것처럼, 지금도 준비의 시간일 뿐이다.


그때는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시스템 안에서 취직을 하는 게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이제는 그 울타리 너머까지 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고, 시대 흐름 속에서 나의 적성을 찾아가려 한다.


그래서 욕심을 내 보기로 했다.

꼭 도심이 아니더라도, 자연을 벗하고 생활을 하면서도 할 수 있는 일을 무언가를 찾으려고 한다.


아직은 낭만적이고, 결이 맞는 지인들과 함께 성장하려는 마음이 강하다.

생각보다, 온라인에서 같은 의도를 가진 사람을 만나는 게 그리 어렵지 않다.


물론 그 과정에 생각지 못한 장애물을 만나기도 하고, 뜻밖의 난관에 부딪힐 수도 있겠지만,

'잘해 낼 것이다'라고 스스로를 응원하면서 앞으로 나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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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는 차원을 넘어서,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면서 나이가 들어갈 수 있기를 바라본다.


그렇게 퇴사 후 시작하는 일의 의미, 가치를 만들어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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