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erry go round Mar 19. 2024

오늘의 기분

예보에 오늘의 날씨는 구름 한 점 없이 맑으다 하던데 

(왜 머리 위 길을 잃은 먹구름들이 가득 드리워진 걸까요-)

(아무도 몰라요- 오늘의 기분은)


                                                                                                    - BGM, 오늘의 기분 "CHEEZE(치즈)" 중 


(자전거 바스켓 안에 체크무늬 방수 돗자리와 스파클링 와인 한 병, 그리고 플라스틱 와인잔 셋트 2개, 간단한 샐러드와 샌드위치 도시락과 아이패드, 혹시 모를 무릎담요 한 장과 홀더엔 커피 한 잔을 끼우고선, 희나는 한강망원공원으로 열심히 자전거 패달을 밟는다. 운동을 얼마나 안했는지, 아름답고 설레이기만 하는 피크닉 길인데, 희나는 숨이 턱 끝까지 차올라 희나가 페달을 밟는건지, 자전거가 어거지로 희나를 끌고 가는건지 모를 비쥬얼이다. 약간은 희번득하게 보이는 희나 눈빛이, 살짝 광기어린 돌+아이같지만 애써 즐거운 기분을 억지로 내는듯한 억텐션의 희나는, 스스로 지금 즐겁다 즐겁다 를 되뇌이며 일단 밟는다. 자전거 페달을. 힘껏 !)


그렇게 아기다리고 기다리던 휴일.

벚꽃을 즐기느라 분주한 연인들 무더기 틈 속에서 

무사히.. ? 무사..? 히? 촬영을 마치고 드디어 찾아온 꿀 같은 주말 휴일. 

그래서 , 그 날의 촬영은 잘 끝났냐구요?


(지난 촬영일을 회상하는 씬)


#1. 아 그럼요 ! 그 정도면 잘 끝난거죠 !! (는 사실 희나만의 생각이다. 사실 이 날, 희나는 엄청나게 깨졌다.)

#2. 촬영 도중 누구 하나 사라진 사람도 없구요 ! (중간에 도망가려다 붙잡힌 홍혜화 에피소드는 나중에 알려주겠다)

#3. 왕작가님이 조금 고뇌하신 듯 했으나, 그래도 변경된 촬영 컨셉대로 촬영도 진행했구요 !! 

(왕작가님과 카메라감독님이 스트리터파이터처럼 한 판 붙을 뻔 한 걸 채은이 겨우 뜯어말렸다.)

#4. 평소보다 촬영시간이 길어져, 편집양도 좀 더 늘어났다고는 들었는데

(편집감독님이 머리를 쥐어 뜯으며 "이번주 나 우리 와이프랑 결혼기념일이라니까!!!!"를 옥상에서 외친 건 희나가 못들었나보다. 현재시각 주말, 편집감독님은 편집실에서 죽어라 촬영본을 편집중) 

#5. 그만큼 더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더 들어있지 않을까요? 

(아니다. 아직까진 시청률은 계속 고만고만 불안하다. 아무래도 희나 혼자서 꿈 속에서 동시간대 예능 1위하는 꿈을 계속 꾸나보다.)



희나가 촬영하는 프로그램은 일상 프로젝트 "다취함".

모두 다같이 취하자는 뜻이 아니고, (예, 아닙니다. 그런 뜻 아니에요.) 

다양한

취미활동을

함께 해보자는

일상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이다. 


전세계가 어려운 시국도 함께 견뎌왔고, 그로인해 많은 사람들의 일상이 이전과 다르게 꽤나 뒤바낀 요즘. 

일에 치이고 지쳐 꿈도 취미도 점점 잃어가는 현대인들을 위해

그동안 우리가 몰랐던 다양한 취미활동을 함께 일일체험으로 해보는 프로그램.

파워 E인 사람도, 파워 I인 사람도 모두 즐길 수 있도록

액티비티부터 정적인 활동까지, 다양한 활동으로 매 주 프로그램을 짠다. 

그 안에서 간단한 게임을 통해 본인들의 성향과는 반대가 되는 취미도 즐겨보며

스마트폰속 무한대로 돌아가는 도파민에 중독된 우리네들이

조금은 화면 속 실제 바깥 세상 리얼 라이프에서 새로운 자극을 받아

뇌를 맑게 깨워주고자 함이 이 프로그램의 목표이자 취지이다. 


일상 버라이어티 다취함은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시작해서, 반응이 나쁘지 않아 정규로 편성되었다. 

