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걷다 뒤를 돌아본다. 하늘과 땅이 맞닿아 굴곡 없이 쭉 뻗은 길이 보이기도 하고 어느 날은 막 돌아 걸어온 굽은 길이 보이지 않을 때도 있다. 또 어떤 날은 굽이굽이 험난했던 길이 한눈에 담겨 먹먹해지는 날도 있다. 언제나 똑같지 않지만 변하지 않는 것은 내가 걸어온 ‘길’이라는 것이다.
우리 삶도 쭉 뻗은 고속도로 위를 달리는 것처럼 부드럽게만 살 수는 없다. 이런 일 저런 일 겪으며 깎이고 다듬어지는 것이다. 굴곡의 경험을 돌아보지 않는 것은 지나온 나를 돌아보지 않는다는 뜻이다. 과거의 나를 이해하지 못하면 지금의 나도 이해할 수 없다.
과거를 왜 돌아보냐고 묻는 사람도 있다. 왜 돌아보냐면 그곳에 안아줘야 하는 내가 있기 때문이다. 뒤뚱거리며 헤매던 나도 있고, 여전히 얼굴이 화끈거리는 부끄러운 시간도 있다. 나를 완전히 버려두고 방치한 시간도 있고, 구렁텅이에 빠져 허우적거린 나도 있다. 잊고 싶어도 잊히지 않는 나의 뒷모습이다.
후회와 좌절과 불안과 초라함이 모두 한 덩어리로 뭉쳐져 있는 시간과 공존하는 것이 반성과 용기와 애씀의 시간이다. 생각해 보면 되돌아보는 그 시간이 모여 지금의 ‘나’가 있다. 과거의 경험이 없다면 같은 일이 생겼을 때 버티는 힘을 내는 것도 쉽지 않을 것이다.
산을 오르다 보면 앞도 보지 못하고 땅만 보며 걸을 때가 있다. 풍경은 둘째치고 하늘 한 번 제대로 보지 못한다. 자칫 발을 잘못 디디면 크게 다칠 수 있다는 핑계가 있지만 목적지가 있는 길에 두리번거리지 않겠다는 직진 본능이 작용해서다. 그렇게 목적지에 도착하면 기쁨도 잠시 걸어온 길이 기억나지 않을 때가 많아 허전하다. 과정이 생략된 결과는 언제나 아쉽기 마련이다.
삶도 마찬가지 아닐까. 내가 살아온 길을 알지 못한다면 지금의 나는 무엇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반복되는 경험이 나를 좌절시킬 수도 있지만 그 경험이 나를 일으켜 세울 수도 있다. 같은 길을 걸어도 그날의 나에 따라 어느 날은 무겁고 어느 날은 가볍다. 삶도 언제나 가벼울 수는 없다. 무거운 날도 있고 버거운 날도 있다.
삶은 살아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것이다. 살면서 뒤를 돌아보는 일은 알지 못했던 새로운 세상을 만나는 일이다. 내가 놓치고 가는 것이 무엇인지 발견하는 일이다. 삶은 나의 시선이 바뀌어야 하고 내가 노력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강은교 시인의 시 ‘사랑법’ 마지막 구절에 나오는 말처럼 ‘가장 큰 하늘은 언제나 그대 등 뒤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