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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rry go round Feb 28. 2024

내 이름은 희나입니다.

삼땡의 나이에 올라탄 내 이름은 차희나.

(정신없이 바쁜 아침 출근시간. 분주한 횡단보도 위 사람들이 바쁘게 출근길을 서두른다)

(주인공 희나 역시 발걸음을 빠르게 재촉하며, 횡단보도 위를 빠른 경보로 걷는다)

(바쁘게 출근하는 주인공의 모습 위로 깔리는 희나의 나레이션)

(출근길 스타벅스를 들러 미리 사이렌오더로 주문한 커피를 동동거리며 기다리는 장면)

(바삐 들고 가다가 카페 문을 열고 들어오는 다른 회사원과 부딪힐뻔하는 장면 - 

- 희나는 그저 헤헤 웃고 빠르게 그 사람 옆을 스쳐 지나간다)

(회사 건물 엘리베이터에 꾸역꾸역 타려고 하지만 정원초과로 희나만 탔다가 내린다)

(정신없이 자리에 앉아 직장동료들과 인사하는 장면으로 출근 완료)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희나예요. 차희나.

나이는 서른 셋. 어느새 삼땡의 나이가 되었네요.

직업은 그냥 평범한 직장인. 

그나마도 잔재주로 글 좀 쓰는 재주가 있어 이걸로 취업해서 

현재는 케이블 예능 프로 작가로 일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누구나 그러하듯 평범하게 아르바이트 하며 대학 졸업하고,

남들 다 한 번쯤 가보는 어학연수 대신 워킹 홀리데이로 1년 외국생활도 해보구요.

별 다를 것 없는 평범한 집에서 태어나

부모님께 큰 도움 받은 것도 없이, 알바와 장학금으로 대학생활을 연명하다

여차저차 그냥저냥 그렇게 유명하진 않은 한 방송국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어요.


언제나 제가 하는건 그대로 다 믿어주(는거라고 믿고 싶은) 부모님, 

그리고 언제나 제가 하는 건 모지리같다며 못마땅해하는 오빠까지.

그냥 여느 동네에서나 볼 법한, 주변에 흔하디 흔한 그런 집의 막내딸이에요.


그렇다고 뭐 그리 딱히 막내라고 크게 예쁨을 받고 큰 것 같진 않아요.

제가 태어나기 직전까지만 해도 아빠는 제가 아들인 줄 알았데요.

엄마 뱃속에서 꺼내고 보니, 달려 있어야 할 게 달려 있지 않아서(?!)

적잖이 놀라셨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인지 어렸을 적 제 사진을 보면 옷이며 이불이며 온통 하늘색이에요.


아, 색으로 남녀 차별을 하자는건 아니에요.

단지, 그 시절 아시잖아요. 남자애는 하늘색, 여자애는 핑크색.

심지어 저 하늘색저주(?!)는 제 유치원 재롱잔치에까지 이어져서

캉캉을 추는 수많은 여자아이들 중 저만 유일하게 파란색 캉캉드레스를 입고 췄답니다. 


남아선호사상이 아직도 팽배한 저희집 문화여서 그런 것 뿐이지

뭐 어느 집이나 약간의 차별은 있지 않나요? 

오빠 도시락에만 들어가던 계란후라이, 오빠만 먹을수 있던 너비아니구이 같은건

뭐 아무래도 좋아요. 

저 원래 그렇게 고기반찬을 좋아하지도 않거든요.

근데 사실 어렸을 적에는 밥상에 고기반찬이 없으면 밥을 먹질 않았었데네요?

하하 참. 크면서 식성이 바뀌었나봐요.

그래서 오빠의 도시락 반찬이 안부러웠던건지도 모르겠어요.


아침부터 사설이 길었네요.

아무튼, 뭐 별다를 것 없는 제 일상이지만, 요즘은 고민이 하나 있어요.

지금까지 제 인생의 대한 큰 불만은 없었는데,

정말 이렇게 살아도 될까 싶거든요.

남들이 보기엔 큰 문제없어 보이는 평범한 직장인이지만.

달리 모아둔 돈도, 그럴듯한 비전도 없는 제 인생이 조금 걱정되요.

이제 겨우 삼땡 나이인데, 요샌 수명도 늘어서 100세시대잖아요?

제가 과연 100살까지 제 삶을 잘 연명할 수 있을까요?

잘 웃길 줄도 모르는 주제에 예능작가나 하고 있는 삼십대의 이런 쪼무래기가 말예요.


여러분은, 이런 고민 없으세요?

네? 저만 이렇게 머릿속이 수산시장 경매통처럼 시끌시끌 한거냐구요. 



(출근 완료한 H예능국 사무실 내부. 각자의 업무로 사무실 내부는 분주하다.)