그저 일일체험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프로그램을 통해 그동안 본인의 성향과는 전혀 다른 방향을 겪어본 출연진들이, 방송 촬영 이후 몇 번을 더 그 활동을 배우거나 체험하기 위해 일상을 보낸 것이 SNS에 노출되면서, 사람들의 호응도가 꽤나 올라갔기 때문이다. 


사실 희나는 왕작가님 밑에서 드라마 보조작가로 일을 배우고 있었다. 시대를 역행하듯, 한 편의 왕작가님 드라마 작품이 뒤늦은 흥행 인기몰이를 하고, 여러 밈이 탄생한 덕이었던걸까. 요즘 mz세대와 젊은 층을 겨냥한 어느 인터뷰 프로그램에서 왕작가님께 인터뷰 요청이 들어왔다. 그로 인해 왕작가님은 갑자기, 드라마국에서나 어느 정도 이름대면 알 법한 적당히 짬이 찬 작가에서, 이젠 지나가던 사람도 알아볼 만큼 호응과 인기, 유명세를 얻게 된 시대의 힙 아이콘 작가가 된 것이었다. 말 그대로 반 연예인, 인플루언서가 된 것이다. 방송가의 인기는 화려한 불꽃과도 같은 것. 물 들어올 때 노를 젓다 못해 더 큰 배를 만들어 물 위에 띄워야 크게 한 방 나간다는 방송가이기에, 마침 들어갔던 드라마가 끝남과 동시에,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아무튼 재치있는 멘트로 갑자기) 인생에 예고없던 예능 프로그램 제작에 왕작가님이 투입되었던 것이다. 


이 프로그램은 특성상 스텝들도 어느정도 프로그램에 노출 되는 것이 특징인데, 그것이 왕작가에게는 걸림돌이 되었다. 왕작가는 요즘 젊은 사람들이 속시원해할만한 찰진 대사는 막힘없이 훌훌 써내려가지만, 예능편의 경우는 이야기가 달랐다. 내가 고민하여 글로 써내려가는 것과, 촬영 중간중간 바로 맞받아치는 것은 너무도 다른 영역의 이야기. 그렇기에 왕작가는 실제로 젊은 감각이 있는, 본인의 부족함을 채워줄 톡톡 튀는누군가가 너무나도 필요했던 것. 


때마침 평소 파워 사부작러로 불리는 희나가 보조작가로 왕작가 곁에 있었다. 평일이면 평일, 야근을 하던 날들에도, 단 하루 겨우 주어지는 휴일에도, 도통 가만히 있지를 못하는 희나는 사방팔방 여기저기 이것저것 배우러 다니길, 아니 싸돌아다니길 잘도 했다. 대체 저런 체력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작심삼초라 불릴만큼 세상에 관심은 많지만, 끈기라곤 1도 없는 이 철딱서니 없는 막내가, 잡다한걸 일주일에도 너댓개씩 배워제끼는(?) 희나가, 왕작가에겐 필요했다. 하지만 덜렁대는 희나 한 명을 데리고 본인도 처음 도전해보는 예능을 시작하기엔 약간 무리라 생각했던 왕작가는, 희나와 비슷하게 사근하지만, 매 사 똑부러지는 철두철미함을 보여주는 희나의 동기이자 꼼꼼함을 믿을수 있는 채은이라는 친구가 한 명 더 있었다. 작가라면 비단 작품을 써야지 무슨 예능이에요. 라고 외쳐대는 채은이까지 어르고 달래서, 그렇게 드라마를 써내려가던 세 사람은 갑작스레 이렇게, 예능국에 한 발 내딛게 되었다. 드라마 작업할 때 함께하던 보조작가는 둘이 더 있었는데, 본인들의 길은 예능이 아닌 오롯이 드라마라며, 그 길로 왕작가의 작업실을 떠났다. 


예능의 경험이라곤 1도 없는 세 사람을 전부 프로그램 작가로 쓴다는 것은 메인 피디인 이찬조 피디에게도 좀 부담이긴 했다. 하지만 이찬조는 본인 자신을 믿었다. 언제나 대박 아니면 쪽박을 차는 그였기에, 이 전에 쪽박찬 프로그램을 떠나보내주고, 이번만큼은 잘 할 자신이 있었다. 왠지 느낌이 그랬다. 직감이 그랬다. 이피디의 믿을만한 것이라곤 사람보는 감각. 이번에 모인 이 팀의 사람들의 결이 왜인지 삐걱대는 것 같으면서도 잘어울렸다. 오래된 놀이공원에 기름칠 해가며, 페인트칠 새로 해가며, 케케묵은 유니폼을 빨고 빨아 다시 반듯이 다려입고, 서로의 맑은 웃음을 끌어내는 힘이 있다고 믿었다. 번쩍이는 유명한 놀이동산은 아니지만, 그 세월 각자 그 자리를 지켜오던 사람들의 그 맑고 단단한 힘이, 이번 프로그램을 승리로 이끄리라 믿었다. 



