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머리속의 오답노트

우리는 왜 장점보다 단점에 더 예민한 것일까? (feat. 미국직장인)

by Juwon

대기업에 다니는 대학 동기 셀린(가명)에게서 연락이 왔다. 지난달 내가 브런치에 발행한 언니의 휴직 이야기를 읽었다고 했다. 현재 자신 역시 회사에 3개월 휴직 신청을 했고, 언니와 비슷한 종류의 고민을 하고 있다면서.


“이제 벌써 회사생활 6년차인데, 문득 연차가 쌓여가는게 무섭다는 생각이 들더라. 지금 하고 있는 게 맞는건가? 내가 여기 있어도 되는건가? 그런 질문들이 자꾸 쌓이기 시작했어.”


그녀는 휴직을 통해 진지한 자기탐색을 하고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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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의 스트레스를 치유하기 위해 시작한 꽃꽃이는 이제 셀린의 새로운 자기탐색의 경로가 되었다 (사진출처: 셀딘)


자기탐색의 시간이 셀린에게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다. 대학시절, 셀린과 나는 대단한 자기 성찰가이자 몽상가들이었다. 매일같이 캠퍼스 계단에 걸터 앉아서는 우리가 좋아하는 것들, 잘하는 것들을 어떻게 ‘커리어’라는 이름으로 결실을 맺을 수 있을지 의논하곤 했다. 꿈만 키우면서 20대 내내 일종의 “커리어 방황”을 겪어왔던 나와는 달리, 친구는 4학년이 되던 해에 마케팅에 꿈의 닻을 내렸고, 졸업하자마자 한 대기업의 인턴십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되어 꾸준히 그곳에서 회사생활을 해왔다.


어엿한 대기업 6년차 마케팅부서 대리가 된 그녀는 하지만 이제 좋아하는 것들, 잘하는 것들이 아닌 자신이 싫어하는 것들, 못하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휴직한지 이제 3주정도 되었는데 벌써 몇가지 발견한 것들이 있어. 가령 나는 반복을 싫어한다던지, 규칙적인게 어렵다던지 - 이런것들.”


“그렇구나. 그럼 싫고 어려운거 말고, 좋아하는거 잘하는거 발견한 것도 있어?”

“글쎄... 그건 아직 모르겠어.”


Screen Shot 2018-02-26 at 9.50.51 PM.png 언니의 고민의 여정 위에 오랫동안 머물렀던 글귀


셀린의 대답 속에서 우리 언니를 다시금 떠올렸다. 휴직을 신청하고 샌프란시스코로 건너와 두달 간 우리집에서 머무는 동안, 언니는 스스로에 대한 수많은 질문들을 마주하며 힘겨워했다. 지난 10년간 업무나 가정사를 핑계로 회피하거나 미뤄왔던 결정과 고민들이 마치 갚아야 할 빚처럼 한꺼번에 다가왔던 것이다. 언니는 쇼파에서 쿠션을 끌어안고 티비를 보다가도 머리속에 떠돌던 질문들을 별안간 소리내어 꺼내곤 했다. “회사가 믿는대로 내가 회사에 기여할만한 그런 역량을 갖추고 있기는 한걸까?” 매니저로서 자기가 가진 단점들, 그리고 해를 거듭하면서 점차 작아져가는 열정의 크기를 Red Light으로 삼았고, 그래서 회사를 떠날 결심을 했다고 했다. 사표가 휴직으로 전환된 것은 사장님의 간곡한 만류때문이었다.


“사장님이 언니를 붙잡은 데에는 분명 언니가 잘해온 것들이 있어서겠지!”

친구가 그랬듯, 언니 또한 나의 확신섞인 물음에 쉽게 답하지 못했다.


서른즈음이면 우리 모두가 자신감과 강인함으로 똘똘 뭉친 커리어우먼이 될줄로만 알았었다. 하지만 그 어릴때의 기대감과는 달리 한해 한해 지나갈수록 우리는 못하는 것, 싫어하는 것만 더 확실하게 깨달아가고 있는 듯 하다.


