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는 층간소음 같은 존재가 있나요?
'X신...'
그녀의 눈이 나에게 하는 말이었다.
학부, 대학원, 인턴, 계약직을 거친 뒤
암흑기였던 백수기간을 지나
간절히 바라던 회사에 운 좋게 입사했다.
하지만 습득이 빠르지 않은 나에게
회사에서 원하는 기대치와
내가 해내는 업무 속도의 간극은 생각보다 컸다.
누가 더 잘못했는지를 따지는 건 의미 없다.
결론적으로,
나는 정말 원하던 곳에 들어갔지만
입사 초기는 지독히 힘들었다.
역시, 회사생활이 힘든 건 일이 아니라 사람이었다.
본인의 방식을 잘 따라주지 않는 나에게
사수는 괄괄한 말투로 답답함을 표현했고,
상사는 실망스러운 눈빛을 숨기지 않았다.
그리고 나보다 약 1년 정도 먼저 입사한 그녀는
마치 눈으로 욕이라도 하듯 뾰족한 시선을 던졌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회사에서는 모르면 물어보는 신입을 원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모른다는 사실이 부끄러워 감추기에 급급한 소심쟁이였다.
그러다 보니 배우는 속도는 느려지고
자신감은 바닥나고
실수는 잦아졌다.
그야말로 악순환이었다.
소심한 내가 만든 상황이지만,
'힘든 순간을 더욱 힘들게 만드는 그 무언가'는
선명히 뇌리에 남는다.
상사나 사수의 반응은 받아들일 수 있었지만
입사시기가 얼마 차이 나지 않는 그녀의
욕하는 듯한 눈빛은
지금도 생생하다.
입사 5년 차가 된 지금도
그 무엇보다 또렷하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녀와 사이가 원만해졌던 시기도 있었지만
내 마음속엔 언제나 선이 그어져 있었다.
그녀와 일로 부딪힐 땐
그 선이 더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녀로부터 받은 스트레스는
전 남자 친구(현 남편)와
내게는 마더 테레사 같은 친구에게
속사포처럼 쏟아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마데테레사 친구가 말했다.
그날도 그녀 욕을 하고 있었는데
"야, 너 그렇게 싫어하는 것도 힘들지 않냐?"
또 다른 날엔 남자 친구(지금의 남편)가 말했다.
역시 그녀의 이야기를 한참 하던 중,
그가 조용히 말했다.
"희야, 부정적인 얘기 계속 듣는 게...
좀 힘이 든다."
나는 깨달았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이러다 친구도 잃고
결혼하고 싶은 남자도 잃을 수 있었다.
나는 내 분노와 스트레스로
가장 소중한 사람들을
감정 쓰레기통으로 만들고 있었다.
스스로 다스릴 줄 알아야 했다.
그래서 그녀의 말이나 행동이 부당하게 느껴질 때는
조심스럽지만 솔직하게 직접 말했고,
내가 실수를 했을 때는
그 실수를 들춰 짚어내는 그녀의 말에
짜증이 솟구쳤지만
굳이 대꾸하지 않았다.
그리고 속으로 다짐했다.
"강한 자가 버티는 게 아니라,
버티는 자가 강한 거다."
"내가 너보다는
하루라도 늦게 퇴사한다."
그리고는 퇴근 후 달렸다.
그 순간만큼은
분노의 세상에서 벗어난 느낌이었다.
부정적인 생각을 멈추고
좋은 생각으로 머리를 채우려 애썼다.
그렇게 달리고 나면
남자 친구나 친구에게
하소연할 일도 줄어들었다.
뛰는 동안 상상했다.
'혼자 결승선에서
주변사람들의 열띤 응원을 받으며
바람을 가르며 달리는
멋진 나의 모습.'
그 순간만큼은
나는 누구에게나 사랑받고
인정받는 주인공이 될 수 있었다.
그렇게 나의 분노의 에너지는
달리기를 통해
환희의 에너지로 치환되었다.
얼마 전, 남편과 육퇴 후
치킨과 콜라를 마시며 얘기하다
물었다.
"오빠, 나는 그녀를 왜 그렇게도 싫어할까?
나도 내가 유독 집착처럼 싫어한다는 생각이 들어. 왜지?"
그가 말했다.
"그러게. 네가 싫어할만한 이유들이 있기는 한데,
계속 싫어하는 게 너 자신한테도
안 좋아 보이긴 해."
그 순간
윗집에서 쿵. 쿵. 드르륵.
남편이 화를 냈다.
"아, 진짜. 층간소음. 너무 싫어.
내가 공부하면서 정신적으로 가장 힘들었을 때
윗집에 미친놈이 살아서
제대로 쉬지도 못했었거든."
"아... 그래서 오빠가
층간소음에 그렇게 민감하구나."
"응. 그냥 싫기도 하지만,
힘든 시기에 겪으니까
더 민감해지는 것 같아."
그 말을 듣고, 나도 말했다.
"오... 그래!
오빠, 나에게 그녀는
층간소음이야.
층간소음 같은 존재!
내가 입사초기에 적응하느라 너무 힘들었는데
그 시기에 나를 더 힘들게 한 사람이라서
그렇게 예민하게 반응하나 봐."
나는 안다.
그녀는 말을 함부로 내뱉고,
본인의 기준이 정답인 줄 아는 사람이라는 것을.
나는 안다.
그녀는 누군가에겐 솔직하고,
업무적으로 유능한 사람이라는 것을.
그리고 나는 안다.
나 역시 누군가에게는 나쁜 사람이면서
또 누군가에게는 좋은 사람일 수 있다는 걸.
그러니 이제, 분노는 접어두고
일단 달리자.
여러분은 생각해 보신 적 있나요?
삶을 '버티는 힘'과 '헤쳐나가는 힘'의 차이에 대해.
저는 제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과
달리기 덕분에
삶을 버틸 힘을 얻지만,
문제를 정면돌파해서
헤쳐나가는 힘은
아직 조금 부족하다고 느낍니다.
여러분에게
삶을 헤쳐나가는 힘은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