다시 돌아와 피크닉 자리를 한창 잡고 있는 한강망원지구의 희나. 

봄이라고는 하지만 아직은 중간중간 불어오는 바람이 서늘할 때가 많기에,

자리를 먼저 펴두고, 무릎엔 담요를 살포시 덮고, 기세좋게 미리 칠링해 온 스파클링 와인도 오픈을 하ㄱ


촤아 - ! 


.. 그렇지, 새삼. 

누가 스파클링 와인을 자전거 바구니 앞에 담아서 눈누난나 튕기며 싣고 오냐하면 그건 바로 희나다. 


희나 : 아...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 이 똥멍청이 !!!! 축제냐, 축제냐고 !! 옷 다 젖었네 힝. 그래도 화이트라 다행이다.. 로제였으면 피로 물든 원피스처럼 보일뻔했네. 잉 이걸 어떻게 하지? 아니 왜 오늘따라 물티슈도 안가지고 왔어 나새기 바보새기. 으아아아악 ㅠ


가방에 넣고 등에 맨 채로 왔어도 한참은 땅에 내려두고 숨고르기를 해줬어야 하는 스파클링와인을, 날씨도 좋고 기분도 좋다고 (대체 왜? 촬영은 그렇게나 엉망일 수 없었는걸?) 생각도 없이 바로 퐁 하고 따버린 자의 최후이다. 탄산이 가득한 스파클링와인을 대책없이 퐁 하고 따버렸으니, 돗자리 위도, 희나의 원피스 위도 전부 다 달큰하고 새콤한 스파클링 와인의 향기가 감돈다. 오늘의 향수는 스파클링 와인 리미티드 망원 에디션. 


희나 : 어이, 민 ! 오고있어?! 야 나 어떡해 너무 신난다고 스파클링 와인을 생각없이 열었다가 원피스 다 망했어ㅠ 너 언제와? 

영민 : 뭐? 야 너는 진짜 어떻게 하루도 빠짐없이.. 인생이 그렇게 심심하냐. 하루라도 조용히 지나가면, 뭐 막 내가 오늘 뭐했나, 이런 무기력한 인간. 뭐 이런 생각이 들어? 가만히나 기다리고 있지 사고는 왜 치냐 사고는. 어디야, 자리 어디로 잡았어? 

희나 : 여기 그 SS편의점 좌측에 보면 자전거 산책로 쭉 나있는데 제일 큰 나무 근처에 자리 펴고 있어. 아 ㅜ 너희 오기전까지 나혼자 와인 마시면서 음악 들으면서 이 아름다운 봄의 풍경을 좀 즐겨보려 했는데ㅜ 으 .. 너무 끈적끈적하다.

영민 : 기다려봐. 나 망원지구 입구 다왔어. 편의점 들러서 물티슈 바로 사갈게. 뭐 더 필요한 건 없어? 

희나 : 얼음컵 !! 얼음컵이랑 - 또 우리 뭐 먹지? 내가 샌드위치랑 샐러드 싸오긴 했는ㄷ.. 에이씨 이것도 드레싱 샜네 진짜 아오 ㅠ 

영민 : ... 놀랍지도 않아. 보지도 않았는데 난 이미 너보다 먼저 알았어. 아 일단 끊어봐 얼른 사서 뛰어갈테니까. 채빵이는 어디래냐?

희나 : 내가 어떻게 알아 지금 내 손에서 와인축제가 열려 내 손이 탕후루가 되게 생겼는데 ㅜ 너가 전화 좀 해봐 ㅜ

영민 : 하... 알았어. 있어봐 5분내로 갈게 끊어 일단.


(so now 뭐 ㅡ 어때, 잠깐이면 돼 - 잠깐, 딴짓만 할게ㅡ

and I 오늘의 기분만큼만 웃어보면 어떨까요 ㅡ

예보에 오늘의 날씨는 구름 한 점 없이 맑으다 하던데, 

왜 머리 위 길을 잃은 먹구름들이 가득 드리워진 걸까요 ㅡ

아무도 몰라요, 오늘의 기분은 ㅡ  bgm. 오늘의 기분, CHEEZE)


끈적이는 손과 옷이라고 기분까지 끈적일 수 있을까. 

