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녀의 판타지. 상상력 느긋하게 놀아주기-
내 어린 시절, 어떤 이는 나를 코 납작못 생긴 여자라 시집 도 못 가 평생 독신으로 늙는다 했고 , 어떤 이는 최초 여류 검판사가 될 똑똑한 여자라 칭찬해 주었다.
나는 어찌 되었을까, 누구 말이 맞았나?
며칠 전에 손녀랑 여동생 아들 결혼식에 같이 갔다. 조카는 처음으로 서는 결혼 무대에 떨거나 긴장감 하나 없이 레드카펫 걷는 영화배우처럼 여유 있게 손까지 흔들면서 신랑 입장을 했다. 손녀는 가르쳐 주지도 않았는데 손뼉 칠 때를 알아 열심히 박수를 쳤다. 영화 속 명 장면의 주연배우들 같았다. 당당하고 자신감 백프로다. 일상 하나하나가 자기 인생 영화 중 한 씬처럼. 그러고 보니
조카는 초등학생시절에 이미 스타였다. 남자아이는 짧은 머리가 정답이고 대세인 세상에서 여자처럼 긴 장발하고 다녔다. 당연히 자기와 다르면 기분 나빠 간섭하는 세상의 모든 참견장이들에게 많은 지탄을 받았고 스트레스를 엄청 받았다. 하지만 꿋꿋이 긴 머리 날리며 유년 시절을 지냈다. 세상 중심이 아니라 자기 스타일대로 살기 때문에 어디에서나 당당하다. 자식의 고집에 밀렸다 생각했는데 조카 나름의 생각을 존중해 준 동생 부부의 긍정적 육아 태도가 숨어있었던 것 같다.
긍정적인 언어 육아의 씨앗은 반드시 긍정적인 꽃
으로 피어 긍정적인 에너지로 품어내고
부정적인 언어 육아의 씨앗은 반드시 부정적인 꽃을 피워 나와 주변을 다 힘들게 한다.
-에구.. 저.. 00 저 코납작이는 누가 데려가기나 할까-
자 찍어요. 누구 결혼이었는지는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신부대기실이었다. 대기실은 사진 찍느라 몹시 분주했다. 카메라가 흔하지 않을 때라 홀로 쵤영하는 사진사는 바빴다. 겨우겨우 기다려 우리 다섯 자매들의 포토타임이 막 시작되는 참이었다. 평소에 재수 없는 말만 해서 싫었던 큰 이모다.
갑자기 나타난 큰 이모의 말에 순간 썰렁해지고 일제히 시선이 내게 돌려진 상황에 나는 죽고 싶을 만큼 쪽팔리고 부끄럽고 상처도 입었다.
내 충격과 상처는 나에게 깊고 깊은 상처를 남기고 그때부터 내 자존감은 나락으로 떨어져 나 스스로 코납작이 못생긴 여자라고 자학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니 눈과 보조개는 이쁘다고 해도
- 이 씨 집안에 판검사 될 사람 은 너뿐이여-첫 여판사가 될 거야.
명절 때 우르르 몰려간 친척아이들 사이에 유독 나만 따로 찬방에 불러
잘근잘근 두드린 오징어를 달걀물을 묻혀 잘 부친 오징어 전, 살짝 손에 힘주어 찢으면 주욱 가로로
찢어지던 오징어 전을 나만 은밀하게.. 세뱃돈도 다른 아이들과 달리 큰돈을 주셨고 특별 대접을 해주셨던
사촌 숙 모 님.
코납작이 언어의 씨앗은 늘 내 마음에 열등감과 성형수술을 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의 가지를 치다가
그래도 끝내 수술은 안 해서 유일하게 가위질 안 댄 제멋대로 자란 천연기념 나무로 남았고
언어의 발원지인 이모는 큰 아들 빼고는 자식들 인생이 잘 풀리시지 못했다. 막 관계가 시작되는 세 살 무렵
이모의 언어는 조카인 나에게 했듯이 자식들에게도 부정적이지 않았을까?
아무튼 이모의 예상은 빗나갔다. 나는 결혼을 했으며 자식이 둘이나 된다
사촌 숙모님은
내 온몸으로 그분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으려 애를 써서 공부를 열심히 했다. 판 검사는
되지 않았지만 내 공부의 사분의 삼은 그분의 인정에 부응하는 내 노력이었다
그렇다고 과장하라는 말은 아니다.
이왕이면 좋은 면을 칭찬해 주자는 것이다.
"영어책? 아니야 영거책"
"영거책 아니라니까, 영어책. 영어책"
"아니야 영거책"
"졌다. 그려 영거책 "
손녀도 손녀 나름의 판타지가 있다.
손녀의 서재에는 각종 동물들이 주인공인 영어 동화책 이 시리즈로 있었다. 선물로 받은 거다
중요한 손녀 첫 영어말하기를 망칠까 봐 그냥 책장에 넣어둔 채로 먼지만 쌓여가고 있는 참이었다.
어느 날 그 책을 그릇 씻듯이 장난감 샤워기로 마구 씻어내는 흉내를 했다.
영거책을 씻어야 한다고... 커버는 하나씩 또 다 벗겨서 말리고 아니 말리는 시늉을 하고
그러더니 나를 손녀 앞에 앉으라 하고
" 이거는 여우입니다. 여우 주.. 세.. 요"
나에게 방바닥에 흩트려 놓은 책커버에서 여우를 찾아 다시 달라하더니 다시 커버를 입힌다.
아이고.. 50권이란 책 커버 벗기기도 힘이 들었는데 이제 다시 짝 맞추어서 다 한 권씩
입히라고!!!!
그러나 워낙 손녀가 진지하게 열심히 하고 있어서 낄낄 거리며 그 상황에서도 유쾌하게
"일어섯. 준비. 나와주세요
이쪽 줄 서세요"
손녀의 선생 놀이에
"네 문희 선생님"
대답하고 선생님 놀이를 한다
쓰다 보니 알겠다.
아이도 아이 나름의 판타지가 있다.
그걸 낡은 우리 사고로 좋고 나쁘고 옳고 그르고 판단하지 말자.
그냥 아이 생명 안전에 위험이 안되고 남에게 피해 안 되는 즐거운 일은 지켜봐 주자/
인정하고 느긋하게 기다려 주는 것. 엄마 아빠는 바빠서 못하는 그런 일
우리에게 있는 것은 시간뿐이지 않는가
할머니 할아버지의 육아는 느긋하게 지켜봐 주고 기다려주고 인정해 주는 것.
영거책을 얼마든지 찾아주마! 백권이라도
니 판타지를 중간에 끊지 않고 느긋하게 지켜 봐 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