(희나의 입사동기 채은이 헐레벌떡 출근한 희나에게 말을 건다)


채은 : 야, 왔어? 왜 이렇게 맨날 간당간당하게 오냐? 아침에 5분 10분 일찍 나오는게 그렇게 힘드냐?

희나 : 그게 뭐, 내가. 응? 이렇게 오고 싶어서 오는줄 알아..? 꼭 - 스벅에선 커피 주문 밀려있지, 

         엘베는 또 왜이렇게 내가 탈 때만 사람이 많아. 맨날 나만 밀려.

채은 : 어이구- 그게 이유야, 그게 이유라고?! 니가 아침에 30분만 일찍 일어나서 나와봐라. 얼-마나 아침에

         여유롭고 느긋하게, 응? 커피 한 모금 호로록 마시면서 출근할 수 있는지. 그냥 너가 게을러서 그래, 

         게을러서 - 핑계대기는 무슨ㅎ

희나 : 그래, 내가 게을러서다 게을러서. 그나저나 왕작가님은, 오늘 안나오시나?

채은 : 너 진짜 뇌가 어떻게 된거 아니냐. 왕작가님 오늘 바로 현장으로 가서 준비하신다고 우리도 

        출근하자마자 소품 챙겨서 바로 현장 넘어오라고 하셨잖아. 오늘 게스트 세상 까다롭다고- 

        아니 야, 너는 진짜 아직 서른 초반밖에 안된 나이에 왜이렇게 깜빡깜빡하지??? 

        너가 무슨 성능다된 아이폰 배터리냐? 이럴시간 없어 빨리 바뀐 소품이나 챙겨.!!


네. 그렇습니다. 

이 나이 먹고도 전 이렇게 깜박깜박해요. 

평소 제 인생에서 깜박하는거야 뭐 그럴 수 있는데,

일 할 때 요즘 자꾸 이러니, 진짜 이 나이에 치매 걸린건가 싶습니다. 

정신 바짝 차리고 왕작가님한테 혼나지 않게 소품 잘 챙겨가야겠어요.


(희나와 채은은 정신없이 어지러진 소품실에서 박스에 소품목록 리스트를 보며 소품을 챙겨 담는다.

이거 맞지? 이것도 맞나? 정신없는 희나 옆에서 리스트 목록에 있는 것을 하나하나 꼼꼼히 체크해가며 챙기는 채은은 희나를 보며 저렇게 정신머리 없이 살아서는 어쩌나.. 쯧쯧 안타까운 시선으로 누구보다 빠르고 꼼꼼하게 소품을 챙겨 담는다. 소품 뿐만이 아니라 희나까지.)



(4월 중순. 따스한 봄날에 맞게 촬영 역시 야외촬영 준비로 한창이다. 한창 벚꽃이 흐드러지는 계절답게 평일 낮임에도 연차를 쓴건지, 모두가 똑같은 취준생 백수인건지, 커플 가족 친구무리 더할 것 없이 사람들이 한강 공원에 북적인다. 벚꽃 명소 답게 평일임에도 북적이는 인파로, 촬영 스태프들은 한껏 더 신경써서 진을 쳐두고 구경하는 사람들의 소음을 조금이라도 줄여보려 단속하느라 바쁘다.)


채은 : 야- 세상에 희나야. 아니 우리만 일하나봐. 다들 뭐 이리 신난다고 꽃구경을 나와 나오길? 

         오늘 평일 아니야? 내가 스케줄러를 잘못봤나? 오늘 휴일이야??

희나 : 채은아, 모두가 우리같진 않지..우리야- 매일같이 소품에 쪽대본에 시달리는 한낱 보조작가들일뿐이고,

         저들은 !! 9-6 건강하고, 일정하고, 정상적인 !! 직장인들이니까 오후 반차쯤이야 휙 날리고 나올 수 

         있지 않았겠어? "어머? 자기야, 잉수타 봤어? 여의도에 벚꽃이 흐드러지게 펴서 세상에나 하늘이 

         파란색이 아니고 삥끄빛이래 삥끄삧 ! 자기야 우리 내일 오후 연차쓰고 꽃 보러 가지 않을래??^^^^"

         하는, 우리와는 결이 다른 사람들이라구.

채은 : 나도 알아, 알아 ! 뭘 그렇게 더 빡돌게 세심하고 디테일한 설명을 하고 그래. 나는 눈알이 없냐?! 

         딱 봐도 어? 캐주얼 정장에, 또각또각 예쁜 구두에 원피스에 ! 추리닝에 맨날 운동화나 신는 나도 

         저런거 입을줄 알고 신을줄 아는데.!!! 허엉 부러워서 그런다 부러워서 ㅠㅠ

왕작가 : (조용히 희나와 채은에게 다가오며 눈에 힘을 주며 웃는다. 

