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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침내 Jun 28. 2024

원하는 삶을 살고 계신가요?

‘진정으로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 '너는 원하는 삶을 살고 있니?' 타인에게 또는 나에게 종종 하는 질문이다. 그러나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삶은 무엇이다.’라는 답을 가지고 있어야만 말할 수 있다. 나는 그 답을 자기고 있기 않기에 자주 생각하게 되는 질문이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삶이란 어떤 것이기에 반백년을 살아놓고도 아직 풀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요즘 ‘워라밸 ’의 삶을 원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가장 이상적인 삶의 형태라고 말하는 일과 삶의 균형, 공과 사의 균형을 가진 삶. 그렇지, 그것은 나도 부러워하는 삶이다. 눈뜨고 있는 시간 중 대부분은 '직장'이라는 공간에 속해 있다. 공적인 공간을 벗어나 사적인 공간으로 이동하는 퇴근길에는 저질 체력의 본색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내 공간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보이는 것들은 청소를 시작으로 정리까지 내가 좋아하는 일보다 해야 할 일이다. 오로지 나를 위한 시간은 그 이후로 또 밀려난다. '나'가 아닌 '그 밖'의 시간이 흐르다 보면 창밖의 어둠만큼 마음도 어두워져 있다. '잠을 자야 내일 또 일하지, 그래도 책을 한 페이지라도 읽어야 되지 않겠니, 컴퓨터 앞에도 좀  앉아야지.' 내가 나에게 잔소리를 한다. 듣기 싫은 마음과 들어야겠다는 마음이 각각 싸움질한다. 청개구리가 되었다 결정장애가 되었다 우물쭈물하는 사이 시간은 그러거나 말거나 나 몰라라 흘러간다. 그렇게 일상이 반복된다. 워라밸은 잠에서 깨면 허무한 백만장자가 되는 꿈처럼 잠 속에서 만나는 꿈이다.


'너는 원하는 삶을 살고 있니?'라는 질문 앞에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가.’, ‘나는 무엇을 하며 살고 싶은가.’라는 질문을 한다. 그 물음은 꿀꺽 삼킬 수도 없고, 퉤 뱉을 수도 없는 ‘뜨거운 감자’가 된다.  일과 삶의 균형은 얻지 못했지만 세 가지 질문에 모두 답할 수 있는 것은 '한량이고 싶다'이다. 가끔 친구들과 이야기하면서 '나는 한량이 꿈이야.'라고 이야기를 던지곤 했다. 일하는 시간을 내 시간으로 채우고 싶다는 내 식의 표현이다.


'한량'이라는 단어 안에는 수많은 꿈이 존재한다. 워라밸을 원하며 도로를 만드는 것이 꿈이며 꿈의 길을 만들기 위해 땅을 따지는 것이 내가 원하는 삶이다. 진정으로 원하는 삶은 여전히 출구를 알 수 없는 미로 같다. 어설픈 시간으로 살고 있지만 끊임없이 무언가를 원하며 산다. 그것이 설령 욕심이더라도 버릴 수 없다.

 

삶은 지속해서 무엇을 원하느냐 원하지 않으냐의 문제라는 글을 읽은 기억을 떠올림으로써 오늘은 ‘진정으로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하고 싶다.  ‘끊임없이 무엇을 원하고 있으니 나는 원하는 삶으로 가려고 준비 중이야.’


그대는 어떠신가요? 원하는 삶을 살고 계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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