Screen Shot 2018-02-26 at 9.53.43 PM.png From Legion of Honor, San Francisco (출처: @b_y_kang instagram)


나는, 혹시, 우리 모두가 학창시절에 만들던 ‘오답노트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한건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학창시절, 문제집을 채점하거나 성적표를 받을 때, 100점 맞은 시험지나 동그라미를 받은 문제들이 아닌, 낮은 점수를 받은 과목과 빗살이 그어진 문제들에 집중을 하라고 배웠었다. 틀려버린 문제들,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 공식들을 조각조각 오려 붙여 노트를 만들고, 못하는 과목을 위해선 학원과 인강에 시간과 돈을 투자했다. 좋은 성적을 받은 시험지를 5분 이상 쳐다보면 자만심에 빠지는 건줄로만 알았다. 그래서 정성을 들여 맞춘 문제에 대해 스스로 뿌듯해 한다던지, 나의 옳은 풀이과정을 되새겨 본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시험에서 틀린갯수 만큼 회초리를 드는 선생님도 있었다. 학교에서는 수학을 ‘못하니까’ 문과에 가고, 공부를 ‘못하니까’ 예체능계를 간다는 생각이 만연했었다. 그렇다고 성적이 좋다고 해서 어떤 것이든 선택할 자유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던 것 같다. 중학교때도, 고등학교때도, 미술이 하고싶다는 나의 바램은 ‘미술하기엔 성적이 아깝다’라는 담임선생님들의 어리석은 만류에 의해 거부당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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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루지 못한 열정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빚처럼 주변을 맴돈다. 10년 뒤, 나는 결국 석사과정으로 아트스쿨을 갔고 원없이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찍었다.



완벽을 추구하고 약점을 파고드는 교육 시스템을 거치며 어느덧 우리는 ‘못하는 것들’에 예민해지고 그것에 기초해 결정을 내리게 된 것 같다.


회사생활에는 더이상 중간고사나 기말고사 따위가 존재하지 않지만 우리는 어느새 매일의 주어진 과제들을 시험지 삼아, 스스로의 퍼포먼스를 머릿속에서 채점해왔는지 모른다.


친구에게, 언니에게, 자신의 장점을 잘 생각해보면서 자신감있게 다음 단계를 결정해보라고 토닥여주었던 나지만, 사실 나 역시도 나만의 두꺼운 오답노트를 가지고 있었다. 끊임없는 자기 불확신과 연민 따위는 커리어를 막 시작할 때 쯤인 20대 중반에 미국으로 건너와 제2의 사춘기라 불릴만한 정체성의 위기를 겪었던 나만의 숨어있는 여드름같은 것인줄로만 알았다. 한국에서 평생 살다가 미국 땅 위 친구 하나 없는 도시로 이민을 왔으니 당연하게도 모르는 것, 어색한 것, 느리게 배우는 것들이 많을텐데, 나는 일상 속에서 벌어지는 실수와 실패들을 당연한 과정이라 생각하지 못하고 내 안의 오답들로 내재화해 버리곤 했다.


그러한 혹독한 자기비판을 통해서 현실적으로 미래를 계획할 수 있다고 믿었었다. 예컨대, 현지인들보다 영어를 못하기 때문에 기술적인 전문직을 선택해야 할 것이고, 다른 사람들보다 적은 연봉을 받을 감수를 해야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오랜 시간동안 열심히 일해야하고, 큰 회사보다는 외국인들이 많은 작은 회사들을 노려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현실적으로’라는 변명의 구절로. 나의 미래와 가능성을 오로지 단점과 현재의 좌절감에 의해 제한하고 있었다. 오답노트가 마치 나의 나침반 위의 바늘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내 의사결정 뿐 아니라, 인생과 주변사람을 대하는 태도에도 영향을 미쳤다. 머릿속 오답노트에 적어 놓았다고 생각한 실수와 단점들이 반복되어 드러나는 순간, 쉽게 의기소침해졌고 스스로에게 지나칠만큼 가혹했다.


Screen Shot 2018-02-26 at 10.31.46 PM.png 학교 수업 가는 길에 늘 나에게 힘을 주었던 Linkedin 빌딩 로비에 써있던 메시지



그것을 인정하고 조금씩 극복해 나가게 된 것은, 가랑비의 옷 젖듯 미국사회가 나에게 미친 몇가지 영향 때문이었다.



