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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범한츈 May 31. 2022

일 잘하는 친구가 회사를 떠났다.

회사를 떠나는 4가지 이유들


며칠 전 나와 근 4년 동안 우리 팀에서 함께한 디자이너가 회사를 떠났다. 그 친구는 디자인 감각은 물론이고 일하는 태도가 참 좋았다. 특히 나와 출근시간이 맞아서 아침마다 ‘선임님 커피 드실래요?’라고 자주 물어보았고, (꼭 같이 마시지 않더라도 물어봄) 내가 바쁘게 보이면 항상 ‘선임님, 제가 뭐 도와드릴 건 없을까요?’하고 먼저 물어보는 참 기특한 동료 디자이너였다. 그러던 그가  회사에 입사한 지 8년 차에 우리 회사를 떠났다. 그가 떠난 지 일주일째, 덩그러니 비워진 옆 자리를 보고 있으면 아직 여름휴가를 떠난 것 같이 언젠가는 돌아올 것 같은 느낌이 들지만 그가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면 아직도 실감이 안 난다. 그는 왜 회사를 떠난 것일까? 이것저것 내가 추측해본 네 가지 이유다.


첫 번째 - 일에 대한 재미의 상실

내가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는 내가 하는 일에 대한 가치의 상실일 것이다. ‘일의 가치’라고 말하면 좀 어려운 말이 될 수 있고 쉬운 단어를 찾아 쓰면 ‘일의 재미’ 정도 되겠다. 일의 재미란 창작을 기본으로 하는 디자이너들에게는 참 중요한 요소다. 내가 프로젝트에 접근하는 디자인 접근방식, 그리고 그 방식을 통해 얻어낸 귀중한 아웃풋, 그리고 그 아웃풋에 대한 주변의 인정과 그리고 그것들이 실제로 밖으로 (고객들에게) 진심으로 전달될 때의 그 뿌듯함 이런 것들이 디자이너들이 힘든 회사에서도 버티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재미가 사라졌다면? 누군가의 요청대로 만들어 줄 수밖에 없는 디자인 일의 특성상 매우 따분하고 지겨운 일이 된다. 게다가 규모가 큰 조직일수록 ‘보고 또 보고’를 통해 비 디자이너의 통찰력으로 나온 코멘트들을 탑다운으로 적용해야 할 때는 그런 재미가 반감되기 좋은 상황들이 잦다.  처음에는 정말 완벽한 디자인을 했다고 생각했지만 여기저기 이것저것 아이디어를 다 받아주다 보면 누더기처럼 되어있는 시안을 마주할 때가 가끔 발생한다.  


두 번째 - 사람

두 번째 이유는 사람 때문이다. 사람 때문이라고 하면 흔히 텔레비전 뉴스에서 보는 것처럼 누군가를 왕따를 시키거나, 상사가 괴롭히는 그런 상황인가 싶겠지만, (불행중 다행으로) 그런 인성 모질이 같은 사람들보다는 정말 일을 하는 일상적인 상황에서 ‘대체 저 사람은 왜 그럴까?’라는 생각을 하게 될 때, 같은 공간에 있는 나까지도 현타가 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

 왠지 같은 공간에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부끄러워지는 그런 상황들이 있다. 최대한 피한다고 피해 보지만, 회사 일이라는 것이 팀으로 일할 때가 많으니 피할 수가 없다.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면 좋은데, 쉽지 않다)  일에 서툰 사람들은 종종 있지만 나쁜 사람은 없는 것이 회사인데, 회사는 일을 하는 곳이니 일로 (혹은 정신적으로) 남에게 피해를 주거나 일을 못하면 나쁜 사람이 틀림없다.



세 번째 - 충분한 금전적 보상

 일 잘하는 친구들은 자신의 능력을 빨리 알아차린다. 내가 얼마큼 일을 잘하는지 스스로 잘 알고 있다는 말이다. 주변 사람들과 일을 하면서 맞던 틀리던 자신만의 기준에서 부족한 사람들이 눈에 들어올 수밖에 없고, ‘와… 지쟈스 저 사람은 저렇게 일하고도 나랑 같은 월급을 받는 걸까?’’, ‘ 와… 저 사람은 나보다 하는 일은 없어 보이는데 연차가 높으니 받는 돈이 더 많겠지?’라는 생각을 가지는 순간 또 현타가 오게 되어있다. 이 현타에 위안을 주는 방법은 이 친구들을 인정해주는 것이다. 자신에 대한 진정성 있는 인정이 없거나, 그 보상이 충분치 않다면 그들은 떠날 수밖에 없다.



네 번째 - 회사의 비전

마지막 이유 회사의 비전이 보이지 않아 나의 미래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우리 회사는 신입 디자이너가 들어오지 않은지 벌써 5년이 넘었다. 막내 사원은 계속 막내고, 몇 년째 총무며 팀 내 잡일이 많다. (나는 한 때 별명이 십잡스(일 외 맡은 잡일이 10가지 이상)였다.) 신입이 없으니 모두 다 같이 그대로 한 살씩 먹으며 우리 팀 막내는 24살에 입사하여 작년에 서른이 넘었지만 아직도 막내다. 신입이 들어오지 않는 것으로 회사의 비전을 이야기하긴 무엇하지만, 어쩌면 이렇게 정체된 채, 자신의 미래가 보이지 않는 현실이 아주 갑갑했을 것이다.



갑자기 드는 생각.. (다섯 번째?)

‘나 때문에 나간 건 아니겠지?’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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