희나는 끈적거리고 약간 솟아오를것 같은 짜증을 눌러내기 위해 

평소 좋아하는 노래를 틀었다. 가만히 노래를 따라부르며 하늘을 보고 있자니,

뭐, 조금은 끈적거리긴 해도 스파클링 와인의 달큰한 단내가 그리 나쁘진 않은 것 같다. 

친구들이 오면 뭐 같이 물티슈로 닦고 수습해주겠지 뭐.


(그 때, 저 멀리서 냅다 뛰어오는 채은이의 모습. 너무 빠르게 달려와서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채은에게 한 데 꽂힌다. 아, 1화에서 깜빡하고 전하지 않은 사실이 있다. 채은은 본인만 모르는 알아주는 빼어난 미모의 소유자이다. 시선이 꽂히는건 커플들 남자들의 빛나는 눈빛과, 그 옆에 남친 얼굴 뚫리도록 노려보는 여자들의 시선)


채은 : 아놔 이런 진짜 우리 집 봉자(채은이가 키우는 순종푸들이다) 보다도 손 많이 가는 차희나야. 영민이 전화 받았다. 하.. 뭐야, 얼씨구 옷 좀 보소. 난리가 나부렀네. 아니 아까운 술은 왜 다 쏟고 ㅈㄹ이야 이기집애야 아오-!! 아까워 !!! 

희나 : 제발... 채은아, 우리 채빵이. 제발 얼굴만큼 말도 좀 이쁘게 했으면ㅠ ㅈㄹ이 뭐냐 ㅈㄹ이 ㅠ 아 그래도 많이 안쏟았어- 이 끈적한것좀 어떻게 좀 해줘바. 휴지로 닦으려다가 오히려 끈끈한데 휴지 거미줄만 더 만들었어 ..힝.

채은 : 차암 - 손 많이 간다 많이 가. 야 우리 봉자도 지가 엎은 물은 지가 걸레 갖다가 덮어서 닦는 시늉이라도 해. 이건 뭐 네 살 짜리 애도 아니고. 너 우리 없을 때 혼자 생활하는 거 자체가 난 신기하다니까? 이정도면 조상신 할머니가 계속 네 옆에서 챙겨주시는거 아니냐? 그러지 않고서야 어째- 매일같이 하루도 안빠지고 이렇게 자잘자잘하게 사고를 쳐 댈까, 진짜 삶이 심심하진 않겠어. 어? 

희나 : 그치. 근데 나 이제 매일같이 너희 구박받아서 구박도 애정으로 들려. 이 조차도 그냥 사랑의 언어로 들린다니까? 

채은 : 아 시끄러. 여 저기 화장실 가서, 이거 갈아입고와.

희나 : 에? 아니 어떻게 치마가 있어?? 피크닉을 오는데 치마를 왜 가져와?

채은 : 아니 어제 퇴근길에 하나 지하철역 상가에서 샀는데, 길이가 좀 애매해서 이따 들어가는길에 바꿀려고 들고 왔지. 근데 대충 너한테도 사이즈 맞을거 같으니까 걍 가서 이걸로 갈아입고 와. 

희나 : 에에-? 힝 채빵이 ㅠ 역시 난 너 없으면 안되잖아. 힝 고마워 덕분에 끈적한 기분이 산뜻해진다야. 이거 얼마야? 내가 바로 돈 보내줄게. 고마워잉 ㅜ 

채은 : 아 되었어- 이따 너가 회나 한 사라 시켜. 저기 너 챙기느라 바쁜 모지리 한 명 더 온다. 우리가 돗자리 정리하고 있을 테니까 얼른 가서 갈아입고와 이기집애야.


정말이지 전 이 친구들 없으면 어떻게 할까요?

채은이가 손에 쥐어 준 치마를 들고 후다닥 화장실로 달려가 옷을 갈아입어봅니다. 

센스좋은 채은이답게 산뜻한 메론 색의 롱치마가 제법 마음에 듭니다. 

끈적했던 기분이, 치마색처럼 조금은 산뜻해진 기분이에요. 


영민 : 어? 뭐야, 옷이 어디서났어?

