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델마와 루이스처럼-
급성 장염이셨다. 쏟아지는 설사. 느려진 몸은 화장실 갈 때까지 참지 못하고 방바닥에 쏟으셨을 것이다. 진즉에 거.. 머 팬티 기저귀 라도 준비해 놓았으면 좋았을 걸 후회도 하셨으리라. 요즘 들어 자주 설사뿐 아니라 소변도 그냥 새기도 했는데 나이 드니까 당연한 거라 넘기신 걸 후회하셨으리라. 처음엔 어떻게든 치워보시려고 화장지며 물휴지며 빨아서 말린 수건 걸레며 방바닥을 닦으려 하셨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 더 이상 막지 못하고 기진 맥진해서 침대로 가서 누웠으리라. 침대에 누웠어도 눈을 감고 있으면 냄새가 진동하고 눈을 뜨면 화장지, 벗은 속옷으로 흐트러진 방은 아무리 자식이라도 보여주기 싫은 풍경이었으리라.. 아들 오기 전에 빨리 치워야 할 텐데..
도와줘.
그러나 꿈쩍도 않는 몸, 속수무책이 되어 그래도 아들보다는 만만하고 편한 딸에게 전화 걸으려 했을 것이다. 1번 2번 3번 4번... 엄마의 핸드폰은 저렇게 단축번호로 저 장 되었다..
단축번호 서열이 엄마의 애정 순서인 건 당연한 일. 제일 중요한 아들이 1번이다. 나? 3번쯤 될까?
큰 언니는 행여 치매 걸릴까 봐 치매 예방제를 열심히 챙겨 먹고 있는 본인 자신이 돌봄을 받아야 할
80대 노인이시다. 둘째 언니 먼 먼 서울에 계시며 언니 역시 도움이 필요한 팔십 대 가까운 노인이다. 나 또한 같은 지역이지만 시골호숫가라 교통이 불편한 데다 도움이 필요한 환자다. 아마 같은 도시에 거주하는 넷째 나 다섯째에게 전화 걸으셨으리라.
그러나 모두 전화를 안 받았고 그날 어쩔 수 없이 눈만 멀뚱멀뚱 떠서 속절없이 아들만 기다려야 했던
엄마 마음은 참담하였으리라
그날 아들은 다른 날보다 더 일찍 문안 인사를 왔고 단정했던 방이 아수라장이 된 방안 풍경에 공포심과 두려움과 슬픔에 비명을 지르며 누나들에게 상황 보고를 했으리라.
인생은 끝까지 날 희롱하고 놀린다. 머? 품격? 100세 인생?
자식들에게 둘러싸인 100세 엄마는 만사가 귀찮다는 듯 아무 말도 안 하고 누워만 계셨다.
병원에 가자는 자식들 말을 단칼에 잘라서. 그냥 이제 죽어도 된다고.
요양원, 요양병원 가는 거라면 난 안 간다.
막연히 요양병원에서 진찰과 치료한 후에 이제 요양원을 가셔야 하는 때가 온 거라고 생각한 참이었다
남들 하는 것처럼. 그런데 절대 안 가신다고 하시니. 슬쩍 한 발 물러나 그럼 그렇게 하시라고 의견을 모아
정리 한 참이었다.
그런데 제일 늦게 도착한 막내는 소리소리 지르며 이렇게 다 죽어가는 노인을 그냥 둘 거냐고.
우리 가면 또 혼자인데.. 당장 119 구급차를 부르라고 했다
막내는 이렇게 혼자 내 박쳐 놓으려면 요양원이 훨씬 낳다고 언니들을 나무랐다.
째-- 만 내는 인생.
절인 배추에 김치 다진 양념을 척척 바르는 손 대신
우아하게 차 우리며 노트북 두드리는 일을 더 좋아하는 손을 가진
나는 저 막내 여동생의 험담에서 항상 저렇게 까였다. 재만 내는....
물론 발끈했다. 그렇지 않아도 김장철이 되면 이상한 열등감에 우울한데... 원플러스 원 우울을
선물 받았다고 생각했으니까
다음에.. 다음에.. 언젠가 할머니가 되면 친정 엄마처럼 김장도 쓱싹, 손주들이 좋아하는
팥죽도 후다닥, 고사리, 숙주나물.. 그 재료 손질도 복잡한 육개장도 한 솥 펄펄..
그럴 줄 알았다. 그러나
할머니가 된다 해도 절대로 나아지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뿐인가 이제 몸이 망가져
결혼한 딸 냉장고에 들어갈 김치통도 딸 이모들인 동생들 김치로 구걸하듯 채우는 나 자신이 한심해서
우울한 참인데......
"엄마 냉장고에 머가 들어있는지 아느냐?"라며 먹을 거도 제대로 안 챙기는 걸 비난하는 듯한
동생의 질문은 나를 더 열받게 했다
"그럼 너는 오늘 양로당에서 엄마가 신참 할머니와 자리싸움으로 기분 상한 일을 아느냐?"
라고 속을 쑤시는 대답 하려다 너무 졸렬한 것 같아
"너는 지금처럼 니식으로 잘하면 돼."
"강요하지 마 다 각자 지금이 최선이야"
라고 마무리했다.
냉장고 이야기는 엄마의 먹거리 점검이니 몸에 대한 이야기고
자리싸움 이야기는 엄마의 마음에 대한 이야기다
냉장고 열고 먹을 것 점검하는 자식과 엄마의 마음을 살피는 자식
누가 더 효녀인가?
결국 119는 왔다. 일반 병원을 거쳐 요양병원에 입원 중이시다
아직 결정된 것은 아니다. 엄마의 다음 공간이 어디일지..
늘 희생과 자식들 눈치만 보고 살아온 엄마. 엄마는 자기 욕망을 부끄러워하고
진짜 속마음은 숨긴다. 그래서 엄마의 언어는 번역이 필요하다
델마와 루이스라는 순응하지 않고 저항하여 자신들 만의 길을 간 미국 영화 속의
여자 둘을 엄마의 여행길에 동행하여 통역사로 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