           눈만 웃는다. 입은 더할나위 없는 한 일 자 모양의 一 정색).

           ..한가하니? ^^ 응? 한가해 ? ^^ 아주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서 그런가 너희 정신머리도 흐드러지게

           뇌 속에서 불분별하게 흩어져있니? 정신 안차려?! 오늘 게스트 홍혜화씨라고 말 했어 안했어, 홍혜화 

           돌면 쟤 또 언제 갑자기 현장에서 사라질 지 모른다고. 촬영허가 오늘 하루밖에 못받았는데, 다음주 

           방송 펑크내고 싶어?! 어?! 안그래도 시청률 간당해서 돌아버리겠는데, 9-6? 뭐 아주 그냥 편안하게

           일 쭉 쉬게 해줄까? 어?!


어느샌가 왕작가님이 뒤에 와서 저희 수다를 듣고 계셨네요.

직장생활에선 눈치가 빨라야 하는데, 이 일을 수년째 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전 뒤통수에 눈이 달리진 않은 모양입니다. 작가님 더 노하시기전에, 아니, 제 통장에 따박따박 꽂히는 월급 잃기 전에 정신차리고 얼른 촬영 준비 마무리 해야겠어요. 


희나 : 어머나 세상에나 마상에 작가님 ! 제가 작가님의 철저한!! 준비성을 받들어, 오늘 예상되는 모든 경우의

        수를 전부 !! 생각한 것 +@까지도, 소품을 단디 챙겨왔습니다!! 그치 채은작가?

채은 : 아 그럼요 작가님 저희가 이 일 하루이틀 하나요 ^^^^ 우리 작가님 이마에 다시 핏줄 서지 않으시ㄱ..

        아니아니;; 그, 작가님 오늘 촬영 원-활하게 진행되도록, 진짜 알잘딱 !! 준비 제대로 해왔습니다. 

        식사는 하셨어요?? 우리 작가님 커피? 아바라 한 잔? 갖다 얼른 바칠까요? 헤헤

왕작가 : 커피는 무슨 저기 이미 홍혜화 팬클럽에서 커피차 보내서 줄줄이 다들 입에 하나씩 물고 있구만 뭘. 

            내 커피 챙길 시간에 가서 얼른 소품 셋팅해두고 어제 변경된 대본 스태프들한테 전달해. 알지?

            능구렁이같이 스무스하게 잘 넘어가도록 전달 잘 하란 말야. 큰 일인것처럼 호들갑 떨지 말고. 어?!

            원래 있던 시나리오 중 이걸 먼저 하는거다- 하고 잘 전해. 알았어?!

채은, 희나 : 네 ^^ 작가님 그럼요 ^^ 갑니다. !! 발에 모터 달았어요 !! 가자!! 뛰어뛰어, !!


(촬영 현장으로 뛰어가는 희나와 채은, 변경된 내용의 스크립트를 빠르게 스태프에게 전달한다. 일단 이 상황을 제일 먼저 빠르게 인식시켜서, 별 일이 아닌 것처럼 인지시켜드려야 하는 현장감독님. 그리고 공중줄타기를 하는 것 같이 매 순간 불안불안한 오늘의 섭외 연예인들. 매니저들. 그리고 조명감독님, 음향감독님. 그 외 현장 다수의 스태프에게 빠른 속도로 전달하며 현장을 셋팅한다.그나마도 예능국에서 가장 서글서글하기로 유명한 두 사람이라 사람들이 얼굴을 찌푸리다가도 또 바로 흔쾌히 흐음. 하고 응해준다. 볼멘소리 터져나오는 곳에선 조금 더 구슬리고, 흔쾌히 알았다며 빠르게 인식하는 감독님 어깨는 감사하다며 냅다 두 세번 주물러드린다.)


오늘 촬영은 무사히 잘 끝날 수 있을까요,?

원래 촬영이란게 다 그렇긴 하지만, 정말이지 이럴거면 대본은 뭐하러 미리 쓰는지 모르겠어요.

매일 이렇게 다이나믹하게 상황이 변동될거라면 말이죠.

그래도, 전 이 일을 사랑합니다. 아직까지는요. 

제가 얼마나 오랜시간 이 일을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일단은, 제 등 뉘일 방세를 벌 수 있고, 좀 모자란 절 챙겨가며 함께 성장하는 친구 동료가 있고,

무서운 메두사 같지만 언제나 삶의 큰 유연함을 알려주시는 직장 선배님들도 계시니까요.

이만하면, 그럭저럭 살아갈만한 꽤 괜찮은 삶인것 같은데.



근데,

왜 이렇게 자꾸 불안해 지는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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