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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su Aug 04. 2021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한국에서의 일과 삶, Part 2 - 삶


가을

2주 격리 와 제주 보름 살기 를 하고 돌아온 서울은 가을이 한창이다. 아인이는 한국에서 처음으로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원래 다녔던 유치원인 것처럼 첫날부터 즐겁게 등원하고 점심도 리필까지 해가며 잘 먹고 신나게 돌아왔다. 적응의 시간도 없이 마냥 좋아하는 아이 덕분에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나는 회사에 다시 복귀하기 전 얻은 자유시간을 만끽하려고 시동을 거는 중이다. 오랜만에 돌아온 한국에서의 일상을 시작해보자.

가을.


아인이는 거리에 넘쳐나는 알록달록한 낙엽들과 나뭇가지, 돌멩이를 한아름 안아 들고 집으로 나르느라 바쁘다. 덕분에 부모님 집은 구석구석 아인이의 보물들로 가득 차고 있다. 감사하게도 부모님, 시부모님께서 우리가 편히 얹혀살 수 있도록 배려해주신 덕분에 마음 놓고 한국에서의 삶을 살 수 있었다. 요리, 청소 등 집안일은 부모님이 도맡아 주셔서 한국의 일상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날로 먹은게 사실이지만 죄송한 마음 위로 감사한 마음만 계속 쌓아갔다.


겨울

유난히 눈이 많이 오는 겨울이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한동안 눈을 못 보고 살아서 그런지 눈을 보니 설레고 즐겁다. 하얗게 변해버린 온 세상이 너무 아름답다. 아인이와 단단히 챙겨 입고 눈 장갑과 눈사람용 당근까지 챙겨 나갔다. 눈사람도 만들고 뽀드득 소리가 나는 눈을 마음껏 밟았다. 아이를 핑계로 맘껏 즐길 수 있는 동심의 세계가 반갑다. 아이와 다시 복습하는 어린이의 세상 속에서 나의 어린 시절의 기억을 어렴풋이 떠올리기도 한다. 어느 날엔 우리 셋이 산책을 나갔다가 눈이 갑자기 펑펑 쏟아졌다. 근처의 카페에 들어가 아이스커피에(얼어 죽어도 아이스파입니다.) 따끈한 브라우니를 먹고 있으니 세상 행복하다. 좋아하는 커피와 초콜릿, 눈 삼박자에 사랑하는 아인이와 남편 함께 앉아 예쁘게 쌓여가는 눈을 바라보았다. 행복이 별건가 싶다.

겨울.

틈틈이 가족과 함께 여행도 다녀왔다. 추운 겨울에 떠난 여행이지만 차가운 바람보다 가족들과의 따뜻한 시간들만 가슴 깊이 남았다. 크리스마스와 새해, 구정 설날, 결혼기념일, 사촌동생의 돌잔치, 외할머니댁, 안동 여행, 우리 셋의 생일까지 특별한 날들을 가족들과 함께하니 몇 배는 더 특별한 날이 되어버렸다.


1월 말, 남편은 업무상의 이유로 미리 미국으로 들어가게 되었고 나와 아인이 둘이서 평일에는 시댁에서 금요일 오후부터 주말은 친정에서 지냈다. 평일은 새벽과 오전 시간을 이용해서 최대한 일을 끝내고 오후 시간은 유치원에서 돌아온 아인이와 함께 했다. 일이 바쁠 때면 부모님이 아인이를 돌봐주시기도 했다. 매주 목요일은 쉬는 날인 이모가 시간을 내어 우리 둘을 태우고 이곳저곳 데려가 주어서 자매의 추억까지 더불어 쌓아갈 수 있었다. 주말마다 친정 식구들과 주말 일정을 꾸려가며 그동안 못해 아쉬웠던 가족과의 시간을 가득가득 눌러 담았다. 처음 한국에 가기로 마음먹었을 때 아인이가 가족들과 가까이 지내며 온 가족의 사랑을 느끼는 것에 가장 큰 의미를 두고 결정했다. 나중에 아인이가 얼마나 기억할지는 모르겠지만 온가족으로부터 넘치게 받은 사랑이 분명 아인이의 마음속에 따뜻함으로 크게 자리 잡아 있을 거라고 믿는다. 그리고 그것 만으로 충분한 한국의 삶이었다.


가족과 함께한 시간.


봄.

가을에 도착해 눈이 펑펑 내리는 겨울을 지내고 벚꽃 흩날리는 봄을 맞이했다. 딱히 계절의 변화가 없는 캘리포니아에서 살다가 눈에 띄게 변하는 계절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자니 그것만으로도 황홀했다. 유난히 예뻤던 벚꽃과 처음 타보는 한강유람선, 남산타워, 아쿠아리움, 하늘공원, 노들섬, 돌아가기 마지막 한 달은 아쉬움 가득 담아 여행객 마냥 추억을 열심히 챙겼다.


점점 따뜻해지는 날씨에 곧 미국으로 돌아갈 때가 다가오는 것 같아서 아쉽다. 미국에서 지낸 지 어느새 10년이 훌쩍 넘었고 그 이후 처음으로 이렇게 긴 시간 한국에 머물렀다. 판데믹 시국에 한국에 와서 생각보다 친구들을 만날 기회는 줄어들었지만 덕분에 가족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함께하지 못했던 일상을 함께 나눌 수 있어 더없이 특별하고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아름다운 한국의 사계절.


이제는 지난 7개월 동안의 한국에서의 좋았던 기억을 뒤로하고 다시 미국에서의 새로운 일상을 시작하려 한다. 갑자기 다시 삶의 터전으로 돌아가려고 하니 막막하기도 하고 캘리포니아가 아닌 동부에서 다시 시작할 새로운 삶이 기대되기도 한다. 작년 어느 날, "우리 동부 가볼까?"로 시작했던 우리의 대화는 정말로 우리를 한국으로 그리고 미국의 새 도시로 이끌었다. 익숙한 한국이었지만 긴 시간 가족들에게 도움을 받으며 지내는 것도 그저 편안한 일만은 아니었고 어려움도 있었듯이 다시 새로운 곳에 정착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뉴욕으로 가는 비행기 안.

그래도 아직 우린 젊으니까. 우리의 선택과 도전이 빛나길 바라본다.


3개월 전에 미국에 먼저 들어가 새로운 보금자리를 구하고 이사하고 가구들 하나하나 장만하며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던 남편에게 비로소 고맙다는 말을 전한다.


브루클린의 새 집에 도착한 아인이와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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