희나 : 채빵이가 선물해줬지이 - 헤헤. 머 먹을래? 엉망진창 샐러드는 저 봉지에서 꺼내기도 힘드니 그냥 그 봉지 그대로 부어서 먹자. 채빵이 뭐 먹고 싶다고 ? 회 ? 

채은 : 고렇취. 자고로 물가에 왔으면, 응? 넘실대며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보며 회 한 사발에 소주 한 모금 쌔리야되지 않겠어? 낄낄.

영민 : .. 여기가 바다냐. 뭔 한강 강물보며 회에 소주 먹자는 애가 있어. 다들 그냥 치킨에 피자정도 먹는구만.

채은 : 이 맛도 모르는 영유아기 민감 캐릭터 영민아. 너가 뭘 알겠니. 너 이따 회 왔을 때, 깻잎에 쌈싸먹기만 해 아주그냥 싸먹는 깻잎 장수대로 나한테 등짝맞을 각오해라.

영민 : ... 그래, 이 맛도 모르는 영유아기 민폐 캐릭터인 나는 저 샐러드나 와작와작 씹을테니 니 다먹어라 다먹어.

희나 : 그럼 회 주문 고? 그냥 가볍게 남은 와인이랑도 먹게 광어만 시킨다?


한강에서 모두 옹기종기 분위기 좋게 치킨 뜯고 피자 먹으며 분위기 잡는데, 우리들도 분명 시작은 와인이었는데, 어떻게 결론이 회로 난걸까요. 그래도 약간은 모자란 친구인 절 위해 옷도 내어준 채빵이가 회를 먹고 싶다 하니, 그럼 또 전 회를 시켜줘야죠. 영민이가 사온 얼음컵은 남은 와인을 한 잔 씩 부어 원샷하고는, 얼음이 녹기 전에 맑디 맑은 이슬이로 채워지게 되었습니다. 


봄날의 한강은 선선하니, 바람이 불고, 이정도면 저에겐 나쁘지 않은 하루인 것 같아요. 

아니 그런 하루인 것 같았지요. 아직 특별하게 이뤄낸 것은 없지만, 그래도 좋은 친구들이 이렇게 있고,

사고는 종종 치지만 그래도 제가 무엇보다 사랑하는 제 직업도 있구요. 매일 새로운 생각과 아이디어로 제 일을 해나갈때면, 뭐 썩 그렇게 대단하진 못하더라도, 나쁘진 않은 인생인 것 같아요. 


해가 뉘엇뉘엇 떨어지고, 어둠이 내려앉는 만큼 한강의 공기도 차분해지는 시간. 

아까부터 반복해서 듣던, 치즈의 오늘의 기분과 같은 상태의 하루. 

노래만큼이나 적당한 밝음과, 적당한 하루, 그리고 적당한 기분.

이대로 하루가 끝나길 바랬건만, 이렇게 제 휴일이 차분히 마무리되길 바랬건만. 

오늘의 기분이, 먹구름이 드리워진 기분으로 끝날 줄은, 

한 통의 전화로 전혀 다른 하루로 끝나게 될 줄은, 저도 차마 몰랐지 뭐예요. 


우웅 - 우웅 - 

(차분한 한강 피크닉을 즐기는 순간에, 블루투스로 연결해두었던 희나의 핸드폰 음악어플이 종료되면서, 저장되어 있지 않은, 희나의 핸드폰 화면에 뜬 전화번호 하나) 


010-56** - ***4


채은 : 야, 너 전화오는데? 

희나 : ... ?


왜 그럴 때 있잖아요. 

아, 안받고 싶다. 왠지 이 전화는 받고 싶지가 않다. 

그런데 저도 모르게 통화버튼을 누르게 되는, 왠지 찝찝한, 굉장히 기분나쁜 긴장감이 확 도는, 그런 느낌 말이에요.


영민 : 안받아? 모르는 번호라 안받는건가? 

희나 : ... 아니. 받을거야. 응 모르는 번호인데.. 왠지 알 것 같기도 하고. 일단 잠깐만. 나 전화 좀 받고 올게, 


늘어지게 즐기던 피크닉 매트 위에서 신발을 신고 친구들에게서 좀 멀어져 전화를 받습니다. 


희나 : ... 여보세요? 

000 : 여보세요,? 


.

.

.

.



(예보에 오늘의 날씨는 구름 한 점 없이 맑으다 하던데,

왜 머리 위 길을 잃은 먹구름들이- 가득 드리워진 걸까요-

아무도 몰라요, 오늘의 기분은 -) 


수요일 연재
이전 01화 내 이름은 희나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