첫째, 내가 만난 미국사회는 장점을 더 중요시한다.


나는 한때 피드백과 칭찬은 다른 것이라고 생각했다. 칭찬은 상대가 나의 기분을 좋게 해주고 싶을 때 건네는 제스쳐고, 피드백은 주로 단점을 고쳐주고 싶을때 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그래서 교수님들이나 상사들이 나의 장점을 언급하곤 할때, 그것을 기분 좋은 칭찬 그 이상으로 생각해보지 않았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칭찬’들을 자세히 들어보니, 그것들은 나의 커리어 개발을 위해 깊게 새겨들어야할 긍정적 피드백이었다. ‘주원, 잘했어! 수고했어!’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너는 참 스토리텔링을 잘한다. 그래서 좋은 프레젠테이션이 나왔던 것 같애.’ 라던지 ‘너는 패턴을 파악하는 눈이 뛰어난 것 같아. 그것을 잘 살리면 좋은 리서처가 될거야.’와 같이 구체적이고 미래를 위한 조언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는 단지 듣는이의 기분을 좋게 하기 위해 하는 말이 아니라, 조직 내에서 한 고용인이 기여할 수 있는 가치를 증대시키기 위한 동료의 책임이기도 했다. (반면 그들은 부정적인 결과에 대해서는 대개 침묵으로 대하곤 한다. 이곳에서 부정적인 피드백보다 더 두려워 해야할 것은 침묵과 단절이다.)


다수의 긍정적인 피드백을 거치면서 나는 어느순간부터 오답노트보다 정답노트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자주 등장하는 단어들을 통해 나의 장점을 정의해나가기 시작했다. 만약, 5년 전 마케팅 회사에서 일할 때 만난 보스와, 3년 전 석사과정에서 나를 지도한 교수와, 1년전 스타트업에서 함께 일한 동료와, 지금 회사에서 나를 위한 역량평가를 해준 매니저가 모두 입을 모아 나의 어떠한 장점에 대해 말하고 있다면, 그것이야 말로 진정한 나의 무엇이라 불릴만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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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조직에 있든 어떤 다른 일을 하듯, 변하지 않는 나만의 가치와 재주가 있다. 나에게 자기탐색이란 결국 그 보석을 발견하기 위한 과정이었다.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만든 정답노트와 내 머릿속에 오랫동안 자리잡아온 오답노트를 비교해보면서 얻은 가장 큰 깨달음은 내가 얼마나 스스로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는지였다.


내가 머릿속 오답노트에 가장 많이 기록한 최악의 단점은 커뮤니케이션 스킬이었다. 그러나 너무나 놀랍게도, 최근 회사 역량평가에서 동료 및 상사들은 나의 최고의 강점으로 ‘커뮤니케이션’을 꼽았다. 내가 생각한 단점이 남들이 꼽은 최고의 장점이었다는 것은 내가 그동안 스스로에 대해 얼마나 잘 모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극단적인 예였다. 그렇다면 나는 내 자신을 엄청나게 오해하고 있었던 것일까?



둘째, 내가 겪은 미국사회는 성공에 대한 접근이 더 유연하다.


나의 커뮤니케이션 능력에 대한 회사의 긍정적 피드백의 뚜껑을 열어보고서야 나는 이것이 나와 그들간의 단점을 향한 관점의 차이에서 비롯되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단점이란 극복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자신과 미래의 목표 사이에 존재하는 Gap(간극, 거리)의 일부일 뿐이야.” 광고 전공 시절 가장 존경했던 교수님은 단점에 관해 이렇게 표현한 적 있다.


교수님이 우려했던 것처럼 나는 단점을 내 앞길의 걸림돌이자 넘어야 할 산이라 생각했었다. 그 산 정상에는 ‘원어민 만큼 완벽히 영어하기’ 라는 말뚝이 세워져 있었고, 나는 열심히 암벽등반을 하며 ‘미생’의 태도를 자처했다. 산을 정복하고 나서야 비로소 직장에서 원활하게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고 성공을 이룰 수 있을거라고 믿으면서 말이다. 즉, 나는 단점을 제거하는 것이 성공을 위한 필수조건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반면 내가 미국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은 단점을 개선하면 성공의 보탬이 될만한 충분조건 정도로 바라보고 있었다. 애초에 생각해보면, 내가 정말 힘을 쏟아 정복해야할 산은 ‘원어민 수준의 영어’가 아니라 ‘제품디자인을 위한 사용자의 인사이트를 발굴하고 전달하는 리서처’라는 목표이다. 동료들은 나의 커뮤니케이션을 강점으로 뽑은 이유로 복잡하고 수많은 데이터를 하나의 스토리로 만들어 내는 능력, 그것을 쉽고 간결하게 설명하고자 하는 노력, 그리고 상대의 관점에 대한 배려를 예로 들었다. 나는 그 설명속에서 나를 ‘외국인 주원’이 아닌 ‘리서처 주원’으로서 평가한 그들의 존중을 느낄 수 있었다.


그들에게 나의 억양이나 몇몇 문법적 오류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중요하지 않았다. 동료들의 긍정적인 메시지 속에는 그것들이 설령 나의 단점으로 존재할지언정, 내가 가진 장점들로도 충분히 그 gap을 메워 내가 원하는 성공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담겨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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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용기와 긍정적인 피드백을 매일같이 불어넣어주는 나의 동료와 일터


물론 높은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향해 노력하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 원어민처럼 영어를 잘하고싶은 열망 덕분에 영어실력을 빠르게 향상시켰고 그래서 사실 내가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괜찮은 영어를 구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열등감이 자신의 목표를 주객전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것이 단지 부정적인 에너지라서가 아니라, 자칫 목표에 다다르지 못했다는 핑계를 이유로, 혹은 아직 단점을 극복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자신을 평가절하하고 많은 기회들을 날려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이곳에 온 뒤 내 안의 목소리에만 집중했다면, 지금 내가 이룬 것의 절반도 채 이루지 못했을 것 같다. 이곳에서 오래 일한 동료나 상사들 뿐 아니라, 고작 나를 한번 만난 면접관이라던지, 네트워킹 이벤트에서 만난 이방인이 나보다 내가 가진 자질들을 믿고 나를 위해 용기를 내 주었기에 새로운 것들을 시도해 볼 수 있었다.


미국은 결코 무지개색깔의 드림컨트리도, 아메리칸드림이 흔히 암시하는 것처럼 그리 평등하거나 관대한 나라도 아니다. 강점에 대한 예리한 안목과 그를 기반으로 한 본인과 타인의 미래를 향한 긍정적인 태도, 나는 사실 이 두 가지가 이곳의 많은 개인과 비즈니스를 성공시킨 진정한 원천이라 생각한다.


“장점도 보살펴주지 않으면 독이 되는 거 아니? 사실 잘하는 것만 신경쓰기도 시간이 모잘라.”

나의 보스는 역량평가 피드백을 마무리하면서 이렇게 말했었다.


Screen Shot 2018-02-26 at 11.24.48 PM.png 언젠가 힘들어 할 때 L이 나에게 보내준 카드.



나는 우리 모두가 이제 조금씩 오답노트가 아닌 정답노트를 머릿속에 적어나갔으면 한다.


장점을 돌이켜보는 건, 면접관에게 잘보이기 위해서도, 자소설을 쓰기 위해서도, 자기위로를 하기 위해서도 아니었다. 자만에 빠진 행동도 결코 아니다. 스스로의 장점을 명확히 알고 그를 기반으로 한 의사결정을 내릴 때 비로소 진정한 자신감과 성취감을 얻을 수 있다고 믿는다. 또한 나는 그것이 우리가 사회에 더 크게 공헌할 수 있는 길이라 믿는다. 그래서 언니도, 친구도, 퇴사이건 직장내에서의 재도전이건 그것이 내가 알고있는 그들의 재능과 에너지를 그들이 품고있는 크기만큼 펼칠 수 있는 길이 되었으면 한다.





긴 글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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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이미지: Seven Wiv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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